문화/생활

“혼자 오셨는가예?”
“예.”
“혼자 오면 외로울 낀데….”
욕지도 제암마을 언덕배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할머니 한 분이 마늘밭을 매고 있다. 할머니는 욕지도에서 태어나 욕지도 남자와 결혼해 살았다. 섬이지만 내내 농사만 지었다. 딸만 다섯을 둔 딸부자다. 아이를 갖고도 밭일을 쉬지 못했다. 평생 밭만 파고 살았다. 섬살이가 하도 고달파 젊어서는 섬을 떠나고 싶은 적도 많았단다.
“후회가 왜 없겠어요? 남들처럼 객지에 나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받아 편히 살았으면 좋았겠지. 평생 섬에서 갇혀 살았어요. 아이가 늙도록 섬을 못 떠났네요. 농사짓고 애 키우고 살다보니 인생 잠깐이네요.”
할머니의 말이 서글프다. 그렇게 잠깐 사이 한 생이 갔다.

욕지(欲知)…, 연화세계 알고 싶으면 부처님께 물어보라
통영은 섬나라다. 사람들은 통영을 ‘바다의 땅’이라고 부른다. 통영바다에는 526개의 섬이 있고, 그 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4개다. 통영의 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섬들이 모여 연화열도를 이룬다. 연화열도의 중심 섬인 욕지도는 최고의 비경을 자랑한다. 통영항에서 32킬로미터, 한 시간 거리의 뱃길이다.
청보석의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과 여. 욕지도 앞 바다의 풍경은 한편의 산수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름답다. 욕지도는 주변에 크고 작은 섬을 올망졸망 거느리면서도 한편으로는 탁트인 남태평양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다도해의 소담함과 대해의 장쾌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섬이다.
욕지도를 본섬으로 하는 욕지면에는 10개의 유인도와 45개의 무인도가 속해 있다. 45개 마을에 2,000여 명이 산다.
관광안내서에는 욕지(欲知)의 뜻을 ‘알고자 하는’으로 풀이해 놓았다. 무엇을 알고자 한다는 말인가? 그냥 글자 뜻풀이일 뿐 욕지도라는 이름의 진짜 의미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욕지도의 뜻은 그 자체로는 결코 풀이할 수 없다. 욕지도 한 섬만으로는 풀이가 되지 않는다. 욕지도라는 이름의 뜻은 주변의 연화도·두미도·세존도 등 다른 섬들과 연계할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린다. 욕지도를 비롯한 이들 섬의 이름은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이라는 불경 구절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화세계(극락세계)를 알고자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부처님께 물어보라.”
옛날 욕지도를 비롯한 연화열도의 섬들은 스스로 이미 연화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름은 불국토, 이상향을 염원하는 누군가의 기획 하에 지어진 것처럼 아귀가 맞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이름의 섬들이 통영바다에만 몰려 있을까? 근처 미륵도와 반야도 또한 이 불국토의 자장 안에서 지어진 이름이리라.

산에 올라야 섬의 진면목이 보인다
욕지도와 그 옆의 작은 섬 상노대도에는 신석기시대 유물인 조개무지(패총)가 있다. 조개무지에서는 각종 석기와 화로·기왓장·금불상 등과 함께 인골 2구도 발견된 바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이미 욕지도 일대의 섬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삼한시대나 가야시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도 사람살이가 이어졌을 터다. 가야시대에는 6가야 중 수로의 막내동생인 말로가 지배하던 소가야 소속이었다.
하지만 왜구의 등살에 공도정책을 실시한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의 거주가 허가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주로 군선들의 정박지로 이용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왕실 궁례부의 명례궁 소속이었다. 욕지도 수군이 사슴을 잡아 녹용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욕지’라는 지명이 태종 때부터 등장한다. 그만큼 오래된 이름이다. 공식적으로 욕지도에 사람들의 입주를 허락한 것은 조선시대 말에 와서다. 1887년(고종 24년) 조정에서 욕지도 거주 허락이 떨어졌고, 1888년 20여 명이 처음 입도했다. 1988년에는 욕지 개척 100년 기념비를 세웠다. 개척 당시에는 사슴이 많아 녹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개척자들의 구전에 따르면 입도 당시 욕지도에는 전함이 계류하던 곳인 전선소, 관청인 치소, 손님의 숙소로 쓰던 관소가 있었다. 산정에는 위급을 알리는 봉화대도 있었다. 아직껏 남아 있는 조선포나 관청마을, 옥섬 등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한 듯 보인다.
욕지도는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했다. 특히 멸치의 주산지였다. 솔가지에 불을 켜 멸치를 유인한 뒤 잡는 ‘챗배’ 멸치잡이가 욕지도의 전통어법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고등어·전갱이 등으로 풍어를 이루었고, 남해안의 어업전진기지로 구실했다. 당시 욕지도에서 잡은 물고기는 서울·마산·일본·만주 등지로 수출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경에는 조선인 2만864명, 일본인 2,127명 등 인구가 2만3,000명에 이를 정도로 섬이 번창했다.
지금 욕지도는 잡는 어업보다 기르는 어업이 중심이다. 욕지내항은 돔·우럭 등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가득하다. 또 욕지도는 처음으로 고등어 양식에 성공했다. 서울 등 뭍에서 먹는 고등어회는 거의 욕지도 산이라고 보면 된다.
욕지도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지만, 진면목은 해변에 있지 않다. 욕지도를 찾는다면 주봉인 천왕산에 올라야 진짜 욕지도를 봤다고 할 것이다. 가장 높다고 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욕지도 명물 고구마막걸리와 밀감
욕지도에는 천왕봉(392미터)을 비롯해 대기봉(355미터)·약과봉(315미터)·일출봉(190미터) 등 여러 산이 있다. 산에는 등산로가 잘 나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에 오르지 못할 형편이라면 혼곡마을 등산로 입구에서 노적·통단마을까지 이어진 해변 트레킹 길을 꼭 걸어볼 것을 권한다. 탁 트인 바다와 오솔길을 번갈아 걸을 수 있는 이 길은 여행자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황홀하다.
천왕봉은 옛날부터 섬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산이다. 섬사람들은 산기슭의 제당에 천왕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동항마을 위 상수원 저수지 기슭에는 아직도 산신당이 있다. 천왕봉은 최근까지도 천황봉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천황봉으로 바뀌어 불리다 제 이름을 되찾았다. 한국의 산 이름은 대부분 불교에서 유래했다. 천왕봉의 천왕은 사천왕의 그 천왕이다.
섬 전체가 산악지형인 욕지도에는 아름다운 숲이 많다. 그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숲은 자부포의 메밀잣밤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343호)다. 우리나라 난대림에서 자라는 잣밤나무는 대부분 구실잣밤나무이고, 메밀잣밤나무는 희귀하다. 욕지도에는 그 귀한 메밀잣밤나무가 무리를 이뤄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욕지도에는 논이 거의 없고 비탈밭이 많다. 밭은 끈적한 찰황토가 아니라 물이 잘 빠지는 마사토에 가깝다. 그래서 고구마 농사가 잘 된다. 욕지 고구마는 해남 화산 고구마만큼이나 달고 맛있다. 고구마를 넓적하게 잘라 말린 ‘빼데기’로 끓인 빼데기죽도 유명하다.

