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광주와 담양 등 전라남도 일대에서 즐기는 음식에 떡갈비가 있다. 사전의 설명을 빌리자면 “소나 돼지의 늑골에 붙은 살을 떼어 다지고 양념하여 떡처럼 만들어서 구운 음식”이다.
경기도 일원에서도 해 먹는데 전라도의 떡갈비가 워낙 유명세를 타 지금은 그곳의 향토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광주에는 전문식당들이 모여 있는 떡갈비골목이 있고 오리탕, 한정식, 보리밥, 김치 등과 함께 떡갈비가 광주오미(光州五味)로 선정될 정도이다.
떡갈비의 내력에 대해 옛날에 임금이 갈비를 손에 들고 뜯어 먹는 것이 체통 없는 행동이라 여겨 갈비에 붙은 살을 떼서 곱게 다져, 먹기 쉽도록 고안한 것이라고 흔히들 설명한다. 또 그것이 민간에 전해진 경로를 궁에서 일하던 나인들에 의한 것이라고도 하고, 전라도 땅으로 유배 간 양반들이 전한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떡갈비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고기를 다져 만든 모양이 시루떡을 닮아서 나온 이름이란 설이 있고 만드는 방법이 인절미 치듯 하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해설도 있다. 그러나 정작 떡갈비라는 음식은 조선조 궁의 기록이나 요리책에 나오지 않는다.
1795년의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갈비찜(乫飛蒸)이 등장하고 1892년의 <진찬의궤(進饌儀軌)>나 그 이후의 <진연의궤(進宴儀軌)>에는 오늘날의 갈비탕을 지칭하는 갈이탕(乫伊湯)도 올라 있지만 떡갈비는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말의 요리책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가리찜이나 가리적은 나오지만 떡갈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굳이 비슷한 음식을 꼽자면 <시의전서>에 나오는 약산적이 있다.
그 조리법을 “쇠고기를 썰어 좋은 진장에 갖은 양념을 합하여 주무른 후 꼬지에 꿰어 도마에 놓고 잔칼질하되, 사면을 얌전히 모아 반반하게 한다. 그리고 깨소금을 뿌려 석쇠에 굽는데, 때로는 네모반듯이 썰어 쓰기도 한다”고 한 걸로 미루어 떡갈비와 흡사하다고는 하겠으나 어쨌건 떡갈비는 아니다.
떡갈비의 본고장으로는 담양과 광주의 송정동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두 지역의 떡갈비는 닮은 듯 다르다. 우선 담양의 떡갈비는 소고기만을 사용하지만 송정동의 떡갈비는 쇠고기에 돼지고기를 섞는다. 섞는 비율은 떡갈비골목에 있는 10여 곳의 식당이 각각 다르지만 그 이유는 식어도 씹는 맛이 퍽퍽해지지 않고 부드럽기 때문이란다. 가격이 저렴해진다는 것은 부수적인 자랑이다. 그러나 담양의 떡갈비는 소고기만을 쓴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두 지역의 떡갈비는 성형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담양의 떡갈비에는 갈비뼈가 들어 있는 반면 송정동의 떡갈비는 뼈 없이 고기만으로 만든다. 송정동 떡갈비의 기원은 1950년대에 ‘최처자’라는 할머니가 송정장에서 떡갈비와 비빔밥을 팔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현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바이다.
반면에 담양의 떡갈비는 조선 초기(1420)에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다녀온 후 <노송당일본행록(老松堂日本行錄)>을 저술한 송희경(宋希璟)에 의해 전해졌다는 것이 현지의 설명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료의 뒷받침은 없으며 담양 최초의 떡갈비전문 식당은 20세기초에 문을 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떡갈비라는 명칭은 일러야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거나, 1950년대 이후에 생긴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본고장의 떡갈비는 담양의 ‘신식당’과 광주의 ‘화정떡갈비’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서울에서는 효자동의 ‘진일정’에서 담양식 소고기 떡갈비를 맛볼 수 있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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