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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8년간의 농사일기를 전자책으로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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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깎지 못한 수염과 체육복 바지에 낡은 1톤 트럭을 몰고 나타난 정화려(48)씨는 여지없는 시골 농부의 모습이었다. 한창 가을걷이가 바쁜 때라 밭에서 일하다 말고 기자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고 했다. 겉모습에서는 서울에 태어나 36년을 살다가 귀농을 한 사람이라는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충북 단양군 어상천면 석교리의 마당 딸린 흙벽돌 농가 한 채가 그의 보금자리였다. 귀농 전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의 집이라고 한다. 그는 2000년 겨울,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별 연고도 없는 이곳 석교리에 정착했다. 석교리는 5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형적인 우리의 농촌 모습이다.

방 안에 들어서자 그가 외부와 소통하는 컴퓨터와 태블릿PC가 보였다. 방 한쪽에는 장구가 놓여 있었다. 4년째 틈틈이 장구를 배우고 있는 그는 자기가 배운 것을 마을회관에서 노인들에게 가르쳐 준다고 한다. “장구 실력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단양의 농사꾼 중에는 제일 잘 치지 않을까요?”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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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농사를 주로 짓느냐”고 묻자, 그는 “1만평 정도의 땅을 얻어 마늘하고, 수수 같은 잡곡 농사를 짓는다”고 대답했다. 조금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특용작물을 재배해서 고소득을 올리는 성공 귀농인이라고 간주하고 던진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정씨가 말을 이었다.

“귀농을 결심한 후 어느 방송을 보니까 두릅을 기른다기에 ‘저걸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귀농 후 곧바로 두릅 묘목 5백만원어치를 사서 심었는데 3년 만에 말라 죽었습니다. 현지의 토질과 기후를 전혀 모른 상태에서 막연하게 특수작물을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죠. 귀농인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현지의 토양과 기후를 모르고 막연하게 작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저도 귀농 후 처음 몇 년은 동네 주민들에게 매일 물어 가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정씨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와 경험”이라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영농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된 농사일 후에 피곤한 몸 상태에서도 그는 매일같이 일기를 썼고, 이렇게 8년간 쓴 영농일기를 책으로 묶어서 펴냈다. 책을 내는 데는 서울에 있을 때 출판인쇄업을 한 경험이 도움되었다고 한다. 영농일기 덕분에 2004년에는 단양군수의 표창을 받았고, 2006년에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신지식농민으로 선정되었다.

정씨는 자신의 농사 경험을 좀 더 많은 영농인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영농일기를 전자책(e-book)으로 만들어 자신이 만든 홈페이지(유월.kr)에 올렸다. 지금까지 약 1천명의 사람이 이 책을 무료로 내려받았다고 한다.

“저의 모든 영농 노하우가 들어 있기 때문에 처음 농사를 짓는 사람이 이 일기를 보면 큰 도움이 됩니다. 품목별로 농사 지은 경험이 다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제 개인적으로도 지금 심어 놓은 농작물의 예년 작황은 어땠는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금방 검색을 해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농사일에 많은 도움이 되죠. 제가 농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농사를 기록한 농부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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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아는 만큼 남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농일기를 통해 자신의 영농지식을 나누고 마을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 주거나 젊은 농민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에게는 작은 것에 불과한 지식과 재주라도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에 다니던 30대의 젊은이가 돌연 시골로 내려와 ‘농사꾼’으로 변모한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정씨는 “‘땀 흘려서 일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는 삶’이라는 개인의 철학이 귀농을 결심하게 된 주요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정씨의 설명.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고, 나누는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농민밖에 없습니다. 도시 직장인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기 어렵죠. 저는 몸과 마음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노동이나 직업을 원했고, 농사가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농사를 인간이 할 수 있는 ‘완전한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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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환경과 생태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양심과 자기의 인생철학에 따라 직접 몸을 움직여 일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고, 지구 환경에도 기여하는 농사를 택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귀농 후 지금까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유기농 농산물은 판매할 때는 다소 유리하지만, 막상 소득을 올리는 데는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농사 밑천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귀농을 했다”며 “농사로 ‘대박’을 내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가졌던 저의 귀농 결심과 맞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박한 삶을 꿈꾸는 그가 후배 귀농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우리 농촌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 경험도 없는 귀농인이 처음부터 우리나라 평균 농가소득(약 3천만원)을 올리기는 현실상 힘이 듭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그 귀농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귀농자들이 기존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끼리끼리 모여 살거나, 혼자 아무도 없는 오지로 가는 귀농은 별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과 사진·이상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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