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다. 사실은 개국절이 정확한 표현일 수 있지만, 우리는 하늘의 자손이라고 생각해왔으니 사실은 정통성을 부여받았다는 선언이다. 올해는 단기 4345년이다. <삼국유사>는 ‘이 해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나라를 세웠는데,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한민족의 원핵국가인 (원)조선이 언제 건국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요동지방에서 강화도까지 곳곳에 세워진 고인돌 같은 고고학적인 유물들을 보면 최소한 기원전 15세기 이전인 것은 분명하다. 그 이후 세워진 모든 나라는 한결같이 이른바 조선 계승성을 선언했고, 그렇게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됐다.
<제왕운기>에는 ‘고구려, 신라, 남북 옥저, 북부여, 동부여, 예와 맥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고 했다. 중국의 <후한서>에도 ‘예와 옥저, 고구려는 본래 조선땅이다’라고 기록했다. 그래서 고구려는 처음부터 조선 계승성을 분명하게 하고 국시를 다물(多勿)이라고 설정했다.


그 맥이 이어져 중화사상에 젖은 성리학자들이 지배한 조선마저 단군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고, 그 가운데 하나가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제천단이다. 그리고 조선이 멸망할 무렵부터 백성들은 단군을 중심으로 마음과 힘을 모았다.
3·1운동 이전에 발표된 무오독립선언서에는 ‘단군대황조께서 상제에 좌우하사 우리의 기운을 명하시며…’라고 되어 있다. 그 정신을 갖고 1920년대 중반까지 만주에서 벌어진 무장 독립전쟁은 청산리 전투처럼 대부분 단군을 앞세우고 전개했다. 그 후 상해로 간 임시정부 또한 단군을 앞세우고 개천절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화라고 규정하면서 단군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조선이라는 나라도 마치 불분명한 존재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우리 민속 신화 등을 말살시키는 작업을 했다. 1922년에 조선총독은 교육시책을 발표해 민족혼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했고,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를 보면 ‘민족의 기원과 그 발달에 관한 조선 고유의 사화(史話) 사설(史說) 등은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기록에 있는 사료에만 의존한다’고 되어 있다.
이 지침을 충실히 따른 우리 역사학계는 단군을 허구로 만들었고, 조선마저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는 미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작 일본은 신도를 확립하고, 일본신화를 부각시켰으며, 기원을 기원전 6백60년까지 올렸다. 이렇게 시작된 단군 말살 작업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와 북한은 민족의 정통성을 놓고 단군의 후예임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공산주의로 출발했기 때문에 단군의 존재를 부인했다. “단군신화는 거짓말을 많이 담고 있으며, 또한 고조선의 통치배들이 계급적 지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꾸며낸 부분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1991년을 기점으로 주체사관을 내세운 뒤부터는 5천년이 넘은 단군 부부의 뼈를 발굴했다고 하면서 단군릉을 세우고 참배하게 하고 있다. 분명 단군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측면이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단군을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하고, 비하하며 더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 당연히 개천절에도 전혀 의미를 두지 않고, 그렇게 해야 합리적이고 지식인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 나라든지 창조신화와 문화신화, 건국신화가 있다. 아주 먼 옛날의 일이기 때문에 문자를 사용할 수 없었고,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려면 말로 재미있게 표현해야 했다. 온갖 상징과 비유가 동원되고, 특별한 인물이나 사건을 얘기할 때는 신의 얼굴과 몸을 빌려와야 했다. 그러니까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오히려 내용도 풍성하고, 많은 이들의 바람과 기쁨, 슬픔을 담아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먼 훗날의 후손들까지 염두에 둔 채 온갖 정성을 기울여 단군신화에 담아놓은 내용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가 많이 잃어버린 자의식이 있다.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천손(天孫)이라고 부르고 고주몽은 단군의 아들이라 칭했다. 하늘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나라요 백성이라는 선언이다.
하늘의 임금인 환인의 아들이 환웅이고, 단군은 그 아들이니 천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단군의 어머니는 지모신인 웅녀(熊女)이다. 흔히들 곰(熊)을 동물로만 생각하고, 토템이라 한다. 물론 동북아시아인들에게 곰은 신령스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이때 곰은 신이라는 ‘감’계의 우리말을 표현한다.

백두산은 개마대산이라고 부르고, 곁에는 개마고원이 있다. 중국이 장백산 공정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제의 수도인 웅진은 ‘신시’라는 뜻을 지닌 ‘고마나루’이다. 신들을 모시는 검단산은 현재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남아 있다. 고구려를 일본에서는 ‘고마’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단군은 하늘의 피와 대지의 피를 골고루 받은 존재이다. 우리는 그 신령스러운 존재의 자손이다. 현대와 달리 전근대에는 이러한 자의식이 있어야 다른 집단과 경쟁을 벌일 때도 쉽게 패배하지 않았다.
또 하나 있다. ‘홍익인간·재세이화(弘益人間·在世理化)’이다. 요즘 말로 번역하면 ‘휴머니즘’과 ‘합리적인 민주주의’이다. 우리가 아는 신화들은 대부분 신들이 주역이고, 그 신들은 막강한 힘을 갖고 인간을 다스리기만 한다. 때로는 징벌까지 내리면서. 그런데 단군신화는 다르다. 신들은 인간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환웅은 하늘의 기득권을 버린 채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곰은 1백일 동안 굴속에 들어앉아 쑥과 마늘을 먹어야하는 힘든 고통을 겪었다. 심지어는 여인(웅녀)이 된 후에도 자식 낳기를 원해 신단수에 가서 빌고 또 빌었다. 이처럼 인간은 가치 있고, 완성된 존재이기에 환인도 아들의 뜻을 꺾지 않고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래서 홍익인간이라는 이념과 이치로써 인간세상을 다스리라(在世理化)는 방식까지 내려주었다.
단군신화에는 그밖에도 우리 민족이 지녔던 혼인 풍속, 아기 낳는 풍속, 백일잔치, 변증법의 숫자인 3 등 다양하고 심원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지금은 민족사적으로, 동아시아적으로, 문명사적으로 실로 어려운 시대이다.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을 버리고 역사가 물려준 단군신화를 현대에 걸맞게 재해석하고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미래는 환하지 않을까?
글·윤명철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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