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엄마가 무슨 과학자예요?”
지난해만 해도 초등학교 1학년인 혜인이는 엄마가 과학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자신의 숙제를 봐주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마트에 다니며 장을 보는 게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1년이 흐른 현재, 누군가 엄마의 직업을 물어보면 혜인이는 “우리 엄마는 과학자예요!”라며 뿌듯하게 대답하곤 한다. 얼마 전 엄마가 일하느라 학부형 수업 참관행사에 오지 못했을 때도 “학교에 오진 못해도 과학자인 엄마가 훨씬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딸의 응원을 받은 이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지혜로(38) 연구원이다. 한지혜로 연구원은 1년 전만 해도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아이 공부를 봐주고 집안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일을 그만두기 전 한지혜로 연구원은 4년 동안 한 바이오 벤처기업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홍익대학교에서 화학시스템공학과를 졸업하고 아주대학교에서 신경과학기술협동과정 석사를 마친 ‘과학도’였다. 회사에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을 했던 한 연구원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했다. 그러나 혜인이를 출산하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에 다니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하는 엄마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또 직접 제 손으로 딸을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결국 사표를 냈죠.”
한 연구원은 “연구자로서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게 아쉽지 않느냐”는 회사 동료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그는 6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엄마로서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한 연구원은 자신의 ‘꿈’에대해 생각하게 됐다.
“학원에서 과학 강사로 잠시 일을 했어요. 제가 가르친 아이들은 의대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중학생들이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꿈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되긴 하죠. 그런데 제 길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하고 싶었던 과학자, 연구자의 길이 그리워졌죠.”
그러던 지난해 8월, 한 연구원은 우연히 ‘엄마에서 연구원으로’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다 장비기사를 수료하고 연구소에서 근무하게 된 이의 사연을 담은 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으며 한씨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통해 재취업에 성공
“그분의 이야기가 마치 제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6년이나 일을 쉬었는데 과연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실은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기사를 읽으며 저도 얼마든지 다시 ‘연구원 한지혜로’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한 연구원은 바로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기사 속 여성 역시 이 기관의 도움을 받았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WISET은 경력이 단절된 여성 과학자들을 선발해 연구기관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그 공지를 보는 순간 주저 없이 바로 지원했어요. 남편과 딸에게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도전하고 봤죠(웃음).”
현재 한 연구원은 서울 아산병원 정형외과와 생체재료를 공동 연구하는 전임상 시험을 수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은 아산병원으로, 2일은 KIST로 출근한다. 6년 동안 다른 일을 하다 연구원으로 새 출발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한 연구원은 영어 논문을 읽고 실험을 하는 게 매우 낯설었다고 했다.
“회의를 할 때 휴대폰으로 그 내용을 다 녹음했어요. 그리고 그 내용이 이해될 때까지 수차례 반복해서 들었죠. 반복해서 듣다 보니깐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게 되고, 그래도 모르면 계속 물어봤죠. 그렇게 점점 연구에 익숙해졌어요. 또 저보다 열 살에서 열다섯 살 정도가 어린 연구원들이랑 어울리는 게 쉽지 않았는데 제가 자꾸 먼저 다가갔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깐 저도 모르게 사교성은 많이 좋아졌더라고요(웃음). 지금은 많이 적응했어요.”
한지혜로 연구원의 꿈은 ‘바이오 엔지니어’다. 전임상 시험을 위해 필요한 실험의 전반적인 것들을 계획해주는 게 그의 목표다. 그러면서 그는 경력단절로 힘들어 하는 여성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든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다면 얼마든지 현업에 복귀하고, 또 적응도 잘 해낼 수 있다”며 “직장일과 집안일 모두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슈퍼우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상황을 이해시키고, 남편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글·김혜민 기자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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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