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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공동화로 몸살 앓던 구도심 문화공간 ‘봄의 마을’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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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의 도심재생 ‘문화혁명’

그리스 수도 아테네 한가운데 우뚝 선 언덕 아크로폴리스.

그 위에 올라 남쪽 아래를 내려다보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상징인 아고라(Agora) 유적지가 눈에 띈다.

아테네에서 아크로폴리스가 신의 영역이었다면 그 아래 아고라는 아테네 시민의 삶이 농축된 현장이었다. 시장이자 제단이었고, 법정이자 의회였으며,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다. 평범한 아테네 시민들은 이 광장에 나와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2,500년 전 그들이 정한 약속과 규칙, 대화의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됐고, 아고라를 바탕으로 그리스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인구 6만 명의 작은 지방 소도시에 한국판 아고라가 자리 잡고 있다. 충남 서천군 서천읍에 있는 ‘봄의 마을’ 이야기다. 봄의 마을은 서천군이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한 1만576평방미터 규모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정부와 충청남도, 서천군이 힘을 모아 165억원의 예산을 들였고, 약 3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11년 11월 문을 열었다.

봄의 마을은 하나의 광장을 5개 건물이 둘러싼 형태다. 건물은 각각 친환경농산물 판매센터, 일자리 종합지원센터, 여성문화센터, 청소년문화센터, 종합교육센터로 사용된다.

가장 먼저 여성문화센터를 찾았다. 제1강의실에서 새어나오는 합창단원들의 노랫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우고, 다목적실에서는 한국무용 수업이 한창이다.

현재 여성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강좌는 합창을 비롯해 한국화·서예·요가·밸리댄스 등 20여 개. 작은 도시에 과연 수요가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강좌마다 수강인원은 늘 만원이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부 수업에 참여하려면 대기 기간이 필요할 정도로 인기다.

종합교육센터 3층에서는 플루트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비록 서툰 솜씨지만 10여 명 수강생의 표정은 전문 오케스트라 단원 못지않다.

수강생 박근창(36)씨는 “10년 전 잠깐 배우다 포기했던 플루트를 다시 접할 기회가 생겨 정말 좋다”며 “수업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악기만 있다면 누구든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플루트수업 강사인 이슬비씨는 “지금 수강생들과 벌써 1년째 함께하고있다”며 “단기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 문화와 예술의 씨앗이 뿌리내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종합지원센터는 지역 내 일자리 수급을 조절한다. 친환경농산물 판매센터에서는 서천군에서 생산하는 각종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광장으로 나오니 학생들 무리와 만날 수 있었다. 시험 기간이라 일찍 마친 40~50명의 학생은 종합교육센터 내에 있는 독서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서천여고 2학년 김유경양은 “시내에 있어 교통편이 편리하고 독서실 내부 환경도 쾌적해 이용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몇 년 전만 해도 못 쓰는 건물이 많아 밤에는 다니지도 못할 만큼 무서운 곳이었는데 깔끔하게 바뀌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서천군은 학생들의 방과 후 학습 활동도 이곳에서 진행한다.

봄의 마을은 서천군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10년 전까지 전통시장이 있던 곳이다. 서천군은 2004년 도시정비 차원에서 전통시장을 인근 지역으로 옮겼다. 하지만 시장이 떠난 자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놓고 대립이 불거졌다.

서천군이 문화·복지 단지를 짓겠다는 안을 내놨지만 주민의 뜻을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 통보라며 반발이 이어졌다. 상권 붕괴를 걱정하는 인근 상인들의 불만도 갈수록 커졌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전통시장이 떠난 자리는 5년 이상 죽은 도심으로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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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통령상 수상

나소열 서천군수는 “개발 논의가 시작될 때 큰 상가 건물을 지어 분양하거나 주차장을 짓자는 의견이 많았다”며 “하지만 문화공간을 만들어 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원칙만은 바꿀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절차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서천군은 자세부터 바꿨다.

우선 봄의 도시 조성 계획이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 ‘농어촌 생활공간 문화적 개선사업’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외부 도시재생전문가에게 연구 용역을 맡겼다. 안으로는 대화 테이블을 열어 주민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파악해나갔다. 한상일 서천군청 주무관은 “왜 문화·복지 공간이 필요한지, 이를 통해 주민들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힘은 들었지만 결국 소통의 과정은 선한 결과를 가져왔다. 서천군의 끈질긴 설득에 주민들도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고 수차례에 걸친 주민 설문조사와 현지 조사, 실무회의를 거쳐 마침내 2009년 2월 공사를 시작했다. ‘봄의 마을’이란 이름 역시 주민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개장 1년 반이 지난 지금 봄의 마을은 하루 평균 2,000여 주민이 문화생활을 즐기고 자유로운 상거래가 이뤄지는 공간이 됐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홍식씨는 “상권이 무너질까 걱정이 많았는데 봄의 마을이 들어선 후 유동인구가 많아졌고, 둘러보러 온 관광객도 늘었다”고 말했다. 나소열 군수는 “소통을 통해 만든 공간이기에 의미가 더 크다”며 “앞으로 문화와 예술 등 무형의 자원이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는 참된 의미의 광장으로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서천군은 최근 겹경사를 맞았다. 지난해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문화의 달’ 개최 도시로 선정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공공건축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광장을 중심으로 각 건물에 세세히 흐르는 개방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삶터와 쉼터가 공존하는 봄의 마을, 바닷가 작은 도시 서천의 문화혁명이 주목받고 있다.

글·장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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