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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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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지방음식에 어탕국수가 있다. 얼핏 이름만 들으면 도미국수처럼 수라상에 오르던 족보 있는 요리 같지만 사실 농촌에서 손쉽게 해먹던 천렵국에 국수를 넣어 끓인 음식이다.

천렵국은 봄이나 가을에도 즐겼지만 주로 여름철에 동네 근처 계곡이나 개울가에 솥을 걸고 물고기를 잡아 즉석에서 해먹었다.

개천에 그물을 치고 피라미, 모래무지, 붕어, 미꾸라지, 꺽지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서 푹 곤 뒤 뼈를 추려내고 호박과 풋고추, 미나리 같은 각종 야채를 넣어 끓여먹던 것이다. 먹을 것이 귀하고 놀 거리도 없던 옛날에 영양과 재미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그만 한 피서법도 없었지 싶다.

조상들의 지혜와 풍류를 엿볼 수 있는 천렵에 관한 기록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남도 함양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한 정경운이 18년에 걸쳐 쓴 일기, <고대일록(孤臺日錄)>에는 곳곳에 벗들과 천렵을 즐긴 기록이 나온다. 그는 고려 말 왜구와의 격렬한 전투에서 이름이 유래한 혈계(血溪)에서 주로 천렵을 했던 모양인데, 어떤 날은 눌어(누치)를 89마리나 잡았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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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단하는 천렵을 노래한 장시에서 “여러 가지 섞어 매운탕 끓이고/ 물리도록 밥 먹고 술잔을 기울인다/ 노래 부르며 천천히 돌아오니/ 저녁 어둠이 숲에서 다가오네/ 이런 일 날마다 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라며 그 정취를 찬탄했다.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 4월령에서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촉고(數?)를 둘러치고 은린옥척 후려내어/ 반석에 노구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 오후청(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라고 노래하며 그 맛을 예찬하기도 했다.

구한말에 궁궐과 관청에 그릇을 납품하던 공인 지규식이 쓴 <하재일기(荷齋日記)>에도 천렵에 관한 기록은 여러 곳에 보인다. 조선후기의 풍속화가 김득신은 당시 서민들이 천렵을 즐기는 광경을 실감나는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천렵놀이를 백성들만 즐긴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태종실록>에는 임금이 완산부윤에게 지시하여 자신의 형 회안대군이 유배지에서 천렵하는 것을 허락한 기록이 보인다. <세종실록>에도 양녕대군이 매사냥이나 천렵을 할 때 공인(公人)이 수발을 들지 못하도록 임금이 이천현에 지시한 대목이 나온다.

<연산군일기>에는 선릉수릉관 박안성이 재실에 냄새를 풍기니 제관은 천렵을 못하게 하자고 건의한 대목도 보인다.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고루 천렵을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도쿄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와서 우리나라의 풍속을 조사했던 무라야마지준(村山智順)은 <조선의 향토오락>이라는 저술에서 천렵이 경남의 17곳을 비롯한 전국에서 행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천렵국은 어탕국수 외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죽을 만들면 어죽이 되고, 밥을 말면 어탕국밥, 수제비를 뜯어 넣으면 어탕수제비가 된다. 미꾸라지만 넣고 끓이면 그게 바로 추어탕이다. 어탕국수는 궁핍했던 시절에 서민들이 손쉽게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게 했던 보양식이었다. 비슷한 음식을 충청도 일원에서는 생선국수라고 하고 경기도로 올라가면 털레기라 부르기도 한다.

경상도식 어탕국수의 특징이라면 방앗잎과 계피가루를 넣어먹는 정도랄까. 경남 산청의 생초식당은 어탕국수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서울에서는 목동의 고향지리산어탕국수에서 그 맛을 볼 수 있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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