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설마 되겠어?”
“그쯤 했으면 그만두시죠?”
‘한국 봅슬레이의 개척자’ 강광배 국제 봅슬레이-스켈리턴연맹 부회장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봅슬레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그리고 2013년. 봅슬레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스포츠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선수도, 시설도, 지원도 전무한 상황에서 출발한 한국 봅슬레이는 지난 3월 7, 8일(이하 한국시간) 이틀 연속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아메리카컵(대륙컵) 8, 9차 대회 2인승 경기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따내는 기적을 일궜다. 파일럿 원윤종(28)과 브레이크맨 전정린(24)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아메리카컵 8차대회 2인승 경기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53초91로 19개 팀 중 1위에 올랐다.
한국 봅슬레이가 4인승과 2인승 통틀어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2010, 2011년 아메리카컵 4인승 경기에서 세 차례 은메달을 딴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2인승은 지금까지 메달조차 따지 못했다. 원윤종-전정린 조는 다음날인 8일 9차 대회 2인승 경기에서도 1·2차 시기 합계 1분53초6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2014년 소치겨울올림픽은 물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봅슬레이 대표팀이 시상대에 서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국 봅슬레이의 역사는 2003년 강원도청이 봅슬레이·스켈리턴 팀을 창단하면서 시작됐다. 1998년부터 스켈리턴 선수로 활동하던 강광배 부회장은 봅슬레이에 관심을 가지며 선수들을 길렀고, 팀 창단으로 본격적 활동에 들어갔다. 스위스·오스트리아로 전지훈련을 보내는 등 강원도청의 아낌없는 투자로 1년 만에 국제대회 첫 메달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강광배-이기로가 짝을 이룬 봅슬레이 팀은 2004년 7월 월드컵 스타트대회 2인승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국내에는 훈련시설 없어 체력훈련에만 집중
이 같은 성적과 달리 한국 봅슬레이가 처한 현실은 어려웠다.
2008년 아메리카컵대회에서 대표팀이 사용하던 봅슬레이에는 ‘KOREA(한국)’가 아닌 ‘USA(미국)’가 씌어 있었다. 미국이 15년 전 사용하고 창고에 보관했던 ‘골동품’을 주최측에 500달러를 내고 빌려 수리해 탔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경기 때마다 봅슬레이를 빌려 출전했다.
훈련시설도 전무했다. 국내에서는 봅슬레이를 탈 곳이 없어 체력훈련에만 집중했다. 선수 운영도 힘들었다. 당시만 해도 봅슬레이 종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선수는 국내에 8명뿐, 모두 창던지기·육상·원반던지기 등 출신들로 이뤄졌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09년 한국 봅슬레이는 변화를 모색했다. 우선 한 팀을 꾸리기에도 힘든 선수단 인원부터 늘려 종목별 전문화를 이뤘다. 예전에는 선수가 부족해 봅슬레이와 스켈리턴 선수 구분 없이 두 경기를 모두 뛰었다. 외국인 코치 2명도 영입해 기술적 부분을 향상시켰다. 강원도의 지원으로 1억2,000만원을 들여 자체 썰매도 마련했다.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사상 처음으로 4인승에서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것. 특히 일본을 누르고 올림픽 티켓을 땄다는 점이 더욱 의미를 더했다. 일본에서는 대학팀 등 20여 봅슬레이팀이 운영되고, 썰매도 30여 대에 선수는 80여 명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단 두 대의 썰매에 선수도 11명인 한국 봅슬레이의 올림픽 티켓 획득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한국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동계올림픽에서 최종 결선에 오르며 19위의 성적을 냈다.
2010년 한국 봅슬레이는 대대적 개혁에 착수했다. 당시 감독이던 강광배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코치이자 선수였던 이용 감독이 사령탑이 되면서 선수 구성을 새롭게 했다.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뛰던 선수들이 물갈이되고 젊은 선수들이 선발전을 통해 들어왔다. 강원도 평창에 스타트 연습장도 완공됐다.
전지훈련지를 바꾸고 유럽대회에 주력한 것도 효과를 거두었다. 올 시즌 처음으로 익숙하던 미국·캐나다를 떠나 유럽에서 각종 대회에 참가하며 전지훈련을 치렀다.
평창동계올림픽 첫 메달 목표 가시권
이용 감독은 “어차피 깨질 것이라면 일찍 깨지고 성숙해지자는 생각에 유럽으로 갔다. 우물 안 개구리나 마찬가지이던 선수들이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소치에서도 트랙을 달려보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유럽과 북미를 오간 덕분에 원윤종·김식·김홍배·김동현·서영우 등 ‘봅슬레이 2세대’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지난해 4월 아메리카컵 4인승에서 사상 처음이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이번 금메달로 한국 봅슬레이는 성공적 세대교체는 물론 자신감까지 얻었다. ‘소치올림픽 10위권 진입,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첫 메달’이라는 청사진도 조금씩 현실이 돼가고 있다.
강광배 부회장은 “모두 불가능이라고 했지만 10년이 지난 이제는 가능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가능을 넘어 메달로 한국 봅슬레이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벌써 5년 뒤 한국 봅슬레이 팀이 시상대에 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글·김동욱 (동아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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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