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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한옥마을 이미지化에 성공 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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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들 참. 올망졸망한 아이들 셋이 손에 든 신발주머니를 달랑달랑 흔들며 골목을 다니는 모습에 지나는 이웃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4월의 마지막 날, 전주한옥마을 남쪽을 흐르는 전주천을 가로지른 남천교에서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곳곳에 봄꽃이 만발한 한옥 골목을 음미하면서 고택 학인당(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1908년 건립)을 지나 마주친 골목 안 풍경이다.

아이들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학원 마치고 또 다른 학원에 가는 길이라나. 대한민국 어린이들은 어디에서나 바쁜 모양이다. 통통한 볼살, 윤기 흐르는 가무잡잡한 피부가 햇빛 많이 받고 자란 건강한 모습들이었다. 몇 학년인지 물었다.

“얘는 1학년이래요.”

“그래? 그럼 너는 2학년?”

“얘도 1학년이래요!”

애고, 이러다 싸울라. 셋 모두 1학년생이었다. 사진 ‘한방’ 찍자는 말에 잠시 포즈를 취하고는 다시 함께 학원 방향으로 달려갔다. 전주한옥마을 덕분에 지난해 전주를 찾은 관광객이 700만 명을 돌파하고 평일에도 2만 명이 전주를 찾는다지만 한옥마을 골목골목에는 이렇게 정겨운 모습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전주한옥마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사적 제339호) 주변의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1930년대부터 형성된 한옥군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 도시재생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인근의 전동성당,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매력이 있다.

전주시가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한국적인 한옥마을’이란 비전을 갖고 추진해온 ‘전통문화도시’ 사업은 이곳 한옥마을을 중심축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한옥마을 안에 부채·소리·완판본의 3대 문화관이 2011년 문을 열었다. 전통 생활양식의 근간인 한옥·한식·한지·한국소리(판소리) 등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한스타일’의 거점도시로서 전주의 기능은 한옥마을에서 멀지 않은 완산구 현무1길에 한지산업지원센터가 2010년 문을 열며 한층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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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담은 ‘한스타일’ 거점도시

하지만 전주한옥마을의 매력은 이러한 사업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한옥마을 안에는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고택들, 크고 작은 박물관과 체험관, 감각적인 카페와 갤러리, 맛집들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관광객 일색의 거리 풍경이 아닌, 한옥마을 사람들이 느긋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에서 바쁜 현대생활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일상의 원형을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란.

“와서 보니 또 볼 게 있네. 뒷골목도 있네, 이러면서 한옥마을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700만으로 추정되는 관광객은 불과 몇년 전에는 생각도 없었어요.”

송하진 전주시장이다. 송 시장은 이날 전주향교와 이웃한 전통문화관 경업당에서 열린 2013 문화도시·문화마을 포럼에 참석해 전주한옥마을을 ‘문화도시’ 성공사례를 소개했다. 한옥마을에 들어서기 전 들른 포럼에서 들은 송 시장의 말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국제슬로시티 등 각종 타이틀들을 딸 수 없을 만큼 따내다보니 우리 스스로 어떤 도시로 불러야 할지 정체성에 혼란이 올 정도입니다.”

포럼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신발 벗고 마룻바닥으로 들어가니 천장의 용마루와 서까래가 보이는 경업당은 ‘역시 전주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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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관광의 조화 이룰 지혜 필요” 지적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가는 ‘초딩’들과 헤어져 계속 한옥마을 골목 탐험을 하다 우물 있는 마당에 눈길이 꽂혔다. 옛날 방식으로 땅을 파고 둥근 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우물의 깊이는 15미터 가량. 안을 들여다보니 바닥 아래 반짝이는 물 표면이 보인다. 우물 옆에 놓인 황동색 두레박, 붉은 모란이 활짝 피었다. 일주일전 문을 열었다는 모란갤러리 게스트하우스다.

“100년은 된 모란이에요. 모란은 5월이 가장 예뻐요.”

이곳 주인 박명수(56)씨는 1940년대 조부가 지은 집을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330평방미터의 대지 위에 본채와 별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와 마주보고 있는 황토색 담장도 유서 깊다.

“저 담장이 원래 학인당 담장이에요. 학인당 규모가 조금씩 줄어들어 지금 규모가 됐지만 우리 집과 경계했던 담장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돌우물과 140년 된 감나무, 100년 된 모란과 학인당 담장은 한옥마을이 아니라 흔한 도시 재개발이 이루어졌다면 어떠한 운명을 걷게 됐을까.

