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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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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해장은 예나 지금이나 주당들의 아침 과제이자 즐거움이다. 술도 깨야 하고 출출한 속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술을 깨는 방법도 갖가지다. 실학자 서유본의 부인이자 그 자신이 빼어난 학자였던 빙허각 이씨가 1809년에 저술한 여성생활백과 <규합총서>는 사대부들의 숙취해소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밀실에서 뜨거운 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수십 번 빗질하면 좋다”고 했고, “술 마시고 목이 말라도 찬물을 마시지 마라”거나 “소금으로 이 닦고, 더운 물로 양치질을 하면 숙취가 가신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신선불취단(神仙不醉丹)이나 만배불취단(萬盃不醉丹), 취향보설(醉鄕寶屑) 등 술 깨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의 제조법도 소개하고 있는데, 빙허각이 그 효과를 직접 검증했다고 한 걸 보면 당시의 부인네들도 남편의 건강관리에 상당히 신경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은 해장을 위해 토마토주스에 보드카를 넣은 칵테일을 마시기도 하고 절인 청어를 맥주와 함께 먹기도 한다지만 해장에는 단연코 우리식 해장국이 제일이다. 뜨뜻한 국물로 속을 다스리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월탄 박종화는 1960년대에 쓴 수필에서 “동지섣달 길고 긴 추운 밤을 지내다가 새벽이 찾아와서 일을 하러 직장으로 나갈 때, 찬밥 한 덩어리를 들고 양골 끓이는 술집으로 찾아가서 약주술 두서너 잔에 양골로 안주를 하고 밤 지낸 빈 창자에 술국밥을 먹는 맛이란, 그 시점만은 천하의 행복을 독차지한 성싶다”고 했을 정도이다. 양골국은 뼈다귀에 우거지와 된장을 넣고 끓인 해장국이다.

해장국을 흔히 술에 찌든 내장을 풀어준다는 의미의 해장(解腸)국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숙취를 풀어주는 국이라는 뜻의 해정갱(解酊羹) 또는 해정탕(解酊湯)에서 비롯된 말이다. 갱은 국의 옛말로 18세기 중엽의 <증보산림경제>는 국물이 많은 국을 탕, 건더기가 많은 국을 갱으로 구분하고 있다.

기록에 나오는 해장국의 원조는 성주탕(醒酒湯)이다. 고려 말의 중국어 회화교본 <노걸대(老乞大)>는 성주탕을 “육즙에 정육을 잘게 썰어 국수와 함께 넣고 천초가루와 파를 넣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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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에도 반열이 있었다. 서민들은 선짓국이나 양골국을 먹었지만 조선시대의 지체 높은 양반들은 호사스러운 해장국을 즐겼다.

요즘 사람들은 그 이름조차 생소한 효종갱이 바로 그것이다. 호칭도 예사롭지 않은 남한산성 갱촌의 명물, 효종갱은 새벽 효(曉), 쇠북 종(鐘), 국 갱(羹)자를 쓴다.

갖은 재료를 넣고 밤새 끓이다가 새벽녘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지면 사대문 안의 대갓집으로 배달되어 지난밤 술로 시달린 사대부들의 쓰린 속을 달래주던 음식이다. 우리나라 배달음식의 원조라 할 만하다.

1925년에 간행된 최영년의 <해동죽지>는 효종갱에 대해 “광주 성내 사람들이 잘 끓인다. 배추 속대, 콩나물, 송이, 표고, 쇠갈비, 해삼, 전복에 토장을 풀어 온종일 푹 곤다. 밤에 이 국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에 재상의 집에 도착한다. 국 항아리가 그때까지 따뜻하고 해장에 더없이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용물만 보더라도 값진 재료가 많이 들어간 것이 여간 사치스러운 보양식이 아니다. 게다가 변변한 교통수단도 없던 시절에 남한산성에서 서울시내까지 배달했다니 그 정성만으로도 귀한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옛날에 갱촌이 있던 동네인 경기도 광주의 ‘고향산천’에 가면 효종갱 맛을 볼 수 있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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