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잘 봐. 여기서 멈춘 다음 ‘퉁’ 소릴 내면서 다음 박자를 시작하는 거야.”
동생들의 실수를 하자 서민지(16)양이 타이르듯 자세히 알려준다. 반복된 실수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서양은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인천 계양구 명현중학교 다목적실. 이곳에선 모듬북 동아리 ‘해오름’의 연습이 한창이다. 9명이 함께 내는 우렁찬 북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운 뒤 창문을 넘어 운동장까지 퍼져나간다. 표정에선 난타 공연 배우 같은 진지함이 묻어난다.
사실 이 동아리는 올 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3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부원이 단 두 명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머지 한 친구마저 전학을 가게 되면서 3학년이 된 서양은 한동안 혼자 북을 두드려야 했다. 하지만 서양은 포기하지 않았다. 홍보자료를 만들어 1, 2학년 교실을 직접 찾아다니며 부원을 모았고 동아리는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났다. 서양은 “오랜 전통을 가진 동아리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며 “후배들에게 더 많이,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명현중학교는 인근 지역에서 대학 못지않게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총 9개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종류도 많지만 선후배 간에 자체적인 운영 노하우를 전수할 정도로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게 특징이다.
다목적실 옆에선 줄넘기 동아리의 연습이 한창이다. 줄넘기로 무슨 동아리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단체 줄넘기 대회에도 참가할 만큼 고수들이다. 손님이 왔으니 특별히 보여준다며 바깥에 있는 큰 줄과 안에 있는 작은 줄을 동시에 돌리는 묘기도 선보인다. 김현지(16)양은 “줄넘기를 하면 몸도 가벼워지고 스트레스도 풀린다”며 “혼자 하는 운동은 대부분 승부욕만 강조하지만 줄넘기는 기록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동아리를 지도하는 최경화 교사는 “처음에는 실수한 친구를 비난하기도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서로를 이끌어주는 방법을 깨달아가고 있다”며 “23명이나 되지만 한 몸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지만 줄넘기 동아리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기록을 경신하거나 입상하는 것보다 연습 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듬북 등 9개 동아리, 선후배끼리 운영 노하우 전수
음악실 한 켠에 자리 잡은 합주실에서는 익숙한 전자음이 들려온다. 밴드 ‘E.L’이 연주하는 음악이다. 프로 같은 깔끔함은 없지만 건반과 베이스가 멜로디 사이사이 빈 공간을 잘 메워나간다.
그루브를 살리는 보컬의 싱싱한 목소리도 흥미롭다.
‘E.L’은 매년 학교 축제 때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동아리다. 밴드를 이끌고 있는 한창호(16)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다.
장래희망 역시 기타리스트다. 학교의 작은 합주실에서 조금씩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셈이다.
본관 건물 앞에서는 천체관측 동아리 ‘GM’ 부원들이 천체망원경을 조립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2009년에 만들어 역사는 짧지만 지난해 전국학생천체관측대회에 나가 은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천체관측대회는 기초적인 지구과학 지식, 망원경 조립과 실제 별자리 관측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대회다.
지난해 선배들이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동아리에 들어왔다는 최희주(15)양과 박수지(15)양은 “동아리 활동 자체도 즐겁지만 선배들에게 배우면서 수업 내용을 예습하고 복습할 수 있어 효과가 두 배”라고 말했다.
모듬북과 중창단 등 음악 관련 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임진아 교사는 “동아리 활동은 본인도 모르는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며 “무언가에 열정을 쏟으면서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해보려는 의지를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이 학교가 동아리 활동을 더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명현중학교는 2011년 말 좋지 않은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일부 학생이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됐는데, 마치 학교 전체가 학교폭력의 온상인 것처럼 잘못 알려졌다. 이 일로 학생은 물론 교사들도 큰 상처를 입었다. 송진성 교감은 “당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 생각하면 학교 구성원들이 하나가 돼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학교를 밝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 고맙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다목적실 건너편에선 중창 연습이 한창이다. 합창곡으로 널리 알려진 ‘여유 있게 걷게 친구’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곡이지만 중창 동아리 ‘Iris’ 부원들은 노래 가사처럼 여유 있게 연습을 진행해나갔다. 담당 선생님의 지휘 없이도 스스로 파트를 나누고 저마다의 역할을 정했다.
3학년 박채연(16)양에게 합창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제법 어른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혼자 내는 소리는 아무리 잘해도 단조로움을 피하기 어렵지만 함께 내는 소리는 그 자체로 조화롭다.” 굳이 말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명현중학교 학생들은 이미 함께하는 즐거움을 스스로 체득하는 중이다.
글·장원석 기자 /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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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