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결혼식이 한 달 남았다. 새신랑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멀고 험하다.
“자기야~ 냉장고는 한번 사면 다시 바꾸기 힘드니까 제일 크고 좋은 것으로 사자.”
“뭐라고?!” 나는 여자친구 말을 듣고 발끈했다.
둘이 사는데 그렇게 큰 냉장고가 필요한가 싶고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쟁여 두는 게 나는 싫다고 했다. 여자친구도 고집을 피웠다. 이 문제로 한 시간 넘게 다퉜다. 주제는 이미 냉장고를 떠나 아직 생기지도 않은 자식 교육문제로 옮겨가 있었다. 사교육 문제가 나오고
교육현실 얘기가 나온다. ‘이제 산으로 가는구나’ 싶었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경상도 남자가 서울 여자에게 말로 당해 내기가 쉬운 일인가. 대충 말을 접고 끝을 냈다. 결혼이 이런 건가.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던 청춘 시절의 굳은(?) 다짐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며칠 후 미래의 장모님과 가전제품 코너에 들렀다. 큰 양문형 냉장고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고 딸에게 혼수로 가장 좋은 것만 해 주고 싶은 장모님은 냉장고들 앞에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싸웠다 싶었다. ‘그래~저게 어머니 마음이겠지.’
그런데 갑자기 여자친구가 장모님 팔을 잡아 끈다. “아이~ 엄마, 조그만 집에 그렇게 큰 냉장고 들어갈 자리가 어디 있어. 작아도 돼~.” 내 편을 드는 여자친구를 보니 괜히 가슴이 찡해져 온다.
결혼 준비과정이 힘들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까지 든다. 마냥 좋을 때는 뭐든 다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예식 준비와 신혼살림 마련이라는 숙제를 같이 해결하는 것이 이 정도로 힘든 과정인 줄 몰랐다. 어쨌거나 이제는 티격태격하는 동안 연인이었을 때는 없었던 동지애가 생겨난 듯하다. 싸우면서 정든다고 어딜 가도 내 마음 알아주고 내 편 돼 줄 사람은 이 사람뿐이다 싶다.
최근에 발표된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꼭 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38퍼센트란다. 경기도 어렵고 가족 부양 등에 대한 책임만으로도 짐이 무거울 수 있겠다 싶었다. 나 또한 그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신기하게도 이젠 반대다. 결혼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이었던 생각이 차츰 변해 간다. 우리 부부간에도, 훗날 태어날 아이도 모두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 다투는 일이 생길 것이다. 음식 하나로도 다투겠지.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행복이 ‘있게’ 살아라.” 큰누나가 결혼할 때 외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란다. 자신만 행복하려 하지 말고 나눠 줄 수 있는 행복이 있게 살라는 것이다. 새해마다 독신으로 어떻게 재미있게 살까 궁리하던 나는 올해 꾸리는 새 가정에 어떻게 하면 ‘행복이 있게’ 만들까 고민한다.
글·이용기 사진작가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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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