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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적 사고능력 없인 미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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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하순, 한 방송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을 기리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마지막 순서에 안 의사의 사진을 크게 확대해 명동 거리에 세워놓고 지나가는 젊은이들에게 누구인지를 물었다. 42명 가운데 겨우 두 사람이 바르게 대답했다. 석달 뒤 6·25전쟁 63주기를 앞두고 시행한 한 설문조사에서 고교생 69퍼센트가 ‘북침’이라고 답했다는 보도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요즘 고등학생들이 한자 지식이 부족해 북침을 ‘북한의 침략’으로 잘못 알고 답한 경우도 많다는 분석이 나와 조금 안심했지만 한자 교육의 부실 자체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청소년들의 역사 지식 부실은 20여 년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과목 간의 치열한 교육 시수(時數) 다툼으로 국사 필수제도가 흔들리는 가운데 1990년대 초반 ‘세계화’와 ‘건전한 시민 교육’ 지향이라는 구실 아래 국사가 사회 ‘교과’의 한 ‘교과목’으로 편입돼 버렸다.

박정희 대통령 때 민족사 교육을 강조해 국사를 하나의 교과로 독립, 각급 교육과정과 시험에서 필수로 지정한 체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사회 교과 중의 한 교과목으로 전락한 국사는 대입 수능 시험에서도 사회 교과 시험에 분산 출제되다가 나중에는 선택과목의 하나가 돼 대학들이 ‘선택 필수’로 지정하지 않는 한 학생들은 한국사 공부를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 이런 제도 변화가 안중근도 모르고 남침, 북침도 헷갈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초·중등 교육 과정에서의 역사 지식 습득은 수학에서 공식 익히기와 같은 것이다. 수학에서 공식 모르고 문제를 풀 수 없듯이 역사 지식 없이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나 역사적 사고는 기대할 수 없다. 역사적 사고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이끌어 갈 미래의 대한민국, 심히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세계화를 부르짖을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진행된 세계화는 곧 ‘우리 것 버리기’가 돼 젊은이들이 민족의 영웅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위험 지경을 초래했다. 세계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니 미래는 언제나 ‘세계화’ 속에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정체성부터 확실히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간의 잘못된 정책이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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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능력시험, 공무원 시험·승진에 더 활용해야

한국사 홀대 속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자구책으로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제도는 최근 공무원과 중등교원 채용의 자격시험으로 되어 있을뿐더러, 10여 기업체에서도 입사시험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 기업체의 임원은 이 시험을 이용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직원들을 해외 근무시켜 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직원일수록 그 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한 공부도 빨리 익혀 훨씬 좋은 업무 실적을 올린다”는 것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知彼知己) 싸움에서 이긴다고 한 말은 굳이 병법에만 한정시킬 격언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국제 환경을 주시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이웃인 중국, 일본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세계 강대국이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실익을 취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나라와는 이웃으로 협력 관계가 서로 필요한데도 실제로는 역사분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당나라의 지방 역사로 기정사실화해 버리려는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를 끌어갈 젊은이들이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일본과의 독도 분쟁에서도 관련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필패(必敗)하고 말 것 아닌가.

역사 교육은 나라를 끌어갈 리더십 함양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오늘날의 기준에 비추어 빛나는 리더십 사례가 얼마든지 발굴될 수 있다. ‘조선후기의 세종대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조대왕에게는 감동적인 얘기가 많다. 정조는 민족을 외침에서 구한 인물들의 전기를 편찬하도록 규장각에 명했다. 이순신 장군의 ‘충무공전서’도 이때 처음 편찬됐다.

정조는 문집 편찬에 만족하지 않고 비문을 손수 지어 아산 현충사에 보내 장군에 대한 존경의 뜻을 더했다. 이때 한 신하가, 지금까지 군주가 신하를 위해 비문을 지은 예가 없다고 하면서 말렸다. 왕은 충무공 같은 신하는 백 명이라도 모두 비문을 지어 내리겠다고 답했다. 일세를 태평성대로 이끈 군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감동 스토리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못지않은 리더십 사례를 우리 역사 속에서 이처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역사교육 강화 방안으로 고등학교 역사과목에 졸업자격시험제도를 도입할지, 역사를 수능시험의 필수과목으로 할지는 교육부가 중론을 모아 결정할 문제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것은 현재 대학의 한국사 강의도 대학생들이 멀리해 한국사를 연구하면서 가르칠 교수직마저 유지하기 어렵게 돼가고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한국사 강의를 두 과목 이상 이수하면 국가 공무원과 중등교원의 채용 자격시험 일부를 면제해 주는 방안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되므로 검토해볼 만하다.

글·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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