물론 이곳 주민 입장에서는 미흡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건축업을 했다는 이곳 주인장은 외국여행 경험도 많았다.

“지나치게 전통만 고집하다 보니 저녁 8,9시만 넘어도 거리가 썰렁해요. 우리가 외국여행 가서도 숙소에 들어가 샤워하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 맛있는 음식도 먹거나 간단한 음주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9시만 넘으면 다들 문을 닫아버려요. 전통 한옥마을과 관광지로서의 특성이 50 대 50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바베큐 시설이 되어 있는 게스트하우스 뒷마당까지 골고루 구경하고 한옥마을 내 태조로와 은행로 교차 사거리의 파전집에서 김치전을 주문했다.

“손님이 하나도 없네. 오후 5신데 김치전 하나로 개시했어!”

자신의 남편이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신은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서 시집왔다는 여주인은 지나는 관광객들이 많지만 실제매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여주인은 자신이 TV방송에 ‘벌떡주’와 파전 뒤집기 재주로 등장한 적이 있다며 은근히 자랑도 했다. 몸에 좋은 약재를 넣어 직접 담근 모주가 ‘벌떡주’란다.

요즘은 다른 가게들이 공장에서 생산된 모주를 판매해 지난 가을 이후 안 만든다고 했다.

“지금은 꼬마치들 세상이잖아. 외국인 관광객? 여그 와야 잘 안 먹어. 중국 애들은 뭐 살라면 100원, 200원 내놔. 서울 가서는 화장품 500만원씩도 산다드만.”

외국인 관광객들은 전주가 지방이니 서울보다 쌀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경기전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중앙초등학교 담벼락에 ‘전주에 반해버린 영화’란 제목으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늑대소년> <신세계> <반창꼬> <평양성> 등 최근 제작된 영화들이 전주종합영화촬영소를 비롯해 전주 곳곳에서 촬영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최근 3년간 전주권역에서 촬영한 영화가 152편에 달한다고 한다.

사진전은 4월 25일부터 5월 3일까지 열린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JIFF)의 부대행사 중 하나였다.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메인스트리트인 영화의 거리와 한옥마을을 잇는 셔틀버스가 운행됐다. 걸어가도 30분 이내 거리다.

 

최근 3년간 전주권역서 촬영한 영화만 152편

CGV전주, 전주시네마타운, 메가박스 전주 등 영화관이 밀집한 영화의 거리에 도착하니 달달한 쥐포 구운 냄새가 영화관이 인근임을 짐작케 한다. 갑자기 영화의 거리가 시끌벅쩍해진다. 노란 점퍼를 입은 ‘JIFF지기’들이 손에 피켓을 들고 이날 오후 7시 JIFF스페이스에서 열리는 공연을 알리고 있었다.

“처음 한 건데 정말 재미있어요.” 전주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이윤길씨(군산대 기계자동차학과 2학년)다. 이수연씨(전북대 스페인중남미학과 3학년 휴학 중)는 “우리 팀은 머리가 아니라 힘을 쓰는 팀”이라며 “정말 힘든 일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결속력이 좋아지고 가족같이 일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유명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특권이 있지 않을까?

“에이, 우리는 ‘연예인 보기를 돌같이 하라’예요. 안 그럼 옷을 벗어야죠.”

전주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다는 한경미씨는 “무엇보다 고향 전주에서 영화제를 한다는 자체가 좋다”고 했다.

해가 저물며 영화의 거리는 늘어나는 사람들로 더욱 활기를 띠었다. 영화의 거리에 자리한 JIFF라운지 무대에 조명이 켜졌다. 무대의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음악이 밤공기를 뚫고 멀리 퍼진다. 삼삼오오 모여든 커플들, 쌀쌀한 밤공기가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더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을 접고 영화의 거리를 빠져나갔다.

영화의 거리 끝에 자리한 라면집, 뜨끈한 라면이 반가운 날씨 덕분인가. 외국에서 온 영화제 참석자들도 영어로 ‘라면대담’ 중이었다.

한옥마을을 기점으로 시작된 하루살이 전주기행은 정겨운 남부시장·막걸리거리·덕진공원 등 많은 전주의 명소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 하지만 도시가 문화의 옷을 입었을 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변신할 수 있는지. 다리에는 피로, 가슴에는 여운이 남는다.

글과 사진·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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