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공공 예술공간을 홍대앞에 부탁해”

1

 

1980년대 한국 청년문화의 상징이 기타, 청바지 등이었다면 90년대 중반 이후 상징은 ‘홍대앞’이다. 집단보다 개인을, 이념보다 주관을 강조하는 문화 경향이 떠오르면서부터다. 자신의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젊은이들은 음악과 미술 등 예술에 집착했다. 새로운 문화양식에 천착하던 예술가는 미대로 유명한 홍익대앞 아틀리에에 자리를 잡았다.

젊은 예술 생산자와 예술 소비자가 한데 모이면서 홍대앞은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3월 19일 화요일 밤 11시 반, 홍익대 정문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는 길에 ‘홍대 (댄스)클럽 거리’가 있다. 반소매티를 입은 젊은 남성과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성이 거리를 활보했다. 3월의 선득한 꽃샘바람도 젊은이들의 더운 피를 식히지는 못했다. 20대 초반의 한 호객꾼은 “오늘은 평일이라서 줄을 서서 들어갈 필요 없다”며 “불금(불타는 금요일)에는 호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댄스클럽으로 대표되던 홍대앞이 변하긴 변했다. 호객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다. 댄스클럽문화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홍대앞’이 문화개념으로 형성된 시기는 1995~1999년 사이다. 당시 주말마다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홍대앞 문화를 즐겼던 윤중선 교수(55·부산대 기계공학부)는 “새로운 문화지대로 떠올랐던 홍대앞은 한국의 답답한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과 침체된 현실에 대한 전복의지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저급한 대중예술과 젠체하는 고급예술에 반발하는 새로운 문화운동, 그리고 유학파 예술가가 대거 귀국하면서 세계 각국 문화예술이 한국으로 급속히 유입되어 만들어진 문화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조류에 힘입어 현대무용과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록카페가 90년대 중반 실험적으로 만들어졌다.

 

2

 

공연문화는 소극장에서 살롱으로까지 확장

오랫동안 홍대앞을 지켜본 사람들은 ‘발전소’라는 록카페가 그 시초라고 입을 모은다. ‘발전소’가 성공을 거두자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클럽이 연이어 문을 열었다. ‘드럭’ ‘롤링스톤즈’ ‘프리버드’ ‘잼머스’ 등이다. 1994년 만들어진 ‘라이브클럽 빵’을 운영 중인 김영등(45) 일상예술창작센터 대표는 “20세기 말부터 홍대앞 클럽문화는 크게 갈라졌다”고 말했다. 공연을 주로 하는 ‘라이브클럽’과 춤을 추는 ‘댄스클럽’으로 나뉜 것이다. 1998년 공연법과 1999년 식품위생법 개정 등으로 클럽 공연이 합법화되면서 소규모 다수의 라이브클럽과 대규모 소수의 댄스클럽이 다른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대중들의 관심은 변했다. 라이브클럽에서 인디밴드의 음악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홍대앞에서 음악다방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대중음악계에 홍대앞 인디밴드 출신들이 두각을 드러내면서부터 대중들의 관심이 라이브클럽에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브클럽도 변모하고 있다. 홍대앞에 소극장과 고급카페가 속속 들어서면서 소규모 마니아를 위한 살롱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 김영등 대표는 “홍대앞 공연문화가 소극장에서 살롱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음악뿐 아니다. 홍대앞 풍경도 크게 변했다. 15년 전 이곳은 조용하고 소박한 동네였다. 가난한 미술학도들이 전세방을 빌려 스튜디오를 꾸미고 학생들의 미술실기 과외교실을 열었다. 조소를 하던 예술가가 작은 가게를 열어 액세서리를 팔면서 생계를 이었다. 설치예술가가 아는 사장님들의 가게를 창조적으로 꾸며주면서 유학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판화가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문양으로 티셔츠 등을 만들어 팔았다. 예술가들이 큰 부담 없이도 무엇인가 실험적인 일을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홍대앞에서 가난한 예술가를 만나기 어렵다. 미술 과외교실은 대형 미술학원으로 성장했다. 액세서리 가게가 있던 자리는 유명브랜드 점포가 입점해 있다. 식당들은 프랜차이즈로 변했고 유행을 따르는 티셔츠만 즐비하다.

 

자본 유입되는 만큼 예술인들 활동공간 줄어

도심 공간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바꿔놓기에는 홍대앞 땅값이 너무 오른 탓이다. 홍대앞이 발전하면서 상업적으로 흘러갔고, 이 때문에 홍대앞만의 문화가 파괴되고 있는 셈이다. 김영등 대표는 “홍대앞을 문화공간이라고들 하는데, 주민센터를 이전한 자리에 만든 서교예술실험센터 외에 실제 공공 공간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면서 “홍대앞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상업적 목적이 없는 공공 예술공간을 정부나 지자체가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5년 전 홍대앞은 인테리어·음악·패션전문지에 등장했다. 10년 전에는 신문 문화면에 새로운 현장으로 소개됐다. 5년 전부터 홍대앞은 신문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홍대앞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쉬워하는 이유다.

글·박상주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