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감성여행 <제주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테‘마’>

1

 

곶자왈을 품은 애월의 중산간 지대에 들어앉은 제주승마공원은 이 섬에선 드물게 1백만제곱미터의 넓은 땅을 가진 승마장이다. 넓은 목초지와 그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몇 개의 오름, 여기에 삼나무 숲의 풍광이 독특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목장 인근 삼나무 숲으로 승마트레킹을 떠나기로 했다. 교육과 길 안내를 맡은 바타 씨는 몽골에서 온 청년이라고 했다. 그는 내내 웃는 얼굴로, 이국의 낯선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한국말도 잘했다. 제주의 한 테마파크에 속한 기마공연단 출신답게 설명도 참 조리있게 했다.

그의 인솔 아래 한 시간 남짓 승마트레킹이 이어졌다. 제주의 승용마들은 대부분 경주마인 더러브렛(Throughbred)과 제주 토종말인 제주마의 교배로 만들어진 ‘한라마’다.

5

한라마는 1백35~1백55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는 3백50킬로그램 내외다. 크고 위압적인 몸집을 가진 더러브렛에 비해 한결 ‘만만해 보이는’ 체형이다. 승마장의 말들은 초보자가 타도 놀라지 않고 고삐를 당기면 알아서 돌아 주기도 하는 2차 순치(馴致·길들이기) 과정이 끝난 말이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은 버려도 좋을 듯하다.

두어 개의 목초지를 지나니 드디어 삼나무 숲의 입구가 보였다. 바타 씨는 숲에 들어서면 마치 공룡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라고 농담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온갖 곶자왈의 식물들이 깊은 숲을 이루었다. 늙은 나무가 불쑥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말 등에 앉아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그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몸이 익숙해지면서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숲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다. 몇 개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었는데 말들은 모두 길에 익숙한 듯 흐트러짐 없이 잘도 걸었다. 어느새 말에게 몸을 맡긴 채 삼나무 숲에 이는 바람 소리와 길게 우는 산새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6

2
한림읍 금악리의 이시돌목장에 도착했을 때 분주함이 느껴졌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트럭이 산더미처럼 쌓인 건초더미를 쉴 새 없이 나르고 있었고, 펜스를 두른 목초지 안에서는 태어난지 1년 안팎의 어린 말들이 떼지어 이리저리 내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혈기왕성한지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딱 저렇지 않을까 싶었다. 흰색 울타리의 목초지 사잇길을 따라 산책을 시작한다. 덜 여문 말들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와 울음소리를 지나면 내년 봄 출산을 앞둔 말들이 모여 있는 초지가 나온다. 망아지들과는 달리 평온한 분위기로 풀을 뜯는 씨암말들은 생김새와 움직임이 더없이 우아하다.

목장을 가로지르는 삼나무길 너머로 이색적인 건물도 보인다.

이시돌목장의 상징인 ‘테쉬폰(Cteshphon)’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의 테쉬폰이라는 지역에서 처음 지어졌던 건축양식이라 그런 이름을 붙였는데 둥글게 올린 지붕 구조가 매우 독특해 보였다.

1961년 이 목장에서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고 이후에는 축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테쉬폰 주택으로 이시돌목장의 이국적이며 목가적인 분위기를 완성시키는 존재다.

스페인 농부 출신 성인의 이름을 딴 이시돌목장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제주로 온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J.Macglinchey) 신부가 만들었다. 현재 1백50마리의 경주마를 사육하고 있는데, 목장의 50여 마리 씨암말이 해마다 서른다섯 마리 내외의 새끼를 낳는다고 했다. 이곳 출신 말 중에는 과천경마장이나 부산경마장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는 경주마도 더러 있다.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를 내며 걷는 모양새가 도도하기 그지없다.

