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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암기뿐인 공부라 흥미가 안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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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울의 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한지연(17)양은 몇 주 전 수업 중 한국사 선생님으로부터 “요즘 학생들이 역사에 대해 너무 모른다. 신문에도 온통 그 이야기다”라는 말을 듣고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한양은 “일제강점기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더 많이 알고 싶어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판서를 베끼고 주요 사건의 연도나 사람 이름을 암기하는 게 공부의 전부다.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거나 내막을 자세히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얼마 전 치른 기말고사에서도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서울 강동구의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인 김지울(18)군은 원래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때 학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시청각 자료로 각종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흥미가 생긴 덕분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올라온 뒤에는 역사는 재미로 공부하는 과목이 아니라고 느꼈다. 다른 과목에 비해 수행평가나 현장학습 등의 기회가 더 적고, 시험범위까지 진도를 나가기 위해 수업을 빨리빨리 진행하다 보니 좋아하는 전쟁사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중학교 때처럼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일도 적었다. 김군은 “고등학생이 된 이후 역사공부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슬기(가명·18)군은 현실적인 이유로 역사 공부를 멀리하게 된 경우다. 수학능력시험에서 사회탐구영역의 선택과목을 2개 고르게 되는데 한국사를 반영하는 대학은 서울대학교밖에 없다.

이군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주로 한국사를 선택한다. 한국사는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확 떨어진다. 어차피 수능시험 과목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다른 과목에 비해 소홀해진 것이 사실이다. 공부할 과목은 많고 시간은 부족해서 대입 비중이 큰 국어, 영어, 수학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은영(가명·17)양은 최근 치른 수능 모의고사에서 한국사 문제의 절반밖에 풀지 못했다.

학교 한국사 수업에서 앞부분을 건너뛰고 조선 말 개화기부터 배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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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도 형평성 논란 탓에 선별 교육에 어려움 느껴

4김양은 “선생님이 ‘중학교 때 다 배운 내용이고 진도 나가는 게 급하니 앞부분은 건너뛰자’고 하셨는데 앞부분 기억이 안 나서 문제를 풀지 못했다. 다른 학교 친구는 집중이수제라 1학년 때는 한국사 수업이 없고 2학년 때 일주일에 4번 수업하는데, 모의고사 문제 대부분을 못 풀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역사 교육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박현주(가명) 교사는 “사실 한국사는 공부할 내용도, 암기할 내용도 많은 과목이다. 중요한 내용을 선별해서 자세히 가르치면 좋겠지만 자칫 형평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학생들이 요점 위주로 학습하고 내용을 기계적으로 암기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이성호 회장은 “사실 한국사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과목이라 좀 더 재미있게 배우도록 장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하도록 연극을 하거나 재판을 재연하는 식으로 수업 방식을 다양화하고 청소년 역사캠프를 운영하거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 관련 청소년 대중서적을 펴내는 등 역사 교사들의 노력도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박미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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