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85킬로그램의 거구에 사람의 20배에 달하는 힘을 가진 ‘고릴라’가 인간의 영역인 스포츠계에 입문해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이 고릴라는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고 막걸리를 마시며 수백만 갈래의 털을 흩날리면서 춤도 춘다. 고릴라의 움직임이 너무 생생해 실제 모습과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인간 사냥꾼’으로 불리는 스포츠 마케터 성충수(배우 성동일 분)와 그의 타깃이 된 고릴라 링링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스터 고>. 순수 제작비 225억원, 4년에 걸친 기획 및 기술 개발, 400여 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1년 이상 후반 작업을 한 3차원(3D) 대작이다.
올 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이 영화는 국내에서 누적 관객 수 124만명이라는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실적을 내고 막을 내렸지만, 동시 개봉한 중국에서는 24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리얼 3D 영화의 표본이 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미스터 고>를 만든 사람은 김용화(42) 감독이다. 그는 전작 <오 브라더스>와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를 통해 통산 1,700만명의 흥행 실적을 이룬 흥행 감독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주 특기인 휴먼 드라마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3D 전문 스튜디오 ‘덱스터 디지털’을 설립, 4년의 세월을 <미스터 고>에 쏟아부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 파주시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미스터 고>가 기존 3D 영화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리얼 3D 영화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내에서 개봉된 <디 워>나 <괴물> 같은 3D 영화들은 가상의 캐릭터에만 3D 기술이 적용됐지만, <미스터 고>는 국내 최초로 영화 전체를 3D 입체로 촬영한 영화입니다.
제작비 225억원 중 VFX(시각 특수효과) 관련 예산이 약 100억원으로 전체 2천 컷의 촬영분 중 95퍼센트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촬영했습니다. 또한 입체 리그(rig) 카메라 두 대를 접합해 실제 인간의 두 눈으로 보는 것처럼 촬영했습니다. 대부분의 기존 3D 영화는 일반 카메라로 찍어 나중에 3D로 변환하는 컨버팅 기술을 적용합니다. <아바타> 같은 경우가 처음부터 입체 리그 카메라로 찍은 겁니다. 전체를 리그 카메라로 찍은 영화는 <미스터 고>를 포함해 전 세계 통틀어 10개 미만일 겁니다.”
비용 면에서도 다소 무모하다고 볼 수 있는 리얼 3D 영화에 도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고 거기에 기존의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된 익숙한 스토리만으로는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요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소한 한국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갖겠습니까?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좀 더 비주얼 면에서 진일보한 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마침 <미스터 고> 원작이 들어왔고, 외연을 확대할 좋은 기회라 생각해 도전한 겁니다.”
‘덱스터 스튜디오’라는 회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3D 영상에 관한 연구를 하셨죠. 회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영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덱스터 필름’과 300여 명의 스태프로 구성된 VFX스튜디오인 ‘덱스터 디지털’, 그리고 국내 최초로 3D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덱스터 워크숍’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국내의 명망 있는 연구 개발자들을 모아 영화 막바지 작업 때는 180명이 3D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의 경우엔 한 편의 영화를 만들 때 막바지엔 2천명 정도가 이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180명만으로 2천명이 하는 일을 1년 안에 해낸 겁니다.”
영화에서 고릴라 링링은 마치 살아 있는 고릴라처럼 털의 움직임이 정교하던데요. 야구장 신도 생생했고요.
“영화 전체에 고릴라가 1천번 나오는데, 아시아에서는 아마 이런 기술을 가진 회사로는 독보적일 겁니다. 털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퍼(Fur) 시뮬레이션 기술은 우리 아티스트들이 독보적으로 연구해 만든 겁니다. 앞으로 짧게는 5년, 길게는 7년 안에 할리우드 프로젝트도 맡아서 할 정도의 성장을 하게될 겁니다.
또 실감나는 야구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야구장 전체를 돌아다니는 와이어캠(wirecam)을 사용, 관객들이 다이내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미스터 고>가 한국 영화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보십니까?
“고릴라 링링에 입힌 기술에 고양이나 강아지, 또 다른 어떤 캐릭터를 대입해도 기본 툴은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미스터 고> 영화에 사용됐던 야구장 관중 3만명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기술도 우리 원천 기술로 만든 겁니다. 기본 기술이 있으면 3만명이 아니라 100만명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거죠. 이런 기술들은 게임산업이든 전자산업이든 얼마든지 폭을 넓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대기업에서 해당 기술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 가지 기술로 다른 산업에 멀티 융합이 가능한 것이니 창조경제의 취지에도 맞는 것 아닐까요?”
<미스터 고>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R&D 지원을 받은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부 지원금이 <미스터 고>의 3D관련 소프트웨어를 구축할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한가지 더 부탁 드리고 싶은 점은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R&D) 비용이 지금까지는 연구소나 대학에 집중 투자되고 있는데, 실제 필드에서 전투하는 산업현장에 좀 더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해당산업의 파이가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둘째는 정부가 앞으로 VFX산업을 더 장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70퍼센트가 20대예요. 젊은 사람들의 고용 창출이 되고 있는 거죠.
유명한 영화 <반지의 제왕> 컴퓨터 그래픽을 만든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는 전 세계 VFX영화 시장을 휩쓸고 있어요. 뉴질랜드는 정부 차원에서 세제 혜택 등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회사들을 우리가 따라가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없으면 꿈도 못 꾸는 일이죠.”
세계 3D 시장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은 이제껏 세계 3D 영화 시장에 제대로 도전해 본 적이 없으니 발전 가능성만 있습니다. 단, 첨단의 시각 특수효과기술 못지않게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개발이 함께 병행돼야 하겠죠. 이번에 <미스터 고>가 흥행에서 실패한 것도 찬찬히 따지고 보면 기획 단계에서의 실수였던 것 같아요. 고릴라가 주인공으로 나오니 사람들은 아동 영화로 지레 짐작한 것이고, 그 고릴라가 야구까지 한다니 공감을 못한 겁니다. 기술 못지않게 스토리 기획도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미스터 고>의 도전 이후가 궁금합니다.
“<미스터 고> 같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했다고 주저하고, 익숙한 것들에만 안주하다 보면 기획 자체가 무산되거나 영영 세계 시장에 도전할 시도조차 안 할 겁니다.
우리도 기획개발 펀드 같은 것을 조성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콘텐츠 개발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미스터 고>를 통해 쌓은 기술과 인프라를 가지고 언젠가는 다시 리얼 3D 영화에 도전할 겁니다. 우리는 <미스터 고>를 통해 국내에서 아무도 하지 않았던 리얼 3D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미스터 고>가 한국 영화 발전에 큰 기폭제가 됐을 것이라 믿습니다.”
글·박미숙 기자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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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