한눈에도 멋진 외모와 강해 보이는 긴 다리를 가진 ‘시스터마돈나’는 이 목장 출신의 경주마다. 이시돌목장 수녀원의 수녀님 이름을 땄다는데 이곳 말들의 이름 중 이렇게 성직자들의 이름을 딴 경주마가 꽤 많다. 시스터마돈나는 말 전용 트레드밀(러닝머신)에 올라 속도와 각도를 달리하며 한참을 달렸다. 휴양을 위해 잠깐 제주로 내려왔지만 컨디션 조절을 위해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지난 봄 태어난 망아지들은 아직 어미젖을 떼지 못했다. 어딜 가나 어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망아지들 사이에 염소 한 마리와 꼭 붙어 다니는 망아지 한 마리가 보인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어미를 잃은 녀석을 위해 염소 친구를 만들어 주었단다.

7

3
제주와 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제주도 목장의 시작은 고려시대부터이다. 제주마인 ‘조랑말’의 등장은 역사적으로 볼 때, 삼별초 난 이후 원나라가 1276년(충렬왕 2) 제주 수산평에 최초의 목장을 설립해 몽골말 1백60마리를 들여오면서부터이다.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1894년 공마제(貢馬制)가 폐지될 때까지 한라산 중간 지대에서 우도에 이르기까지 제주마를 기르는 일종의 국영목장이 번창했다. 1940년대로 당시 2만여 마리의 제주마가 사육된 전성기를 지나 2011년 말 기준으로 제주마가 1천3백92마리(혈통이 등록된 순종은 2백마리), 더러브렛이 4천1백79마리, 혼혈종인 한라마가 1만6천6백92마리 등 모두 2만2천2백23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8

풍부한 목초지와 온난한 기후가 제주를 천혜의 목축장으로 만들었다. 중산간 일대 오름에 펼쳐진 목초지에서 방목 중인 말들의 풍경은 이 섬에서 손꼽히는 절경 중 하나이다.

제주의 1백20여 개 목장에서 사육하는 말 중 경주마는 4천1백여 두로 과천과 부산, 제주경마장에서 뛰는 경주마 역시 80퍼센트 이상 제주 출신이거나 제주에서 훈련을 받았다. 과천과 부산경마장에서는 경주마 더러브렛이, 제주경마장에서는 제주마와 한라마가 경기에 나선다. 더러브렛은 경주를 위해 완벽하게 개량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종이다.

한라산 자락 조천읍의 제주목장은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주마 생산과 육성의 산실이다. 이곳을 찾으면 40억원대 몸값을 자랑하는 씨수말 포레스트검프를 비롯한 명마(名馬)들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의 전통마를 만날 수 있다. 제주목장의 경주마 씨수말은 민간 목장의 암말과 교배를 한다.

씨수말들은 성격이 난폭한 데다 예민해 3천여 평의 너른 초지를 독차지하며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매년 3월부터 6월 사이의 교배시기에는 씨수말 한 마리당 50~60회 정도의 교배를 하기 때문에 체력관리도 필수. 이 때 씨수말들은 홍삼이나 각종 영양제로 몸보신을 한다.

9

4
제주목장의 씨수말 중에서는 미국에서 들여온 ‘메니피(Menifee)’와 ‘비카(Vicar)’의 자마들이 요즘 잘 뛴단다. 물론 혈통이 좋다고 모두 다 훌륭한 경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인 혈통과 외모뿐 아니라 후천적인 훈련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제주목장에서도 자체적으로 1년에 50두 정도의 말을 생산해 그중 ‘될 놈’을 찾아내 경주마로 길러 낸다. 최소 7년에서 30년 경력의 노련한 조교사와 말 관리사가 임무를 맡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목장지였다는 제주목장의 여행은 3킬로미터 내외로 조성된 트레킹 코스를 따라가면 된다. 목장 안길로 들어서면 수평의 세상이 열린다. 차분하게 사색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기존의 트레킹 코스를 새롭게 정비해 여유로운 목장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새단장을 했다. 목장입구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예약하면 어린이들이 무료로 조랑말을 탈 수도 있다.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ㅁ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