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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책 읽어주는 남자 <사투리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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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그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네 가지’를 즐겨본다. 인기없는 사람, 촌사람,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놓고 벌이는 개그의 향연이다.

소재도 좋고, 연기도 좋고, 적절한 풍자도 있어 좋다. 그런데 촌사람이라 무시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대목에 이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먼저, 사투리를 쓰면 무시하는 풍토. 이 개그맨은 부산 지역 출신들이 서울말 익히느라 벌이는 촌극을 개그로 연기한 적이 있다. 아마 거기서 실마리를 얻어 이 개그를 짠 듯하다.

그 지역에는 그곳만의 표현법이나 억양이 있게 마련이다. 표준어를 정한 것은 이런 현상이 너무 극단화되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지역사람들끼리는 표준어로 말하는 것이 맞지만, 지역의 언어습관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표준어는 세련되고 사투리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은 서울 중심, 도시 중심의 횡포다.

두번째는 서울과 촌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항변. 촌에서 올라왔다고 무시하지 말라는 항변 속엔 서울과 지방의 삶이 얼마나 평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가 담겨 있다. 지방이라 과거의 삶이 여전히 남아 있을 듯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말. 그런데 과연 이것이 옳은 걸까. 각 지역마다 다른 삶을 살고 옛것이 남아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나쁜 일일까. 사투리 쓴다고 무시하거나, 서울과 다르지 않다고 소리치는 일은 우리 삶이 그만큼 획일화했다는 말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사투리 귀신>이 나왔다. 청소년 문학소설이라 표나게 강조한지라 얼른 읽었다. 청소년들한테 다름은 다양성의 증표가 아니라 이른바 왕따의 원인이기 십상이다. 어린 영혼들마저 획일화의 덫에 걸려버린 것. 그러니 이 작품을 읽으면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겠구나 싶어서 얼른 읽었다.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지방에서 올라온 주인공 연정은 당연히 사투리를 쓴다. 아주 질퍽하다. 서울 학생들은 당연히 이런 연정을 촌스럽다 여긴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연정이 얹혀사는 큰아버지댁 근방에 빈집이 있는데, 이 집과 관련된 괴담이 사투리와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이 집은 유명한 여자 아나운서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곳이다. 아름답고 세련되고 발음도 정확했다. 그런데 정작 이 아나운서는 나고 자란 지역이 지방이라 사투리를 질퍽하게 썼다. 이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결혼하고 일을 그만둔지라 방송 스트레스는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공식적인 자리에 함께 나갈 일이 잦아졌는데, 방심하면 꼭 사투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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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화근이 되었다.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사투리를 안 하려 필담을 나누다 오해를 사 가족들과 사이도 멀어졌다. 마침내 아나운서는 자살하고, 충격받은 집안사람들은 외국으로 나가버렸다. 사투리는 문화다. 다른 문화를 수용하지 않을 적에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연정이 전학 와 알게 된 또래들과 사귀는 과정도 그리고 있다. 여기서도 당연히 사투리가 문제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뜻밖에도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 나간다. 연정이 서울말을 금세 배운 덕도 있고, 그 또래 아이들이 관심 기울일 만한 공통주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이 작품에 나오는 세 소녀는 주변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서로 친구가 되어 간다.

작가는 사투리를 매개로 청소년들 사이의 관계문제를 다루고 싶었던 모양이다. 관계란 결국에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니 말이다.

개그 프로에서 촌에서 올라왔다 해서 무시당하는 내용이 없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른 것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다. 피부색이 다른 것도, 말이 다른 것도, 사상이 다른 것도, 종교가 다른 것도 두루 문제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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