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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情은 끈끈해도 만나면 징글징글 숟가락 다섯 개 놓인 찌개는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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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송해성(50) 감독은 벌써 여섯 편의 작품을 만든, 말하자면 중견 감독이다. 그동안 <파이란>(2001)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등 ‘사람’을 전면에 내세웠던 그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촌스럽지만 그 투박함이 미덕이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마침 집어든 소설이 바로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이었다.

<고령화 가족>은 장성한 삼남매가 엄마의 집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막장 사연을 다룬 가족 드라마다. 이 소설을 접한 송해성 감독은 “실제 가족인들 그러지 않을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핵분열이 있나. <고령화 가족>을 통해 21세기형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영화에 대한 변을 밝혔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긍정의 힘을 담고 있다. 요즘 자살을 선택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이들이 많다. 그럴 때 필요한 게 가족이고 엄마다. 식구는 말 그대로 ‘먹을 식(食)’에 ‘입 구(口)’다. 나를 잘 먹이고 위로해주는 가족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이 영화의 가족들은 지지고 볶아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있다. 그게 가족이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 가족은 서로 징글징글한 관계로 살아가지만 그 바탕엔 끈끈한 정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다. 장남 한모는 차남 인모에게 툭하면 주먹질을 하고, 여동생 미연에게도 육두문자를 남발한다. 인모는 실패의 경험으로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인데, 미연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눈만 마주치면 티격태격하는 사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에게 힘이 된다. 한모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가족을 돌보려 하고, 인모 역시 한모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다. 이것이 바로 <고령화 가족>이 던진 화두다.

현대의 가족은 ‘무언가족(無言家族)’이라고 하지 않나? 가족끼리 대화도 없어 소통이 사라져버린 삭막한 관계로 변질된 것이 현실이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도 현대 가족의 살풍경이다. 가족의 모습이 아무리 변했다 하더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힘이 들 때 서로를 보듬어 안아주는 게 가족 아닌가. 더군다나 피가 섞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 안에서도 그들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없다. 실패한 영화감독 인모, 한때 주먹질 좀 했다가 지금은 백수가 된 한모, 두 번 이혼 후 세번째 결혼을 앞둔 미연, 자기 엄마 미연을 닮아 되바라진 사춘기 중학생 민경,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문제적 삼남매와 손자를 조건 없이 끌어안은 엄마(윤여정 분)가 있다. 한모는 인모와 미연과 배다른 남매다. 이를 두고 송해성 감독은 ‘저예산 가족 어벤저스’라고 우스개처럼 말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티격태격해도 어느 순간 가족 특유의 지혜를 발휘해 융합하는 지점이야말로 <고령화 가족>의 백미다.

 

가족,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

송해성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부글부글 끓는 된장찌개 속에 다섯 개의 숟가락이 함께 들어가 있는 이미지다.

“된장찌개에 다섯 개의 숟가락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결정판이다. 원래 가족은 식탁을 중심으로 모인다. 원작에서 엄마가 자식들에게 매 끼니 고기를 먹이는 건 ‘너희를 패배시킨 세상과 밥심으로 맞서 싸우라’는 뜻이 있다. 정말로 먹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박해일이 밥상을 뒤엎고 자식으로선 하면 안 될 말을 하는 장면은 찍으면서도 속상했다.”

<고령화 가족>은 충무로 대표 배우들이 의기투합한 영화다.

“모두들 지금 아니면 앞으로 못할지도 모르는 얘기와 장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배우가 붙고, 또 다른 배우가 붙으면서 지금 같은 캐스팅이 이뤄졌다. 얘기가 마이너한 느낌이고 상업영화에 맞지 않는 사이즈의 영화다. 현장에서 ‘저예산 어벤저스’를 찍는 거라고 얘기하곤 했다. 배우들의 시너지가 프레임에 기운을 불어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배우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로 화면을 만들어갔다.”

송해성 감독은 특히 배우 윤여정의 역할에 신경을 많이 썼다. 윤여정은 사실 진보적인 어머니(<바람난 가족>), 속물적 어머니(<돈의 맛>) 등 이번 영화의 모성과 대비되는 연기로 널리 알려진 배우 아닌가.

“‘윤여정 선생님, 이런 엄마 역할 해본 적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없다고 하길래 ‘한번 해보세요’ 했다. 어처구니없는 자식들을 거둬들이기만 하는 자유방임·방목형 엄마 역을 윤여정이 아닌 다른 배우가 했으면 밸런스가 안 맞을 거다. 통통 튀는 캐릭터를 완성시킨 게 윤여정이란 얘기다. 그리고 윤여정이란 배우는 실제로 귀엽다. 영화에서 그가 흥얼거리는 패티 김의 ‘초우’는 엄마의 심정을 대변하는 독백 같은 노래다.”

<고령화 가족>은 우리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에 관한 영화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판타지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가족에서 한 발짝도 떨어질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송해성 감독이 이 영화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다.

“사람에 따라 리얼한 영화로도, 판타지한 영화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질펀한 막장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난 저들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끼며 엄마에게 전화 한 통 거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고령화 가족>은 바로 그런 영화다. 욕이 나오되 세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 따뜻한 느낌으로 가슴에 파고드는, 말 그대로 ‘가족 영화’다.

글·지용진(매거진 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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