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웃을 둘러싼 뉴스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5월 14일 인천의 한 2층 주택에서 불이 났다. 층간소음 시비를 겪던 72세 집주인이 50세 세입자 집에 불을 지른 것이다. 이 불로 세입자의 딸과 딸의 남자친구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집주인과 세입자는 1년여 전부터 층간소음으로 자주 부딪쳤다. 1층에 살던 세입자가 체력 단련을 위해 천장에 샌드백을 달면서부터다.
2층에 살던 집주인은 수차례 아랫집에 주의를 당부했다. 하지만 바닥에서 나는 ‘쿵쿵’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이날도 집으로 들어가던 집주인은 계단에서 마주친 세입자에게 “왜 계속 시끄럽게 하느냐”고 따졌고 세입자는 “그런 적이 없다”고 태연히 맞섰다.
화를 참지 못한 집주인이 1층에 불을 지르면서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빚어졌다. 집주인이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맺은 것은 10여 년 전이다. 두 가족은 층간소음 문제가 일어나기 전까지 별다른 다툼 없이 잘 지내던 ‘이웃사촌’이었다.

“이웃 간 분쟁은 도시화가 만든 구조적인 문제”
10여 년 이웃사촌에게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던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특별히 범죄를 잘 일으키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1회성으로 홧김에 벌이는 범죄는 일반인이라도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으면 일으킬 수 있다. 사실 이웃 간 갈등은 범죄 역사로 볼 때 가장 오래된 범행 동기”라고 말했다. 아래층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소음을 들으면서 오랜 시간 스트레스가 쌓인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소음 문제를 두고 윗집 주인이 수차례 항의를 하고 아랫집 세입자가 이에 항변하면서 이웃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결정적인 몇 마디 언쟁으로 사태가 악화된 것이다.
이웃 간에 감정이 상해 폭력이 벌어지는 원인은 층간소음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차를 빼 달라, 못 뺀다는 등 사소한 시비가 빈번히 일어난다.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쓰레기로 이웃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환경이 나빠졌을 때도 고성과 드잡이가 오간다.
이 교수는 “예전에는 다툴 일도 아니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문제가 되고 있다. 공동주택이 늘어나는 등 삶의 조건이 과거에 비해 달라지면서 갈등과 범죄의 양상이 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처럼 많은 인구가 좁은 지역에 과밀하게 몰리면서 충돌할 기회가 늘어난 것이다. 이웃 간 분쟁은 도시화가 만든 구조적인 문제라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층간소음 문제가 한국에서 유독 격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아파트는 각종 소음 기준과 건축 기준에 맞춰 설계된다. 한국의 아파트 역시 일정한 층간소음을 줄일 수 있도록 설계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소음 기준이 두꺼운 양탄자를 사용하는 서구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맨발로 마룻바닥을 걷는 한국의 생활양식과 맞지 않아 층간소음이 크게 난다는 것이다.
동신대 조경학과 국찬 교수는 층간소음이 1980년대 이후 주택 보급이 급속하게 늘어나던 시기에 이미 잉태됐던 문제라고 지적한다. 갑자기 많은 아파트가 필요해지자 한국 건설업체가 저렴하게 집을 지으면서부터다. 본래 자갈층·단열층·난방코일·모르타르 등 여러 층으로 바닥을 만들어야 하지만 저렴하고 시공성이 좋은 경량기포콘크리트를 쓰면서 아파트 각층의 바닥 두께가 얇아진 것이다. 경량기포콘크리트가 약 25년간 한국의 아파트건설에 사용돼 많은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 문제가 빚어진다는 분석이다.
최근 새로 지어진 대형 아파트에는 층간소음이 많이 나지 않는 신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소규모 영세 건설업체가 짓는 공동주택은 저렴한 시공법을 사용하고 있어 층간소음 문제를 겪고 있다.
층간소음은 다른 소음에 비해 스트레스를 더 많이 준다고 한다. 층간소음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구를 때 나는 63~125헤르츠 사이의 낮은 주파수 대역에서의 소음이다. 주파수가 낮으면 소리뿐 아니라 진동까지 전달된다. 소리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도 높고 밀폐된 아파트 안에서는 잔진동이 큰 불안감을 준다.
특히 주변 소음이 적은 밤에는 그 불안이 극히 커져서 불쾌감으로 확대된다.
국 교수는 “아무리 층간소음이 심하다 해도 위층에서 자신들의 손자가 뛰논다고 생각하면 예쁜 소리라고 느껴질 것”이라며 “결국 소음 문제보다는 이웃과의 관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물리적인 소음 문제는 기술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관계문제는 서로 얼굴을 대하지 않으면 해결할 도리가 없다”면서 “심리적인 불만을 서로 풀 수 있도록 공동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도 이웃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웃간 갈등 해소는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는 방법밖에 없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이 중재자 역할을 맡거나 이웃들이 다른 활동을 통해 서로 얼굴을 익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방법도 좋다”고 추천했다.
글·박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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