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력에 좌우된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충분한 과학기술 능력을 갖춘 과학기술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휴대전화와 TV, 반도체 등 첨단 전자산업에서 세계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을 보면 과학기술강국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반면 세계 30여개국에 가까운 나라에서 배출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아직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일견 모순되는 이 두 가지 복합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소위 ‘빠른 추격자(fast-follower)’ 모델을 성공적으로 활용해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로지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 과학기술분야에서도 압축성장 정책을 써왔다. 이 때문에 남이 갖지 못한 고유한 원천기술이 부족하고 모든 기술의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능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안게 되었다. 응용 및 개발연구는 발전했지만 그것들을 뒷받침해줄 기반기술 및 기초과학 수준은 많이 뒤처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약점이 이제 우리나라의 지속 성장과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다. 추격형 전략으로 발전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 게다가 중국·인도 등 후발국의 기술수준은 우리의 턱밑까지 따라왔다. 결국 우리가 중진국을 졸업하고 선진국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력을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것이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남이 안 간 길을 가야 하기에 폭넓은 기초과학지식의 뒷받침이 필수다. 그렇기에 이제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기초연구 기반을 향상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부응해 지난 5년간 우리 정부도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늘렸다. 기초과학연구원(Institute for Basic Science)을 설립하는 등 기초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러나 단순히 여태까지 취약했던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곧바로 과학기술강국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더불어 연구 여건이 선진화해야 우리나라가 진정 과학기술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젊은 과학자들이 남이 안 해본 도전적이고 모험적 연구를 과감히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남이 안 해본 일을 하면 당연히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 결실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연구에서 실패를 용인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장기적으로 연구를 지원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같은 여건이 만들어지면 우리 국민의 뛰어난 창의성이 발현돼 21세기 창조경제시대에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글·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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