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국보 1호 숭례문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부활했다. 맹위를 떨치던 동장군도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물러난 듯했다. 2월 14일 숭례문 주변 풍경이다.
문화재청은 이날 서울 남대문로 복구현장에서 ‘숭례문 복구 마무리 현장 설명회’를 갖고 숭례문을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김찬 문화재청장은 “일제강점기 때 잘려나간 성곽을 복구하고 전통재료와 기법을 사용해 숭례문을 복원함으로써 좀 더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옛 모습을 갖추게 됐다”며 “첨단 방재설비를 구축해 화재에 강한 숭례문이 됐다”고 밝혔다.
소실된 숭례문의 복원까지는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문화재청은 화재수습-복구준비-복구공사 등 크게 3단계로 나눠 작업했다. 2월말 현재까지 전체 공정의 96퍼센트가량이 진행됐다.
숭례문 전각 복구공사는 이미 100퍼센트 마무리한 상태다.
다만 방재시설을 제어관리할 관리동 공사와 잔디·수목 식재, 박석 설치, 마사토 포장, 지반·배수로 정비, 임시 울타리 해체, 관람시설 설치 등 소소한 주변정비 작업만 남았다. 문화재청은 나머지 공정을 모두 마친 4월말 이후 숭례문과 관련 있는 날을 받아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14일 공개한 숭례문은 이전의 모습과 닮은 듯 달랐다. 우선 건물의 옷에 해당하는 단청이 화려함을 벗고 수수해졌다. 과거 분홍·노랑 등 원색으로 치장했던 숭례문의 단청은 조선 초기 색조에 가깝도록 청아한 뇌록(잿빛을 띤 녹색)과 삼청(하늘빛 같은 푸른색)을 주색으로 했다. 인공안료(페인트) 대신 돌가루 등을 재료로 한 전통안료인 석채를 사용했다.
숭례문 복구작업은 한마디로 최초 건축 당시의 원형을 최대한 되살리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성곽을 새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발굴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동쪽 53미터, 서쪽 16미터의 성곽을 복원했다. 동쪽 계단 폭도 2.9미터에서 5미터로 넓혔고 숭례문 지반도 화재 전보다 30~50센티미터 낮췄다.


지붕 기와도 공장제 대신 전통기와로 교체했다. 용마루는 1961년 해체 전 도면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15.7미터에서 16.6미터로 늘려 복구했다. 1층 지붕 위 잡상도 8개에서 7개로 변경했다.
6·25전쟁으로 훼손됐던 현판은 지덕사에 소장된 탁본을 참고해 조선시대 필체로 다시 제작했다. 홍예 천장의 용 그림은 조선 초기 양식대로 재현했다. 1층 마루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에서 긴 판재를 까는 장마루로 변경했다.
이번 복구 과정에서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방재시설이다. 두번 다시 방화 등 화재로 인해 국보 1호를 잃는 일은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복원된 숭례문에는 CCTV·스프링클러·불꽃감지기 등 초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했다.
이런 외형변화와 달리 건물 골격은 기존 목재를 최대한 활용해 복구의 의미를 강조했다. 불에 그을린 부분은 긁어내고, 탄 부분은 잘라내 새로운 나무를 전통기법으로 이어 붙여 재사용했다. 아래층은 90퍼센트 가까이 기존 목재를 활용했고, 훼손이 심했던 상층부도 10퍼센트 이상은 재사용한 목재다.
숭례문 복구를 주도한 무형문화재 신응수 대목장은 “새 목재로 지은 것 같지만 기둥 전체를 교체한 것은 하나도 없다. 기존 목재를 가능한 한 되살린 만큼 국보 1호로서 가치는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글·박기태 기자 사진·지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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