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그는 치솟는 화염과 자욱한 연기를 뚫고 화재현장으로 진입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부상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길이 사그라든 뒤에도 끝내 소방관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기부와 봉사에 앞장섰던 고 김영수 소방경은 그렇게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난 11월 2일 밤 인천시 청전동의 한 대형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다.
이 소식을 접한 서울 중랑소방서 한진국(47) 소방위는 슬픔과 안타까움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지난 2008년 12월 화재진압 당시 상황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날 정오쯤 소방서에는 치킨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한 주임도 곧장 현장에 투입됐다. 대형 화재는 아니었지만 식당 화재의 경우 가스 폭발이나 주변으로 불길이 옮겨 붙을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화재 진압 도중 한 주임은 무언가 뜨거운 액체가 자신의 얼굴에 닿는 걸 느꼈다. 치킨집에서 사용하는 튀김용 기름이 자신을 덮친 것이다. 곧장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나마 불길이 한 주임의 몸으로 옮겨붙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는 당시 얼굴에 2~3도 화상을 입고 보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화재 현장에서 동료 소방관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 긴장하게 되죠. 2008년 내가 부상을 당했을 때는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 현장 상황이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쳤구나’ 하는 느낌만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 든 생각인데, 조금 더 침착했어야 했어요. 원래 대형 화재 현장보다 이렇게 작은 화재 현장에서 의외로 부상을 입는 일이 잦습니다. 긴장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한 소방위는 화재 현장에서 창문을 뜯다가 다쳐 손가락을 여덟 바늘 꿰맨 적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다. 작은 상처는 직업상 피할 수 없고 동료 소방관들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한 소방위가 소방관이 된 건 1987년 12월이다. 올해 12월이 되면 그가 소방관이 된 지 만 25년이 된다. 군 전역 직후 20대 초반에 소방관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외길을 걸어왔다. 당시 한 주임은 소방관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했다.
“형님의 권유가 컸습니다. 제가 임용될 당시만 해도 소방서와 소방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직업을 갖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소방관이 된 후 이 일은 특별한 직업정신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행스러운 건 제게 이 직업이 잘 맞았다는 점입니다.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하고 나서 느끼는 만족감이 좋았어요.”
한 소방위는 행정보다 현장 출동이 체질에 맞다고 했다. 25년간 소방관으로 재직해온 그는 순환보직상 잠시 내근을 했을 뿐, 18년 이상 화재현장을 누벼온 베테랑 소방관이다. 그러나 임용 초기 한주임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한 사건들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동대문 소방서에 근무할 때로 기억합니다. 2층 주택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5세 아이가 까치발로 가스레인지를 조작한 게 원인이었습니다. 큰 폭발음과 함께 건물은 순식간에 불이 붙었어요. 그런데 현장은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한 골목길이었어요. 15미터짜리 호스를 11개나 연결했는데도 현장에 닿지 않았어요. 마당에 있는 여성이 아이를 구해달라고 소리 지르는 걸 보고 무작정 뛰어들어 갔습니다. 천장에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불회오리(파이어 휠)가 치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장비가 변변치 않아 오래 버틸 수 없었죠. 건물을 빠져나오니까 호스가 연결돼 있었고 그걸 잡고 다시 뛰어들어갔죠. 그리고 작은방 장롱에 있던 아이를 데리고 나왔어요.”
화재 현장이 위험할 경우 진입을 제지했을 법도 하지만 한 주임은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들어갑니다. 그게 우리 일이에요”라며 오히려 손사래를 쳤다.
한 주임은 중랑서 신내안전센터 소속으로, 화재 현장 출동 시 펌프카(물을 뿜는 소방차)의 호스를 잡고 최일선에 선다. 펌프카는 지휘자 1명, 관창수 1명, 관창수 보조 2명, 운전원 1명 등 총 5명으로 구성되는데 통상 현장 경험이 많은 실무자가 관창수 역할을 맡는다. 관창수 보조로 한때 한 주임과 한팀을 이뤘던 김길환 소방사는 “(한 주임은) 경험이 많고 현장에서 정말 믿음이 가는 선배”라고 말했다.

“호스를 잡고 현장으로 달려가면 사실 마음이 놓입니다. 우리한테 호스는 생명선과 같거든요. 소방관이 아니기 때문에 제 느낌을 이해하기는 좀 어려우실 겁니다.”
한 주임은 부상 입은 소방관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전담 병원이 건립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경찰의 경우 퇴직 후에도 경찰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소방관들도 부상을 당할 경우 경찰병원을 이용할 수 있지만 퇴직 후에는 치료받기 어렵다.
“제가 임용됐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 근무환경은 좋아진 편입니다. 다만 부상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 특성상 소방병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명함을 하나 달라고 하자 금세 답변이 돌아왔다.
“현장에 출동하는 사람이라 명함 같은 거 없어요. 중랑서 소속 소방관, 이게 제 명함입니다.”
글·김대현 기자 / 사진·조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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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