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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똑같은 사람은 없어요 우린 그냥 친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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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생니~임.”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까만 히잡을 쓴 여자 아이가 복도 끝에서 또렷한 한국말로 ‘선생님’을 부르며 뛰어왔다. 이 아이는 금세 온누리반 정상하(34) 교사의 치마 끝에 매달리더니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10분여의 쉬는 시간 동안 교실과 복도에는 한국 아이들을 비롯해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선생님들 주위를 돌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지난 9월 10일 오전에 찾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안산 원곡초등학교 풍경이다. 이 학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수용하고 있는 공립학교다. 총 309명의 학생 중 189명(61퍼센트)이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다. 하지만 피부색만 다양할 뿐 공부하고 뛰노는 모습은 한국의 여느 초등학생 모습과 비슷했다.

주변이 공단 지역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 특성상 이 학교도 국내 가정의 아이들보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해마다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현재 6학년 아이들의 29퍼센트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인 데 비해, 1학년은 85.8퍼센트로 다문화가정 학생 수가 절반을 훌쩍 넘었다.

이 학교는 점점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2009년부터 특별학급인 온누리반을 운영해 왔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면 일단 일반 학급에 배정 받아 한국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으나, 이 중 한글을 읽고 쓰는 게 서툰 다문화가정 아이들만 별도로 온누리반에서 주당 10시간 내외의 한국어 보충 수업을 받는다.

2009년 당시 1개 학급에 불과했던 온누리반은 현재 3개 학급으로 늘었다. 학교는 온누리반 외에 한국어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예비학교 1개반도 운영 중이다.

이날 정 교사에게 달려온 아이는 방글라데시 국적의 라모바(가명·11) 학생이다.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 온 라모바도 일반 학급과 온누리반을 오가며 수업을 받고 있다. 중국 국적인 이진가택(9)도 지난해 부모님과 함께 중국에서 한국으로 중도 입국해 입학했다. 학교에 들어온 지 1년이 채 안됐는데 벌써 한국말이 익숙하다. 이진가택은 “최근에 태권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지금 빨간띠”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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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 교육 통해 각자의 문화존중 습관 배워

이 학교의 다문화가정 아이들 중 70퍼센트가 한 부모 이상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 밖에 중동, 아프리카, 베트남 등 총 15개국 출신의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공존한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특별한’ 아이들로 여겨질 여지가 없는 환경이다. 이 때문에 학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특별대우하지 않고, 한국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상생’하는 것을 교육 이념으로 삼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여하는 문화를 만들어 ‘누가 더 특별하고, 누가 더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마침 운동장에선 다양한 피부색의 아이들이 모여 ‘꼬리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온누리 학급과 일반 학급, 예비 학급 등 3개 학급의 학생들이 다 같이 모여 신나게 뛰어 놀았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어울림 수업, 즉 통합형 교육프로그램의 하나였다.

어울림, 상생 교육은 한국 아이들에게도 혜택을 주고 있다. 한 사례로 지난해 고학년 아이들의 음악 수업에 아프리카 전통 음악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프리카 콩고 출신의 부모를 둔 알리야(9)가 그 반에 초대돼 아프리카 춤을 선보여 아이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아이들은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아프리카 사람들의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피부색이 달라 마음을 열기 꺼려하던 소수 인종의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이제는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당당히 얘기하고 교류하고 있다. 히잡을 쓰고 다니는 라모바는 처음엔 장난삼아 히잡을 벗기려고 하는 아이들 때문에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 모습을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 함께하는 어울림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히잡을 쓰는 것이 그들이 가진 종교(무슬림)의 문화이자 지켜줘야 할 약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곱슬머리인 알리야가 머리를 갈래갈래 따고 오는 것을 호기심으로 쳐다보던 아이들도 이제는 “예쁘다, 부럽다”며 인종의 다양성을 장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학교에선 이중언어 강사가 일주일에 한두 시간 모국어 수업도 진행 중이다. 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모국의 문화·역사·지리 등을 주제로 신문을 만들어 2학기 중 각 학급에 배포할 예정이다. 신문을 만드는 아이들은 한국 및 다른 국적의 학생들에게 교육기부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이를 모범으로 삼아 서로가 서로에게 기여하는 문화를 조성해 나갈 수 있다.

아빠가 한국인이고, 엄마가 베트남인으로 결혼이주 가정의 자녀인 선주(가명·9)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아직 한글을 읽는 게 서툴러 온누리반에서 일주일에 서너 시간 보충수업을 받고 있다. 선주에게도 추석은 기다려지는 명절이다. 선주는 “설이나 추석 명절에 한복을 입어본 적이 있다”고 자랑하며 “곧 다가올 추석에는 맛있는 음식도 먹고, 베트남 쌀국수가게를 하는 엄마를 돕겠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글·박미숙 기자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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