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가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16일간 인천을 비롯한 9개 도시(서울·고양·안산·화성·부천·수원·안양·하남·충주)에서 열린다.
‘45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아시아경기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인종·종교·영토 등의 갈등을 아우르는 화합과 소통의 제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16일간 인천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 아시아경기대회에는 아시아 45개국의 선수와 임원 1만3천여 명이 참가해 36개 종목(올림픽 종목 28개, 비올림픽 종목 8개)에서 총 3,442개의 메달을 놓고 양보 없는 대결을 펼친다.
한국은 1951년 제1회 인도 뉴델리 대회 때 아시아경기대회에 첫선을 보인 이후 지난 16회 광저우 대회 때까지 모두 개근했다.
한국은 1982년 뉴델리 대회 때까지만 해도 숙‘ 적’ 일본을 넘지 못했지만 1986년 서울 대회를 기점으로 중국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역대 최고 대회를 자부하는 아시아경기대회의 마스코트는 비추온, 바라메, 추므로다. 비추온, 바라메, 추므로는 인천에만 서식하는 점박이물범을 모티브로 한 마스코트다.

4,900억원이 투입된 주경기장은 63만1,975평방미터 부지에 연면적 11만3,620평방미터 규모로 착공 3년여 만에 건립됐으며 6만1,944명을 수용할 수 있다. 공항과 항만이 있는 인천의 특수성을 살린 주경기장의 1층에는 선수단 시설, 경기지원·행사대기 시설, VIP·임원진 시설, 방송보도 시설이 들어섰고 북서측에는 국내 유일의 실내 육상트랙이 마련됐다.
김영수 조직위원장은 “아시아경기대회 관람객 200만명, 해외 관람객 20만명 유치를 목표로 성공적 대회 개최를 위해 남은 2개월여 기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시아경기대회가 ‘축제’라고는 하지만 엄연한 국제대회인 만큼 순위 경쟁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스포츠팬들의 관심 역시 한국이 종합 메달 순위에서 몇 위를 하느냐에 쏠려 있다.
한국, 1986년 이후 중국 이어 ‘부동의 2위’
한국은 1994년 일본 히로시마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 63개로 64개를 따낸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후 대회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4회 연속 메달 순위 2위를 지켜왔다.
한국은 1998년 태국 방콕에서 일본을 금메달 수에서 65-52로 제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에서 96-44, 2006년 카타르 도하에서 58-50으로 일본을 앞섰다. 2010년 광저우 때도 한국은 금메달 76개를 따내며 48개의 일본을 여유있게 따돌렸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목표는 5회 연속 종합 2위다. 대회마다 금메달만 100개 이상 휩쓸어가는 중국을 제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일본을 가볍게 따돌리고 중국과 어느 정도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전통적인 강세 종목인 양궁과 태권도는 물론 유도와 사격 등에서 많은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마린 보이’ 박태환(25·인천광역시청),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20·연세대),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로 ‘도마의 신’이란 닉네임을 얻은 양학선(22·한국체대) 등 ‘월드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들도 ‘금빛 질주’를 다짐하고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인기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도 동반우승에 도전한다.
두 종목이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야구는1994년 히로시마 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2010년 광저우 대회 때까지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2010년 광저우에서는 금메달, 1994년 히로시마에서는 은메달, 2006년 도하에선 동메달을 땄다. 방콕 대회 때부터 프로와 아마를 총망라한 ‘드림팀’을 꾸리고 있는 야구는 통산 4번째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류중일 감독(삼성)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2연패를 다짐하고 있다.
야구·축구 첫 동반우승에 도전
월드컵 본선 9회 진출에 빛나는 한국 남자축구이지만 유독 아시아경기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한국은 방콕에서 열린 1970년과 1978년 대회, 그리고 1986년 서울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지만 이후로는 고개를 숙였다.
1990년 베이징 대회 때는 준결승에서 이란에 덜미를 잡혔고,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때는 결승 문턱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일격을 당했다. 1998년 방콕 대회 때는 8강에서 태국에 패했고, 2002년 부산 대회 때는 준결승에서 이란에 졌다. 2006년 도하 때는 노메달에 그쳤고, 2010년 광저우 때도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8년 만에 정상 탈환을 선언했다.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뒤 이 감독은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할 가능성이 있는 우리 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조직을 잘 만들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남자농구도 12년 만에 정상에 도전한다. 남자농구는 2002년 부산 대회 때 연장 혈투 끝에 중국을 누르고 20년 만에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에 입을 맞췄다. 1982년 뉴델리 대회 때는 이충희·신선우·박수교·안준호 등이, 2002년 부산 대회 때는 서장훈·문경은·김주성·방성윤 등이 금메달 주역이었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이준성 보도팀장은 “아시아경기대회를 이념과 종교, 민족의 갈등을 녹이는 평화의 제전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재정 부담의 최소화를 통해 성공적 대회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도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14개 종목에 남자 70명, 여자 80명 등 총 150명의 선수를 참가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던 북한은 최근 아시아올림픽평의회를 통해 선수단 규모를 늘리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대회 때 184명, 2010년 광저우 대회 때 185명(이상 선수 기준)을 출전시킨 바 있다.
글·최경호 기자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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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