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문화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축으로 구분해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권 나라들은 집단주의적인 문화로 분류된다. 집단주의 문화의 큰 특징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부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주의 문화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최근 사회 곳곳에서 조명되고 있는 감정 노동, 갑의 횡포 등 여러 가지 문제는 집단주의 문화가 가진 단점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자주 이야기되는 예를 하나 소개한다. 흔히 드라마에서 그렇듯 자식이 결혼을 하는데 그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우리나라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부모가 결사반대하고 나선다. 자식의 삶이지만 그 선택권은 자식에게 온전히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개인주의 문화권의 부모들은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본인이 원한다고 하니 어쩌겠는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집단주의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큰 특징은 자기 삶의 지분을 온전히 자신이 다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가족, 친구 같은 가까운 사람들 또는 ‘타인의 시선’으로 대변되는 익명의 대중들이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 자신보다 더 많은 지분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부모님이, 친구가,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또는 ‘이 정도 학교는 가야지’라는 직접적인 오지랖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는 집단주의 문화권의 개인들이 흔히 겪는 일들이다.
물론 이런 문화권이 가지는 장점이 분명 존재한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크게 안 좋은 일을 겪을 때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금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큰 완충재가 돼주곤 한다. 이렇게 집단주의 문화는 비상시에는 장점이 있겠지만 적어도 평상시는 개인 행복에 있어서는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집단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비교적 불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을 지나치게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집단주의 문화권의 개인들은 자신의 삶이 자신만의 것이 아닌 채로 살아간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 자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규정되는 만큼 집단주의 문화권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사회적 평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내 삶을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은 학생, 착한 딸’처럼 좋게 생각해줘야만 비로소 나도 나를 좋아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자존감과 행복에 직결되어 있다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작은 행동 하나하나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감정 노동’이 등장한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애써 웃어보이고, 어떤 때라도 타인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집단주의 문화권에 사는 우리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는 일상적으로 감정 노동을 하며 산다.
문제는 이런 식의 감정 노동 또는 이미지 관리가 상당히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이미지 관리를 하려면 타인이 원하는 바를 주의 깊게 살피다가 때로는 필요에 의해 부자연스러운 모습도 애써 연기해야 한다. 이는 상당한 주의력뿐 아니라 표정, 행동을 애써 조절하는 자기통제력이 요구된다. 쉽게 말해 이미지 관리는 상당히 머리를 굴려야 하는, 우리 뇌에서 상당한 양의 에너지(포도당)를 소모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가득한 일’이다.

상하 분명한 집단일수록 갑을 관계 횡포 잦아
집단주의 문화권의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무력감’이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 중에서도 ‘수직적’ 집단주의에 속한다. 우리나라 사회는 피라미드같이 상하 권력 관계가 분명한 구조다. 심리학에서 권력은 자의에 의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된다. 우리나라는 각종 지위뿐 아니라 성별·나이·재산 등의 수만가지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쉽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회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고 작은 갑을 관계가 곳곳에 첨예하게 펼쳐져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는 상당히 다양한 이유로 상대적인 ‘권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흔히 ‘갑질한다’고 이야기하듯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갑이 을에 대해 막무가내 식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 중 하나로 권력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대방 눈치를 보고 그 사람 마음에 들 행동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갑은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 비해 실제로 낮은 공감능력(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과 조망수용능력(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을 보인다. 이렇게 상대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고려하지 않는 갑은 결국 막무가내 식의 행동에 쉽게 빠지게 된다.
역할·나이·성별·재산 등으로 너무나 많은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갑질’을 도처에서 당하게 되고 결국 낮은 통제감(자신의 뜻대로 여러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또는 일종의 무기력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 구조상 자주 치이며 살아가고 주눅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무기력감은 사람들의 행복과, 심지어 건강마저 위협한다.
다행히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한 논의들이 공론화되는 듯 보인다. 이전보다 수평적인, 개인주의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다양한 관계들을 좀 더 편안하게, 덜 힘들게 만들어주고 나아가 개인들의 삶 또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글·박진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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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