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어느 중년·장년의 외침 “다시 활판이다”

1

 

경기도 파주시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활판공방’은 여느 인쇄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인쇄소에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한 대도 보이지 않고, 사무실에서는 잉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핏 도서관 서가처럼 보이는 문선대에는 납으로 만든 활자들이 가득하고, 한쪽에서는 구닥다리 인쇄기계가 돌아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듯한 착각이 든다.

활자 문선대 사이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안경을 코끝에 걸친 어르신 한 분이 한 손에 쥔 문서를 보며 활자를 하나하나 뽑고 있다.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납 활자 인쇄공정을 거쳐 책을 찍어내는 활판인쇄소 ‘활판공방(活版工房)’의 모습이다. 활자를 찾던 어르신은 문선공을 겸하는 활자 주조공 정흥택 씨로 74세다. 정씨는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면서 삶의 여유를 만끽할 나이인데도 이곳에서 젊은 시절 익혀둔 숙련된 솜씨를 발휘한다.

정씨가 이곳에서 주로 하는 주조 업무는 섭씨 300~400℃의 고온으로 납을 녹여 활자를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지금 나이에도 그는 한 자의 오자도 없이 책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을 한다. 업계에서는 그를 ‘장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정씨는 주변의 그런 평가에 손사래를 친다.

“처음 활자를 만진 게 열일곱 살 때였어. 하지만 장인이라는 호칭은 부담스럽지. 그저 일에 숙달되면서 어느 정도 기술이 있는 것뿐이야.”

정씨가 활판인쇄기술을 배운 것은 “기술이 있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의 바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57년 종로여관에 조판소가 있었지. 험한 욕을 먹고 때로는 맞기까지 하면서 일을 배웠어.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컴퓨터와 오프셋(offset) 인쇄기술이 들어오면서 활판인쇄가 점점 사라지는 거야. 결국 이 기술이 쓸모가 없어지고 직장에서 쫓겨난거지.”

 

5

 

2
정씨에게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가져다준 곳이 바로 활판공방이다. 활판공방에는 정씨 말고도 나이 든 활판인쇄 기술자가 여럿 있다. 문선공 권영국(75) 씨와 제본공 박정원(73) 씨도 그렇다. 활판공방이 이들 노인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을 주었다.

활판인쇄는 납으로 만든 활자에 잉크를 묻혀 글자를 찍어내는 인쇄 방법으로 ‘주조-식자-인쇄-제본’의 과정을 거친다. 우선 납을 녹여 활자를 만든다. 이 활자를 글자별로 상자에 넣어놓으면 문선공이 원고를 보며 활자 하나하나를 골라 틀에 짜 넣은 다음 이 틀을 인쇄기에 고정한다. 이렇게 고정한 활자에 잉크를 묻혀 찍어낸 다음 이를 엮어 책을 만든다. 활판인쇄의 모든 과정은 수작업을 거친다. 경제성이 떨어지다 보니 1980년대 오프셋 인쇄기술이 도입된 이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런 활판인쇄가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한다. 활판공방은 활자를 찍어내는 기계나 기술, 과정 등 모든 것을 옛날 방식으로 되돌렸다. 이 회사 박한수(45) 대표의 고집과 집념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활판인쇄소를 하기 위해 10여 년간 전국을 샅샅이 뒤져 활판인쇄기와 주조기를 사서 모았어요. 현역에서 물러난 주조공과 문선공 등 기술자도 찾아냈고요. 하지만 그들은 처음에는 옛날 방식으로 책을 만든다고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신반의했죠. 그분들을 설득해서 모셔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박 대표는 “디지털시대에도 기계가 못하는 섬세한 작업은 사람의 손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이테크보다 하이터치가 기술우위라는 것이다. 명품에는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활판공방은 그간 정진규·허영자·오세영·김남조·김초혜 시인의 시집을 출간했다. 이들 시집은 한지에 납활자로 인쇄하고 제본과 장정도 수(手)작업으로 이뤄진 1000권 한정본으로, 시인들이 직접 고른 대표 시 100편이 실려 있다. 이들 시집은 제작 후해판(판을 없앰)하기 때문에 같은 형태로 다시 찍을 수 없고, 매권 일련번호가 있어 소장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 또 활판인쇄에 적합하도록 특수 주문·제작한 전통 한지를 사용해 보존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박 대표나 정씨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국내 유일의 활판인쇄 기술을 보존하려면 후계자 양성이 필요한데 3D직종으로 취급받는 이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 중 활판인쇄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럽 유학파 학생들이 활판인쇄의 장래성을 높게 보고 이곳을 찾기도 해요. 활판인쇄의 맥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도록 인쇄시설과 기술자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수십 년 만에 되찾은 기술을 발휘하는 노인들의 손길은 분주하다. 하지만 일감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박 대표는 “어르신들이 아직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 삶에 대한 애착을 더욱 느끼는 듯하다”며 “항상 새로운 것만 추구하기보다 옛 것을 복원하고 가꾼다면 노인들에게도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최재필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