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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화학에서 인생과 인문학을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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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시절 아이가 아플 때면 유치원을 보낼 수도, 내가 학교 수업에 빠질 수도 없어 발을 동동 구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45년간 화학을 연구해 온 황영애(68) 상명대 명예교수는 아직도 그 시절만 떠올리면 가슴 한 편이 쿡쿡 아려온다. 함께 박사과정을 밟은 남편은 아이 문제나 집안일에 있어서 늘 뒷전에 있는데 반해 과학자이기 전에 ‘엄마’였던 황 교수에게는 학업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어느 분야나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과학 분야에서도 여성에게 유리한 점은 결코 없었어요.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문제라기보다는 결혼이나 육아로 인한 가정의 문제였죠. 혹자는 연구직이면 그래도 좀 편하지 않으냐고도 하는데 흔히 생각하듯 하나 더하기 하나를 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밤새도록 실험하는 일도 잦은데 아이를 둔 엄마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죠.”

<세계문학전집> 읽기를 좋아하던 부끄럼 많던 여고생은 화학수업을 하던 총각 선생님을 짝사랑하며 흥미가 생겼다. 선생님이 아닌 화학과 본격적인 사랑에 빠진 건 이듬해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서울대 화학과 정원 30명 중 여학생은 4명뿐이었다. 황 교수는 “그 정도면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수”라며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 여자 동기들과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공계 여대생이 극히 드물던 시절 결혼·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눌 유일한 대상은 처지가 비슷한 동료들뿐이었다.

“흔히 여성 과학자의 강점으로 섬세함을 꼽는데 저는 손끝이 야물지를 못했어요. 실험할 때는 꼼꼼함이 필수인데 그렇지 못해 공부가 힘들게 느껴질 때도 많았어요. 오랫동안 공부해 온 저도 그런데 학생들은 오죽할까 싶어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즐겁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 고민의 해답은 인생에 있었다. 황 교수는 화학적 원리에 인간 관계를 대입해 강의했다. 그는 “과학으로서 화학을 바라보면 어렵게 느낄 수 있는 것도 인생에 빗대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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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대중화가 곧 과학 발전”… 중·고교 무료강의 희망

“화학은 정확한 학문이에요. 하나가 모자라면 상대방에게 내 것을 내어주는 게 기본 원리죠. 어느 물질 하나 무의미한 건 없어요. 가령 촉매제를 예로 들면, 촉매라는 건 두 가지 물질이 반응할 때 그걸 도와주는 물질이에요. 그 반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자체 생성물을 만들지 않는 희생적인 물질이죠.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과시하지 않는 모습이 우리 인생에 깨달음을 주지 않나요?”

‘화학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하는 제자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그의 보람도 늘었다. 제자 중에는 그의 교수법을 벤치마킹해 교단에 선 이들도 있단다. 인문학적인 강연으로 과학적 이해를 돕는 그의 수업 방식은 어찌 보면 대립각을 세우는 일로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인문학을 넘어 종교에서도 과학적 원리를 발견한다. 뒤에서 힘을 보태주는 중성자 이야기로는 ‘겸손’을, 플라스마의 산화 정신으로는 ‘순교자의 삶’을 풀어낸다. 필수원소와 독성원소는 ‘선을 가장한 악’을, 제설제와 부동액은 ‘기도와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게 한다.

“‘과학과 종교의 만남’이라면 흔히 성경에 나오는 일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종교적 현상을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학이라는 학문이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인문학도 그런 의미에서 과학과 대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접점에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황 교수는 자신의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 <화학에서 영성을 만나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중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는 교육부가 선정한 우수 과학도서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저서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중·고등학교를 돌며 무료 강의를 펼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다. 과학의 대중화가 곧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과학, 그 중에서도 기초과학 분야는 정말 중요한 학문입니다.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응용 분야도 발전할 수 있죠. 미래 과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제가 조금이나마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허정연 기자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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