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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화재 원인 정밀추적 ‘한국판 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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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내에서 외곽으로 한참을 들어가니 아담한 2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중앙소방학교 건물에서 떨어져 별도로 위치한 중앙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실이었다.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건물 앞쪽에는 컨테이너와 임시 건축물 3개동이 있다. 소방과학연구실의 연구원은 5명. 소방직 직원을 합하면 총 9명이 일하고 있다.

건물 2층에 위치한 연구실을 들어가 보니 화재현장의 잔해들이 곳곳에 뒹굴고 있었다. 전국 곳곳의 소방서에서 보내 온 화재현장 증거물이다. 화재 원인이 불분명하거나 판정하기 힘든 화재의 경우, 일선 소방서에서 소방과학연구실로 증거물을 보내면 연구원들이 감식을 한다. 최근 3년간 소방과학연구실에서 수행한 화재조사·감정은 3백60여 건이다.

최근 들어 의뢰건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화재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매우 민감한 일이다. 범죄와 연관된 경우를 제외하고라도, 화재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재산 손해를 누가 어느 만큼 책임질지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화학물질과 관련한 화재를 조사·감정하는 한동훈 박사는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장판 조각만 남아 있어도 방화인지, 실화인지 밝혀낼 수 있다”고 했다. 한 박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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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일부러 불을 질렀을 경우 휘발유나 시너 등을 쓰는 경우가 많죠. 이 경우 일단 잔해물에서 강한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냄새가 다 사라졌다 해도, 숯을 이용해 잔해물의 성분을 채취해 분석하면 어떤 물질이 화재의 원인인지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일부러 불을 지르면 거의 1백퍼센트 잡아낼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화재가 난 건물의 거주자나 소유자 등 관련자들이 화재 원인에 대해 문의할 경우, 보통 일선 소방서에서 추정원인을 알려준다. 이에 대해 관련자들이 이의 제기를 하는 경우, 소방서의 의뢰를 받고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판단해주는 곳도 소방과학연구실이다.

6소방과학연구실은 유류증거물 감성과 인화점 시험 등의 항목에 대해 국제공인 인증인 ISO 인증을 받았다. 화재 관련 ISO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받았다.

여러 화재를 분석하다 보니 소방과학연구실에는 화재의 패턴과 예방 방법 등에 대한 자료가 축적된다. 김수영 박사는 “예를 들면 노래방 화재에도 명확한 패턴이 있다”고 했다.

“노래방 화재는 대부분의 경우 지하에 위치한 노래방에서,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스위치를 켤 때 발생합니다. 습기와 먼지 등 여러 조건들이 딱 맞아 불꽃이 일기 쉽기 때문이죠.”

이런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전국 소방서의 화재 조사관을 교육하는 업무도 소방과학연구실이 담당하고 있다. 실습과 실험을 통해 화재 조사에 대해 교육하는 화재조사마스터과정이 그것이다.

큰 틀에서 소방 이론을 연구, 개발하는 것도 소방과학연구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소방 이론 연구, 개발은 선진국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블루 오션’이기도 하다.

화재 예방과 소방 기술에 대한 연구는 산업, 건축 등 여러 상업분야에도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화재연구소를 만들어 국가차원에서 화재 연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영국화재연구소의 경우 60명이 넘는 연구원들이 화재안전과 경제성, 피난수단 및 건축물 안전설계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중국의 소방과학연구소에서는 1백80여 명의 연구원들이 30여개의 실험실을 갖춘 건물에서 소방장비와 진압장비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의 소방연구소는 40여 명의 연구원들이 소방은 물론 원자력 재해, 지진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김수영 박사는 일본의 소방연구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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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방연구소에 견학을 갔는데, 지하철 화재도 연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관련 연구실로 안내했는데, 지하철 1량을 통째 가져다 놓고 화재 실험을 하더라고요. 한켠에서는 지하철 화재가 났을 경우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실험해보는 공간이 있었는데 놀랐습니다. 시뮬레이션의 공간 설정이 대구 중앙로역이더라고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을 표본으로 삼아 연구하고 있는거죠.”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대구 지하철 사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구실 한켠에서는 연구원들이 거듭해서 불붙은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있었다. 담배의 인화성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이다. 이렇게 얻어진 연구 결과는 국민들이 더욱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활용될 것이다.

글·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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