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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상용 로켓 시장 놓고 열강 각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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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우주개발 선진국인 미국과 러시아만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뒤늦게 활동을 시작한 거인 중국은 유인우주선을 발사하며 급격한 성장속도를 과시했다. 일본도 우주개발계획 청사진을 제시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번 우주개발 붐이 50여 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우주개발 초기만 해도 실용적 목적보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간 자존심 대결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물론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나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의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밴 앨런대(지구를 둘러싼 강한 방사선층)’를 발견해내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투입된 비용에 비하면 과다한 지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유인우주선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경향은 심화했다. 1960년대 미·소 양국 간 우주개발 경쟁은 1969년의 달 착륙에 이르기까지 국운을 건 경쟁 속에 진행됐다. 하지만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을 기점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은 과열될 때만큼이나 빠르게 식어갔다.

애초 체제경쟁의 성격이 강했던 만큼 달에 먼저 사람을 보낸 미국의 승리로 일단 결론이 내려지자 양국 모두 더 이상 우주계획을 추진할 명분이 부족해진 것이다. 소련 역시 수많은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난립한 데다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면서 예산에 압박을 느끼던 참이었다. 게다가 아폴로 11호가 발사될 즈음 미·소 이외의 다른 나라들도 우주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두 초강대국이 경쟁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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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5년부터 우주개발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을 계속했다. 비록 주요 프로젝트가 축소되거나 여러 사업이 통합되는 등 어느 정도의 위축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국가 간 협력을 통한 우주개발’이라는 명제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8결정적 계기는 아폴로-소유즈 시험계획이었다. 미국의 아폴로 18호와 소련의 소유즈 19호가 우주공간에서 도킹에 성공했다. 적국의 우주비행사가 서로 상대방 우주선을 방문함으로써 ‘경쟁’한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셈이 되었다.

이후 오랜 기간 우주개발은 완만하나마 꾸준하게 진행된다.

미·소 우주경쟁은 종료됐지만 통신 등 위성과 관련한 사업은 궤도에 올라 자체적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미국과 소련이 유인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에 눈길을 돌린 것도 이 즈음이었다. 급증하는 위성 발사 수요를 충당하고 발사한 인공위성을 관리하기에는 이전의 1회용 우주선만으로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는 ‘산업’으로서 우주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유럽과 일본·중국·인도 등의 국가도 우주개발에 동참했다. 1960년대에 이어 ‘제2의 우주경쟁’이라고 할 만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유럽은 미국·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이 분야에서 선두를 점한다. 20세기 말부터 유럽우주국(ESA)은 아리안 4호로 상용 로켓 분야에서 미국의 선두 자리를 빼앗았다.

ESA는 단순히 상용 로켓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무인 탐사사업에서도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ESA는 2030년까지 화성에 인류를 보내겠다는 목표 하에 러시아와 화성탐사를 위한 계획을 추진하는 등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로존의 경제위기와 경쟁국들의 성장으로 ESA의 우주개발은 다소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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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우주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1970년 일본은 최초의 독자개발 로켓인 람다4S 발사에 성공했다. 그 이후 최근에는 달 탐사위성인 가구야, 이온엔진 시험과 소행성 탐사를 목표로 개발한 하야부사가 활약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이 완전히 퇴역한 이후 일본의 HTV나 H-IIB는 최대 국제 우주정거장 보급선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과 인도는 독자노선을 통해 우주기술을 발전시켰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중국은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의 강력한 지원 하에 중국국가항천국이 유인우주선 계획인 선저우계획을 추진했다. 그리고 선저우 5호와 선저우 6호가 유인비행에 성공했다. 유인우주선 성공 국가로는 세 번째, 인공위성 발사국으로는 다섯 번째다. 이를 두고 사실상 일본을 앞지른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2014년 발사가 예정된 창정 5호는 탑재능력을 대폭 업그레이드해 향후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인도는 인도우주연구기구를 중심으로 우주개발을 진행했다.

2007년부터는 상용 로켓 시장에도 뛰어들어 2008년 4월 5개국 위성 총 10기를 탑재한 PSLV-C9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번 발사로 가장 많은 위성을 궤도에 올려놨다. 2008년에는 무인달탐사선인 찬드라얀 1호를 발사하고 단독 유인우주비행을 계획하는 중이다. 인도는 지금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위성 개발 능력을 보유했지만 발사체 관련 기술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러시아 안가라로켓의 1단계 추진체를 기반으로 나로호를 개발했다. 기술적으로 원숙한 단계에 이르렀지만 아직 성공률은 낮은 것으로 봐야한다.

20세기 후반 발사한 인공위성 중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실패한 위성은 거의 15%에 이른다. 신흥 우주강국으로 떠오른 일본과 중국 역시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2003년 일본의 H2A가 발사 중 폭발했다. 1996년 중국의 CZ-3B가 경로이탈로 지상에 추락해 커다란 인명피해를 내는 시련도 겪었다.

세계의 우주경쟁은 앞으로도 더욱 불이 붙을 전망이다. 우주개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글·김택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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