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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재미난 일에 미치라고 늘 조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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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배는 왜 매일 딴짓을 해요?”

“…….”

청년은 후배의 꾸지람에 대답하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청년에겐 회사 일보다 재미있는 게 있었다. 후배가 말한 딴짓이란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동아리 활동이었다. 당시 해외 사이트에는 ‘한국 수도는 평양’ ‘공식 언어는 일어’ 등 왜곡된 정보가 넘쳤다. 청년은 이걸 바로잡는 게 즐거웠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청년은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300만원을 투자해 사무실을 열었다. 수익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은 즐거웠다.

12년째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VANK)를 이끌고 있는 박기태 단장 이야기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활발한 활동으로 유명해진 우리나라 최대 민간 외교단체 반크는 그렇게 탄생했다.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과 우리나라 홍보에 집중했던 박 단장은 최근 청소년 진로 상담 멘토로 변신했다. 경기도교육청 등 전국을 돌며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데 부끄럽거나 아픈 과거도 숨기는 법이 없다. 그의 강연을 들은 사람은 이미 8천명을 넘어섰다.

“중학생 때부터 반크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외교관의 꿈을 키우던 친구들이 대학 3, 4학년이 되면 활동이 뜸해지는 거예요. 취업이란 현실의 벽에 부딪힌 거죠. ‘아이들의 진짜 고민은 여기에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뭘 해줄 수 있나 고민하다 강연에 나서게 된 거죠.”

사실 박 단장은 동기 부여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 12년 동안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12만명의 사이버 외교관을 양성했다. ‘국민 모두가 외교관’이라는 그의 외침이 통한 덕분이다. 그런 재능을 진로 상담에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에는 2만여 개의 직업이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30~40가지 종류를 넘지 못해요. 변호사·의사·사업가 등 학교와 부모님이 만들어놓은 직업군에 갇혀 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서 벗어나란 이야기를 꼭 해주고 있어요. 세상 누구도 안 하는 일을 한다는 것, 정말 멋진 일 아닌가요?”

직업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 또한 그가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다.

“요즘은 강의 때마다 꽃 그림을 나눠줍니다. 제일 밑에는 씨앗 칸이 있는데 거기에 자신의 미래 직업을 쓰도록 해요.

꽃잎 칸에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10년간의 계획, 그 꿈에 달라질 우리나라의 모습, 그리고 세계에 미칠 영향까지 적도록 하죠. 단순히 한 사람의 직업이 아니라, 그 일이 사회와 세계에 미치는 긍정적인 에너지까지 생각하라는 취지예요. 씨앗은 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그림은 책상에 붙여놓으라고 하죠. 이 씨앗을 10년 뒤에 돌려줄 겁니다.”

 

“가치 있는 새로운 직업을 직접 만들어라”

지금은 존경받는 훌륭한 멘토가 됐지만 박 단장 역시 한때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불릴 만큼 좌절을 겪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나섰지만 그의 앞에 놓인 건 4가지 콤플렉스뿐이었다. 야간대학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어려운 집안 형편, 600점대의 토익 성적표와 전무한 해외 경험은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저는 스물여덟 살 때까지 공항에 가본 적도 없어요. 그런 사람이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죠(웃음). 소위 말하는 스펙이 부족했지만 돌아보면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여행사에 취직하려는데 해외 경험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신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만났어요. 덕수궁에서 관광안내서를 번역한 뒤에 되지도 않는 영어로 관광객에게 설명했어요. 몇 달을 그렇게 했죠. 결국은 그런 열정을 받아주더라고요.”

취업에 성공했지만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재미로 했던 반크 동아리 활동은 결국 그의 직업이 됐다.

“재미로 시작했지만 절대 대충 하진 않았어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것만큼 에너지를 쏟았죠. 사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건 너무 당연한 조언이에요.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늘 추가하죠. ‘재미난 일에 미쳐라’, 이렇게 말하면 학생들 반응이 좋아요. ‘미치라’는 말은 사람을 약간 끓어오르게 하잖아요?”

박 단장은 최근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멘토 위원이 됐다.

그는 2002년부터 10년간 다양한 정부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월드컵 홍보, 동북공정과 독도문제 대응, 국가브랜드 사업 등에 기여했다.

“여러 위원회 활동을 해봤지만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형식적인 만남에 그쳤어요. 정부와 민간이 엇박자를 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참여하긴 했지만 저 스스로 만족도가 떨어졌어요. 하지만 이번 청년위원회는 좀 다르더군요. 한 달에 두번 회의를 갖고, 1주일에 한 번 온라인 모임을 해요. 횟수부터 달라졌죠. 제대로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어요. 청년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그는 최근 ‘제2의 반크 만들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국가외교·역사·한식·관광 등의 분야에서 반크처럼 활동할 ‘민간벤처 외교단체’ 500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사이버 외교관을 양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청년 외교 벤처사업가’를 집중적으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창조라는 말은 어감이 참 좋지요. 생각해보면 제 직업도 창조된 것이잖아요?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남들 다 아는 유명한 직업 말고 새로운 걸 만들어보라고요. 그리고 기왕이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사람들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그런 직업을 창조해보라고요. 가치를 창조하는 직업, 그리고 그 직업을 창조하는 일. 더 많은 아이들이 재능을 발휘해야 할 부분 아닐까요?”

글·장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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