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세월호 침몰사고가 한 달 보름을 넘긴 시기, 이시형(80) 박사는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올 때”라고 말했다. 앞으로 “수습할 일, 울 일도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는 ‘제2의 세월호’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라도 일상으로 돌아와 힘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도 했다. 세로토닌문화원 이사장 겸 정신건강 주치의 이시형 박사를 5월 2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세월호 사고 피해자와 가족들, 국민들의 정신건강 극복 방안을 들어봤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이 큰 우울에 빠져 있다.
“사고 이후 한 달 이상 지났지만 앞으로도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지쳐 있다. 물론 감정이라는 것은 슬플 때 슬퍼하고, 마음이 아플 때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 그것을 막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로 죽을 것같이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치유가 된다. 집안에 초상이 나면 슬프지만 밥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부엌일을 하고 상주들도 사람을 상대한다. 원래 한국인은 정이 많고 공감을 잘하는 기질이 있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지만 애도 과정이 너무 길어지면 심신이 지쳐 나중엔 곁에 있어줄 수 없다.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와서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아닌가.”

세월호 피해자와 가족들의 심리상태가 무엇보다 심각하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분노와 함께 엄청난 불안, 공황 등 복합적인 감정상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쉽게 고쳐질 수 있는 병은 아니지만 스스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연히 쉽지는 않겠지만 가족을 잃은 부모나 자식들은 이런 운명을 겪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시간이 약이란 걸 믿어야 한다.
청소년기는 가장 흔들리기 쉬운 때다. 어른들의 경우 경험이 많아 나름대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방어 능력이 떨어진다. 진도체육관에서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가장 안타깝다. 밥 먹고 힘내라고 하면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건강을 지켜야 한다. 수습할 일이 많고 앞으로도 울 일이 많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구체적인 극복방법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격적인 장면들을 보면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친구를 눈앞에서 잃었는데 그걸 어떻게 치유할 수 있겠나. 기본적으로 성격이 활발한 아이들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겐 쉽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생존자들은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성격에 따라 개인 상담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집단 상담도 도움이 된다. 상담자에게 얘기하면 그 상황을 끄집어내야 하지만 함께 얘기하고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들리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몰라라’ 식으로 그들을 대하면 안 된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과 함께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그것이 위로이고 격려가 된다. 국민들의 세로토닌 균형이 깨진 만큼 세로토닌 분비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가족들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누워만 있으면 마음이 더 힘들어진다. 아침에 아무 생각 없이 잠깐 걸으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세로토닌은 인간의 본능인 식욕·수면욕 등의 욕구가 충족돼 행복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을 말한다. ‘세로토닌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 박사는 뇌에서 분비되는 ‘행복 물질’인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 박사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한 달 이상 슬프고 힘든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국민들의 세로토닌 균형이 깨지게 됐다”며 “자연과 함께하며 움직이면 세로토닌이 좀 더 많이 분비된다”고 말했다.
단원고에 북을 보낸다던데.
“세로토닌문화원에서는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북을 제작해 학교로 보내주고 있다. 청소년은 정신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나이인데 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1~2시간 북을 치게 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면서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2009년 경북 영주 영주중학교에서 북을 이용해 교육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지난 3년간 160개 학교에 북을 나눠줬다. 처음 북을 나눠준 경북 영주에서 당시 ‘일진’들이 드럼클럽을 만들었는데 지난해 싱가포르 타악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고등학교는 고3 수험생이 있기 때문에 북소리가 공부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중학교에만 보내고 있다. 그러나 단원고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생존자와 함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모두 힘들기 때문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보내기로 했다.
다만 아직 북을 두드릴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장소도 마땅치 않은 탓에 그 부분이 정리되면 보낼 예정이다. 북도 이미 제작해뒀다.”
정부의 안전관리와 사고 대처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우리는 사고만 터지면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 한다. 관리·감독을 허술하게 한 점과 사고 후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일을 수습하고 해결하게 도와야 하는 것도 국민들이 해야할 일 중 하나라고 본다.
이제 감정적 상태에서 벗어나 이성을 찾고 현실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일상의 안전불감증을 자성하는 계기였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이지만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문화가 부족하다. 이번 사고도 원칙 하나만 지켰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옛말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설마 사고가 날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게 큰 참사를 불렀다.
구조 변경부터 시작해서 안전하리라 믿었던 게 문제다.
나는 운전할 때 짐을 실은 트럭 뒤로는 따라가지 않는다. 트럭에 실은 짐을 묶은 것을 보면 매우 위험해 보인다. 언제든지 실린 짐들이 뒤차에 떨어질 수 있도록 묶여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무모한 낙천주의 기질이 있다. 낙천주의로 인해 10년 전이나 후나 대응하는 방법이 똑같다. 사실 이번 참사는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져도 터질 문제였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감시·감독, 대응 등이 허술했던 탓이다. 세월호 사건이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겠나. 재발을 막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교훈은.
“세월호 참사는 양적인 성장 추구와 탐욕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숙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 왔다. 양적인 성장에 질적인 성숙함이 필요하다. 세로토닌적인, 즉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사회·기업문화가 정책이 되어야 하며 같은 맥락의 문화운동도 필요하다.”
1934년 대구 출생인 이시형 박사는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신경정신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이자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2007년 강원 홍천에 국내 최초의 웰니스마을 ‘힐리언스 선마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하며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글·김성희 / 사진·전민규 기자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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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