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최근 ‘묻지마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일부 언론은 범인들의 공통점이 세상과 연결되기를 거부한 채 누적된 분노를 범죄로 표출한 사회적 부적응자들이라는 분석과 함께 ‘은둔형 외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범죄자’라는 인식이 굳어져 가고 있다.
상담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은둔형 외톨이는 기본적으로 일반인보다 약하고 여린 사람들”이라며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해 숨어 지내는 이들이 어떻게 남을 해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여인중 동남정신과 원장은 오래전부터 일본을 왕래하며 ‘은둔형 외톨이’를 연구한 이 분야 전문가다. 그는 2005년 정부 용역으로 청소년위원회가 진행한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부적응 청소년 지원방안’의 선임연구원이자 필진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일본 히키코모리부모협회가 매년 개최하는 전국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강연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
여 원장은 “최근 일본에서는 ‘일반인은 반사회적 범죄 확률이 높고, 히키코모리는 비사회적 범죄 확률이 높다’는 내용의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고 말했다. 비사회적 범죄란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일컫는다.


“은둔형 외톨이는 외부인은 물론 가족과도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옆에서 자극하지 않으면 10년이고 20년이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은 채 홀로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지요. 스스로 겪은 좌절이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분노나 적개심 같은 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답답한 마음에 가족 중 누군가가 자꾸 자극을 하면 감정적으로 욱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은둔형 외톨이는 ‘6개월 이상 집 밖 출입이 없고, 가족 이외의 사람과 접촉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좁은 의미, 즉 의학적 진단에 의한 은둔형 외톨이는 여기에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붙는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생산성이 없어야 하고, 혼자 지내는 것이 힘들고 괴로워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 원장은 “방 안에 틀어박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혼자 지내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그냥 외톨이일 뿐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그냥 삶의 방식이 독특할 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외톨이를 창의적 외톨이, 은둔형 외톨이, 반사회적 외톨이 등으로 구분한다. 창의적 외톨이는 글을 쓰거나 발명을 하는 등 어떤 일에 몰두하느라 외부와 접촉이 없는 경우를 말하고, 반사회적 외톨이는 실패나 좌절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남에게 돌리며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키워가는 사람을 이른다. 여 원장은 “반사회적 외톨이의 경우 정신분열증 환자가 많다”고 말한다. 때문에 은둔형 외톨이와 반사회적 외톨이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여 원장은 “은둔형 외톨이는 전문가나 주위의 도움이 있을 경우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이들”이라며 “은둔형 외톨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무서워하거나 멀리할 경우 이들이 사회로 돌아오는 길은 영원히 봉쇄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은둔형 외톨이는 어떤 경우 발생할까. 2005년 청소년 위원회가 연구 발표한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부적응 청소년 지원방안’에 따르면 다음 3가지 요인으로 압축된다.
첫째, 부모의 과잉보호나 과잉통제, 모자밀착 등 부적절한 양육방식에서 오는 가족 요인이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의존적이고 미성숙하며 자생력을 갖지 못한다고 한다.
둘째, 왕따나 폭력 혹은 우울증 등 정서적인 문제로 학교생활이 어려운 경우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왕따나 폭력은 고등학교까지 연장되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에게 학교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이로 인한 우울증은 무력감과 의욕상실로 이어져 대인공포증을 갖게 한다고 한다.
셋째, 급속화된 사회변화에 따른 개인주의와 경쟁주의 등 사회문화적 요인이다. 지나친 개인주의는 학력지상주의를 만들었고, 또래 관계보다는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서 남보다 나은 월급을 받아야 행복하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는 아이=착한 아이’라는 공식이 주입된 셈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학업에 재능을 보이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불효자, 사회로부터의 예비낙오자라는 낙인을 받았다.
문제는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진단이나 치료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여 원장은 “은둔형 외톨이는 스스로 병원을 찾는 일이 없는데다 증상이 정신분열과 크게 다르지 않아 진단은 물론 치료 또한 어렵다”고 말한다.

“지난 10년 동안 제가 상대한 은둔형 외톨이가 총 2백명에 불과합니다. 주로 부모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병원에 오거나 부모의 부탁으로 현장에 출동해 겨우 진료한 환자들이죠. 대부분은 자극하지 않으면 집 안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까 언젠가는 낫겠지 하며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병원을 찾는다 해도 개인적 성향에 따른 일종의 성격장애라서 특별한 진단법이나 치료법이 없습니다. 일반 병원을 찾을 경우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하기 십상이지요. 정신분열증의 경우 10년 전만 해도 망상이나 환청 등 뚜렷한 증상이 있었지만 요즘은 별로 없어서 은둔형 외톨이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치료법이 발달돼 있는 일본은 정부가 지원해 전국에 60여 개의 히키코모리 전문치료 시설이 있다고 한다. 여 원장은 “일본은 히키코모리 환자들을 위해 정부가 연간 11억 엔씩 투자하고 있다”며 “한국도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글·서철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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