욕지 총각한테 발목 잡힌 제주 해녀
욕지도에서는 고구마를 ‘고메’라고 하는데 욕지도 고메막걸리는 고구마케이크 속의 고구마 속살보다 더 달콤하다. 운이 좋으면 욕지도의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담근 고메막걸리를 맛볼 수도 있다. 욕지항 선창가 붕어빵 수레에서 막걸리를 병에 담아 판다. 진짜 섬의 전통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또 다른 욕지도의 명물은 밀감이다. 사람들은 제주도에서만 밀감이 나는 줄 알지만, 남해안의 거의 모든 섬에서도 밀감나무가 자란다. 욕지도의 밀감 재배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가 토질을 조사한 후 시험재배하면서 시작됐다. 노지에서 나는 욕지도 밀감은 달고 새콤한 맛이 야생의 맛 그대로다.
한 번 맛을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해 해마다 찾는다.
욕지도에는 과거 제주에서 물질을 왔다 욕지도 총각에게 발목이 잡혀 몇십 년째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사는 해녀가 여럿이다. 그래서 욕지도 뱃머리에서는 해녀가 직접 물질한 전복·해삼·소라·합자(조선홍합)들을 맛볼 수 있다. 해녀의 남편인 어부가 낚아온 싱싱한 횟감들은 덤이다. 갓 잡아온 이런 해산물을 먹는 것이야말로 섬 여행 최고의 즐거움이다.
제주에서 물질을 하러 왔다 정착한 어떤 해녀의 좌판. 해녀는 스무살 처녀시절 욕지도로 물질을 왔다 어부인 사내를 만났다. 벌써 30년도 전이다. 해녀는 한사코 자신이 발목을 잡혔다고 하는데, 어부는 늘 해녀가 발목을 잡았다고 한단다.
해녀가 자신이 잡아온 성게·돌멍게·굴을 까줬다. 남편인 어부가 잡아온 활고등어로는 회를 떠줬다. 성게알의 맛은 달디 달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돌멍게도 바로 잡아온 것이라 고소하다. 고등어는 너무 작아 맛이 덜 들었지만 이 또한 달다. 해질녘 욕지도 선창가의 해산물 뷔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어느 특급호텔에서도 결코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성찬이다. 술 한잔을 마시자 온몸에 취기가 오른다.
출어했던 어부가 돌아왔다. 어부는 또 횟감을 잡아왔다. 어부에게 묻는다. 누가 발목을 잡았나요? 어부는 겸연쩍게 웃는다.
“제가 잡았죠.”
해녀는 어이가 없는지 ‘푸하핫’ 하고 웃는다.
“별일이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이네. 늘 내가 발목을 잡았다더니….”
해녀는 마침내 어부의 자백을 받아냈다. 기분이 좋은 것일까, 처녀 적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간 것일까? 목소리에 설렘이 묻어난다. 어부가 볼락 한 마리를 회 떠 서비스로 가져다 준다. 해녀는 큼직한 전복 하나를 통째로 잘라 준다.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에요. 자연산.”
자백을 받아내 준 보답이리라. 아, 이 정겨운 맛을 평생 어찌 잊을 것인가?
글과 사진 강제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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