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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우리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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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인천 소청도 앞바다. 순찰 중이던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502함 레이더에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들이 포착됐다. 고속단정이 바다에 내려지고 9명의 해상특수기동대원들은 불빛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20분 동안 달려 중국 어선에 접근했다.

“(어선에) 붙을 수 있겠어?”

“파도가 너무 심합니다.”

비까지 추적추적 오는 날씨 탓에 등선(고속단정에 탄 대원이 어선 위로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갑자기 어선 위에서 쏜 강한 불빛이 고속단정을 비췄다. 눈치를 챈 것이다. 단속에 놀란 중국 선원들은 통발 등 어구를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쾅.’

엄청난 굉음에 대원들은 귀를 막았다. 중국 선원들은 자체 제작한 사제 폭탄까지 동원했다. 단속 현장 곳곳에는 엄청난 물기둥이 솟았다. 현장을 지휘하던 김정훈(43) 경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이야. 올라가!”

대여섯 명의 선원들이 휘두르는 쇠꼬챙이를 뚫고 유재혁(30) 경장이 등선에 성공했다. 일단 해경 대원이 배에 오르자 선원들은 포기한 듯 물러났다. 대원 모두 무사히 배에 올라 선원들을 체포했지만 선장은 마지막까지 극렬하게 저항했다. 네 명의 대원이 달라붙어서야 겨우 상황이 끝났다. 불과 30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원들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희에겐 일상이죠 뭐. 괜찮습니다. 위험하긴 해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검색팀장인 김정훈 경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한 반응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 여유 있는 표정에서 묵직한 책임감이 전해진다.

“그만 좀 넘어왔으면 좋겠는데(웃음). 아무래도 가장 큰 어려움은 육지가 아닌 바다라는 점 아닐까요? 3~4미터의 파도면 고맙다고 할 정도니까요. 중국 어선들도 기상이 안 좋을 때를 골라 불법 조업을 하기 때문에 작전은 늘 힘들죠. 갈수록 거칠어지는 것도 문제고요. 바다 위에서 제일 위험한 게 뭔지 아세요? 바로 불이에요. 단정에 불이라도 붙으면 모두 뛰어내려야 하니까요.

LPG통에 불을 붙여 저항할 때는 진짜 위협적이죠.”

유재혁 경장은 지난해 등선 도중 발목 인대를 다쳤다. 파도에 맞춰 점프를 해야 정확히 배에 오를 수 있는데 워낙 격렬히 저항하는 탓에 중심을 잃었다.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맨 앞에서 등선하는 ‘1등 대원’에게도 단속 작전은 늘 위험한 일이다.

“겨울이었어요. 가장 먼저 등선했는데 나머지 대원들이 안 따라오는 거예요. 다음으로 등선하던 대원이 물에 빠지는 바람에 구조에 나서느라 미처 못 따라온 거죠. 총을 꺼내 들었는데 20명 정도 되는 선원들이 저 하나만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아찔했죠. 바다에 그냥 뛰어내릴까 심각하게 고민했죠. 겨울이라 못 뛰어내렸어요(웃음). 다행히 선원들이 쉽게 포기하더라고요. 대원들도 금방 따라붙어 주었고요. 작전 중 가장 위태했던 기억이에요.”

 

2

 

“북방한계선 넘어가 놓칠 때 가장 억울해”

웃으며 말했지만 적진에 홀로 남은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김성겸(29) 순경은 아직도 어둠만은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눈치를 채니까 접근할 때까지는 아예 불을 끄고 이동하죠.

등선할 때도 휴대용 랜턴 하나에 의존해야 하니까 쉽지 않죠. 선원들은 단속을 피하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거든요. 뭔가에 맞긴 했는데 그게 뭔지도 몰라요. 보이질 않으니까. 작전이 끝나고 나서야 통증이 오죠(웃음).”

서해 중에서도 인천해경의 관할지역은 단속이 특히 어렵다.

어선들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쪽을 향해 도망가면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김 경사는 “어선이 NLL로 넘어가는 바람에 돌아서야 할 때가 가장 억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불법조업을 하다 적발되면 선원들은 조타실에 모여 문을 잠근 채 북쪽을 향한다. 대원들이 문을 부수고 진입을 시도하지만 그 시간 동안 어선이 NLL을 넘으면 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단속을 포기하고 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대원들은 한 달 평균 15~20일 정도를 바다에서 보낸다. 4박5일, 8박9일 단위로 교대하며 순찰에 나서야 하는 탓이다. 조업이 많은 시즌에는 연장 근무, 태풍이라도 오면 비상 근무다.

“집에서 자는 날은 한 달에 열흘 정도예요. 8세, 4세인 두 딸이 늘 눈에 밟히지만 괜찮습니다. 해양경찰이라는 자부심이 있으니까요. 작전을 마치고 대원들과 안전하게 돌아올 때의 그 기분 때문에라도 이 일을 포기할 순 없겠죠.”

김 경사의 말이다. 미혼인 유 경장과 김 순경은 여자 친구가 없다. 생활이 규칙적이지 않으니 연애도 쉽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은 일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평범한 삶도 좋지만 제 직업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아니까요. 위험하고 힘들어도 우리 바다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가겠습니다.”

최근 3년간 우리나라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가 해경에 나포된 중국 어선 수는 2010년 370척, 2011년 534척, 2012년 467척 등 약 1,400여 척에 이른다. 올해도 240척을 나포했다.

그래도 거친 서해바다를 뜨거운 열정으로 지키는 이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편안한 육지를 뒤로 하고 오늘도 해경 대원들은 바다로 나간다.

글·장원석 기자 201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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