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스포츠 선수들에게 등번호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가치관·목표·꿈·사연 등이 담긴 분신이다. 미국프로야구(MLB)의 전설적인 포수 게리 카터(1954~2012년)는 구단과 계약할 때 8번을 계약조건으로 내밀어 관철시켰던 것으로 유명하다. 카터의 생일은 4월 8일이다.
‘안타 제조기’ 장효조(1956~2011년)의 상징은 10번이었다. 장효조는 그러나 1988년 11월 삼성에서 롯데로 트레이드되면서 분신과도 이별해야 했다. 롯데에서 10번은 ‘자갈치’ 김민호가 주인이었다.
장효조는 20번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는 태극전사 23명의 등번호가 5월 19일 확정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선수들의 선호도를 가장 먼저 배려했고 번호가 겹치면 소속팀 등번호, 나이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국제대회에서는 프로리그만큼 등번호 선택이 자유롭지는 못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본선 진출 32개국의 최종 엔트리 등 번호를 1∼23번으로 제한한다. 골키퍼는 반드시 1번을 달아야 한다. 대신 다른 선수들은 제한이 없다. 전통적으로 공격수는 9~11번을 선호한다.
최다 4골 공동선두 9번과 17번
한국이 출전해 골을 기록한 7차례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번호는 9번이다. 최순호(1986년)·황보관(1990년)·설기현(2002년)·안정환(2006년)이 9번을 달고 네 차례 그물을 갈랐다.
17번도 통산 4골로 9번과 공동선두에 올랐다. 허정무(1986년)·하석주(1998년)·이청용(2010년 2골)은 17번을 달고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9번과 17번에 이어 6·10·18·19·20번이 2골씩 넣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손흥민(22·레버쿠젠)이 9번, 이청용(26·볼턴)이 17번을 달고 출격한다. 손흥민은 자신의 우상인 차범근의 11번을 원했지만 선배인 이근호(29·상주)에게 양보했다. 이근호는 대표팀에 처음 뽑혔던 2007년 11번을 차지했다.
손흥민은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10골을 터뜨렸다. 한국 선수가 유럽리그에서 두 시즌 연속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것은 차범근 이후 28년 만이다. 또한 손흥민은 지난해 6월 출범한 ‘홍명보호’에서 최다 득점(4골)을 기록 중이다.
이청용에게 17번은 운명이자 행운이다. 이청용은 생애 첫 출전이었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17번을 달고 2골을 넣었다. 이청용은 FC 서울과 볼턴을 거치면서 소속팀에서는 줄곧 27번을 달았다. 이청용은 득점뿐 아니라 어시스트에도 능하다. 프로 통산 29골의 두 배에 가까운 48어시스트를 기록했고, 국가대표로도 11어시스트(6골)를 올렸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직접 나선다. 이청용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2골을 넣으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이 달았던 7번은 그가 후계자로 지목한 김보경(25·카디프시티)에게 돌아갔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감독의 20번은 중앙수비수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가 물려받았다. 주전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1번은 정성룡(29·수원)이 차지했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미드필더 손흥민은 빠른 속도감과 강력한 슈팅을 지녔고, 이청용은 골 기회를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세계적 스타들이 사랑한 10번은 박주영
공격수 박주영(29·왓퍼드)은 세번째 월드컵에서도 변함 없이 10번을 받았다. 10번은 펠레(브라질),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이상 아르헨티나) 등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애지중지했던 번호다. 한국 축구에서도 10번은 ‘킬러’의 상징이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통산 9회 본선 무대를 밟은 한국은 7명의 10번을 배출했다. 브라질 대회까지 8회 연속 본선 진출의 서막이었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는 박창선이 10번의 주인공이었다. 박창선은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에서 그림 같은 중거리슛으로 월드컵 사상 첫골을 신고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때는 이상윤, 1994년 미국 대회 때는 고정운, 1998년 프랑스 대회 때는 최용수가 10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골과는 인연이 없었다.
사상 첫 16강을 넘어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대회 때는 수비수인 이영표가 10번을 달았다. 훗날 이영표는 “모든 선수들이 10번을 부담스러워하다 보니 나에게까지 온 것”이라고 회고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10번은 박주영이었다. 박주영은 21세의 젊은 공격수였지만 안정환·조재진 등 베테랑들이 다른 번호를 고르는 바람에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박주영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3회 연속 10번을 달게됐다.
글·최경호 기자 201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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