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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마라톤의 영웅, 이젠 나라사랑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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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시 마포구 만리동 손기정기념 체육공원 안에 있는 양정의숙 건물 한 동을 리모델링한 것. 양정의숙은 손기정 선수의 모교로, 손 선수가 민족의식을 배우고 마라톤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준 정신적 고향이다.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은 “할아버지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귀국했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양정의숙 교복이었다”고 말했다.

손기정 선수는 귀국하자마자 교복을 입은 채 남산에 있는 신사로 연행돼 강제로 참배해야 했다. 이후 손 선수의 평생 소망은 ‘극일’이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마라톤을 가르칠 때, 항상 일본 선수에게는 지지 말라고 다그쳤다.

후배, 제자들은 서슬 퍼런 그가 무서워 일본 선수들에게는 등을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1, 2, 3등을 모두 한국 선수가 차지한 것이다. 이 사무국장은 “할아버지께서 평생 말씀하신 ‘극일’은 무조건 일본을 미워하고 배타하자는 건 아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께 극일은 한국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이었습니다. 일본인과 일본에게 지면 세계 최고 국민, 최고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일본을 미워하라고 가르치는 대신, 나라의 소중함을 항상 말씀하셨고, 나라가 부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손기정기념재단은 손기정기념관을 손기정 선수의 민족 사랑, 나라 사랑의 정신을 어린 세대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기념재단 측은 유품 전시 위주가 아니라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재미있게 손기정 선수의 삶과 나라 사랑의 중요함을 알릴 수 있도록 꾸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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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기념관은 1층에 상설 전시실(1, 2전시실), 2층에 기획 전시실이 있다. 1전시실에는 손기정 선수의 어린 시절부터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승리까지 과정을 담고 있다.

도전, 극복, 승리를 테마로 일대기 중심의 콘텐츠를 재현, 연출하고 있는 게 특징. 당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전 코스를 한눈에 보여주며, 코스 중간중간에 중요 대목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5킬로미터 구간 앞에 있는 키오스크의 버튼을 누르면 외국 선수가 손 선수에게 “페이스를 조절하라”고 하는 장면을 재현한 영상이 나온다. 마의 코스라고 불렸던 28킬로미터 구간에서는 일본 선수가 기권하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는 등 당시 마라톤 코스를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손기정 선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장기 말소 사건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증언한 것을 바탕으로 일장기 말소 계획부터 실행까지를 키오스크 버튼을 눌러가며 재현할 수 있다. 청산가리를 이용해 일장기를 지우는 장면을 재현할 때는 묘한 쾌감이 든다.

2전시실에는 마라톤 금메달을 딴 이후 활동을 테마로 했다. 민족과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손 선수의 일화 중심으로 연출했다. 주요 사건을 재구성한 애니메이션과 실제를 재현한 입체적인 전시 방법을 사용해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전시실 끝에 다다른다. 2전시실 출구 직전에는 블루 스크린에서 생전 손 선수의 영상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찍은 사진은 벽에 걸려 있는 컴퓨터를 이용, 즉석에서 메일로 전송할 수 있다.

유품은 되도록 적게 알찬 것만 전시해놓았다. 손 선수가 ‘나는 슬푸다’고 쓴 자필 엽서, 당시 월계관 금메달, 상장, 천재 감독 레니리펜스탈이 손 선수를 위해 직접 제작한 ‘올림픽아’ 다큐멘터리 축약본 등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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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있는 기획 전시실은 말 그대로 기획전을 여는 곳이다. 개관 기념으로 손기정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인 강형구 화백의 개인전을 연다. 강 화백은 이번 전시회에서 자신을 세계로 알린 ‘얼굴’을 주제로 손기정 선수와 그와 친밀했던 사람들의 얼굴 작품 10여 점을 내놓았다.

손기정 선수의 우승 당시 슬픈 얼굴, 손 선수와 친숙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 등이 인상적이다. 이준승 사무총장은 “강형구 화백은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좋아해 기념재단을 설립한 분으로, 그의 손끝에서 나온 할아버지 모습은 실제 모습만큼이나 생생하다”고 말했다.

글·김남성 기자

문의 ☎070-4639-0354/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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