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011년 12월, 같은 반 친구들의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죽음을 선택했다. 매해 신년특집을 통해 그해 한국 사회에 가장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자 했던
취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의 해법을 ‘가해자’에게서 찾으려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117 신고전화를 개설하고 각 학교에서 일진을 색출하고 학생생활기록부에 가해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꼭 필요해 보였고 효과도 있는 듯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대체 어떤 아이들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소년법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첫번째는 학교폭력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비행청소년이 아니라 회장·부회장·선도부장을 도맡을 정도로 리더십이 있고 성적도 우수한 아이들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학교폭력 가해자 중 과거에 피해를 경험한 아이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학교폭력 가해자 중 무려 44퍼센트가 피해 경험자라는 연구논문을 확인한 뒤 제작진은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다소 위험한 발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3부작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은 바로 이런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학교폭력 가해·피해 아이들의 어울림 프로젝트 ‘소나기학교’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기로 했다.

자존감 높이고 우울감 낮춘 희망의 8박9일
학교폭력이라는 경험이 아이들 인생의 쓰나미가 되지 않고 소나기처럼 지나가도록 돕기 위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소나기학교’.
총 3개월로 계획된 이 프로젝트에 신청한 아이들은 14명. 그중 절반인 7명이 학교폭력 피해와 가해를 모두 경험한 아이들이었고, 3명은 자살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4명은 또래를 넘어 교사의 권위에 도전할 만큼 통제가 어려운 학교폭력 가해를 경험한 아이들이었다.
종합심리검사 결과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똑같은 공통점이 발견됐다. 자존감이 낮고 우울감이 높다는 것이다. 마음속 우울감을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표현하면 가해자가 되고, 내면에 쌓아둔 채 자신을 비하하면 피해자가 된다. 인과관계와 표현방식이 다를 뿐 그 해결책은 하나. 자존감을 높이고 우울감을 낮추면 되는 것이다.
소나기학교는 입학식 날부터 졸업을 하는 마지막 날까지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한 교실에 모인 14명의 아이들은 첫인상만으로도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둘째 날이 되자 서열이 정해지고 단짝이 생겼다. 셋째 날이 되자 소외를 당하는 아이가 생기고, 넷째 날에는 몇몇 아이들의 수업 방해 시도도 발생했다. 이 모든 것은 또래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나아가 주도권을 잡으려는 또래 지향성의 발로였다.
이런 또래 지향성의 폐해를 극복한 것이 바로 개인상담의 힘이었다. 처음엔 상담실에 들어와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거나 속마음을 말하기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점점 자신을 드러내고 선생님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발견됐다. 학교폭력 가해·피해와 상관없이 아이들 모두 부모와의 대화나 신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개인상담에서 깨달은 각자의 상처를 심리극을 통해 공유한 아이들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서히 치유가 됐다. 22명의 선생님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공감해주자 서로 반목하고 소외하고 서열 짓던 아이들이 행동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핸드벨 합주라는 공동의 미션은 서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했던 아이들에게 공감과 배려, 협동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일깨워준 일등공신이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훌륭한 학생이라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한다. 소외당하는 법을 배우면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상처를 받으면 받은 만큼 남을 상처 주고,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배려를 받으면 저도 모르게 남을 배려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소나기학교에서 발견한 학교폭력의 해법은 이처럼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있었다.
캐나다 맥길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그 나라의 소득 불평등과 비례한다. 소득 불평등은 어른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과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어른들은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가정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학교폭력은 바로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비극이다.
이런 비극을 알게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다.
단호한 처벌로 일진을 다스리고 인성교육으로 집단 따돌림(왕따)를 예방하고, 부모와 교사가 아이와 더 많이 소통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교육복지를 통해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에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 모두가 아이들을 위해 힘을 합한다면 학교의 눈물은 반드시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사진·SBS 제공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