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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전쟁의 아픈 역사는 모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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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월 9일 오전 11시 경기 파주시 적성면 37번 국도변 북한군·중국군 묘지. 한바탕 비가 퍼부을 듯한 날씨 속에 백발의 할아버지·할머니 3명을 앞세운 행렬이 모습을 나타냈다. 중국군묘 362기, 북한군묘 718기가 있는 묘역에 다다른 이들은 향을 피우고 조용히 묵념을 했다. 묵념이 끝나자 3명의 노인은 말없이 앞으로 나서 대리석 묘비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 사이 이들의 눈자위엔 붉은빛이 번졌다.

한중문화협회 초청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중국군과 가족들이 방한했다. 민간기구가 주최한 것이긴 하지만 참전 중국군을 국내 기관이 공식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중문화협회 정남도(74) 부회장은 “과거를 넘어 화해와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중 관계를 열어간다는 의미에서 참전 군인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을 국빈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류옌둥(劉延東)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정전 60주년을 맞아 우리 군이 관리하는 중국군 유해 360구를 송환해 드리려 한다”고 제안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방한한 참전 군인은 여군 통계병이었던 천뤄비(陳若必·81·여), 운전병 라이쉐셴(賴學賢·85), 통신병 량덩가오(梁登高·78) 등 3명이다. 모두 중국 남서부 쓰촨성 청두(成都) 출신으로 스무 살 전후 어린 나이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천뤄비는 16군 간부실에서 근무하며 사진 촬영을 맡았다.

그는 철원의 상감령(上甘嶺) 전투 현장 등 틈틈이 찍은 50여장의 기록을 사진첩에 담았다. 한국군이 파로호를 6·25전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기억한다면 상감령은 중국이

‘6·25전쟁의 성지(聖地)’로 여기는 곳이다. 상감령은 북한 최고 지도자들이 가끔 방문하는 오성산(1,062미터) 남쪽에 있는 고개다.

“전쟁이 끝났다는 말에 모두 정말 기뻐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총을 메고 파주에 왔는데 이제는 중국과 한국이 다들 친구가 됐다.”

그는 종전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1953년 초 참전한 천은 그해 7월 정전된 후에도 북한에 남아 2년간 복구사업을 도왔다. 세월은 60년을 넘어섰지만 천의 사진은 소중한 기록으로 남았다. 경기도는 전쟁 사료로서 가치를 높게 사천의 사진첩 복제를 요청했다.

천뤄비는 “(중국군이) 이렇게 안장돼 있다니 한국 국민에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또 “한국이 빨리 통일돼 평화를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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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환대 받으며 서울 땅 밟게 될 줄 몰랐다”

오후 인근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견학한 후 임진각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한국군 참전용사 6명을 만났다. 60여 년 전에는 서로 총부리를 겨눴지만 이날은 뜨거운 포옹과 화해만 있었다.

량덩가오는 “한국의 노병사를 만난 감격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말 그대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아픈 역사는 모두 지나갔고 이제 중·한 모두 평화를 원한다”며 “남북 관계도 다시 회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량은 6·25전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이렇게 소개했다.

“박격포탄이 날아다니고 사방은 회색 연기로 뿌옇게 물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가 확보될 때쯤이면 뒹구는 시체들이 보였다. 1년 늦게 입대한 친구가 먼저 사그라져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참혹’이란 단어 외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1951년 7월 입대해 통신병으로 근무했던 량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1957년까지 북한에 남아 신병을 가르치는 교관을 지냈다. 그는 이후 주택건설국 이빈(宜賓)시 당서기까지 역임한 골수 공산당원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 따위는 없다.

이튿날엔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1952년 운전병으로 참전한 라이쉐셴은 전사자명비 앞에 서서 한참을 떠날 줄 몰랐다. 최고령인 라이는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총을 겨누던 사이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남북은 지금도 하나였을 것”이라며 “조속히 평화통일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의도의 한 삼계탕집에서 이뤄진 점심식사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천뤄비는 “한·중 수교가 이뤄지던 1992년부터 꼭 한 번 한국에 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꿈이 실현됐다”며 ‘감사합니다’라는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인삼주 건배사를 제안했다.

글·전익진·민경원(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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