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대호는 지난 9월 26일 현재 오릭스 선수 중 유일하게 팀이 치른 전 경기(1백37경기)에 출전했다. 1루수 수비를 하지 않고 지명타자로 나선 적은 있지만 한 경기도 거르지 않고 4번 자리를 지켰다. 타점(87개)은 퍼시픽리그 전체 1위이다. 세이부 라이온스의 나카무라 다케야(77타점)를 멀찍이 따돌렸다. 타점왕 자리는 이변이 없는 한 굳혔다고 봐도 좋다.
홈런(23개)은 리그 2위. 이대호는 지난 9월 26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벌인 홈 경기에서 1회 2점 선제 결승 홈런을 터뜨려 팀을 12연패의 수렁에서 구해냈다. 퍼시픽 리그 홈런 선두는 세이부의 나카무라(25개)이다. 나카무라는 지난 시즌 48개의 홈런으로 홈런 1위를 차지했으며, 앞선 3년간 1백21개의 대포를 터뜨린 일본의 대표적인 거포이다.
이대호의 시즌 타율(0.289)은 퍼시픽 리그 8위. 3할을 넘긴 적도 있었는데,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조금 떨어졌다. 최다안타 4위(1백44개), 장타율 2위(0.479), 출루율 4위(0.371) 등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어느 팀 유니폼을 입더라도 간판타자로 뛰기에 충분하다. 오릭스가 2년간 7억6천만 엔(약 1백10억원)을 투자해 한국의 대표 타자를 영입한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이대호는 먼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던 한국 출신 강타자들과 비교해도 돋보인다. 이승엽(현 삼성)은 2003년 삼성에서 아시아 한시즌 최다 홈런 기록(56개)을 세우고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로 옮겨갔다. 일본 데뷔 시즌이었던 2004년, 타율 0.240(80안타), 14홈런, 50타점에 그쳤다. 2005년에는 타율 0.260(1백6안타), 30홈런, 82타점으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인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비로소 꽃을 피웠다. 붙박이 4번 타자로 활약하며 0.323의 타율(169안타), 41홈런, 1백8타점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이승엽은 요미우리와 오릭스를 거쳐 올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올해 국내 프로야구 타격 1위를 확정한 한화 김태균도 일본에선 고전했다. 그는 2010년 지바 롯데로 건너가 타율 0.268(1백41안타), 21홈런, 92타점으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지난해엔 31경기만 뛰며 타율 0.250, 14타점, 1홈런에 그쳤다. 일본 동북부 지진 이후 불안감이 커지면서 현지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허리 부상으로 2군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결국 치료를 이유로 시즌 도중 귀국해 스스로 퇴단(팀에서 물러남)을 결정했다.
김태균과 이승엽은 올해 국내 무대에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일본이 아직 한국보다 전반적인 야구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대호도 이런 점을 실감했다. 기본적으로 일본 투수들의 평균적인 제구력은 한국 투수들보다 정교하다. 타자의 약점을 정밀하게 분석해 파고드는 시스템도 앞선다.
더구나 이대호는 모든 일본 투수가 낯설었다. 한국에서 뛸 땐 투수들의 주무기와 투구 패턴 자료를 머릿속에 입력해 뒀다. 자연 투수와의 수 싸움을 하기가 편했다. 그런데 일본 투수들에 대한 데이터는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시즌을 맞아야 했다. 투수와 대결하며 몸으로 공을 익혀야 하는데, 비디오 한두 번을 보고 타석에 서니 불리했다. 이대호는 모든 일본 투수와 처음 상대해야 했다. 투수와 대결하며 몸으로 공을 익혀야 하는데, 비디오 한두 번을 보고 타석에 서니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투수들은 가급적 장타를 맞지 않으려고 투구한다. 각 팀의 전력이 엇비슷해 1, 2점 차이로 승패가 가려지는 경기가 많아 홈런 같은 ‘한 방’을 조심한다. 또 일본 투수들은 외국인 거포를 상대할 때 1루가 비어 있으면 볼넷을 줘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유인구를 던진다. 반면 외국인 타자들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유인구에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
선구안이 좋기로 이름난 이대호는 한국 롯데에서 뛰었던 지난해에 8타수에 한 번 정도 삼진을 당했다. 일본에선 6타수에 한 번꼴로 삼진이 늘었다. 그만큼 일본 투수들이 타자를 속이는 공을 잘 던졌다는 뜻이다. 일본은 또 야수들의 수비 범위도 넓다.
안타라고 생각했던 타구가 내야 땅볼로 처리되는 경우가 흔하다. 공인구의 반발력도 예전보다 떨어져 장타가 덜 나온다.
이대호는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슬럼프를 거의 겪지 않으면서 꾸준히 활약했다. 홈 경기 평균 관중 1만9천여 명을 동원하는 오릭스에서 이대호의 인기는 대단하다. 오릭스 팬들 사이에서 이대호의 한글 이름과 등번호 25번이 새겨진 유니폼, 캐리커처가 들어간 응원 수건, 머플러, 화보, 팬 북 등은 히트 상품이다.
이대호의 주가는 상한가를 쳤는데 팀 성적은 바닥을 쳤다. 오릭스는 퍼시픽 리그 최하위인 6위를 확정했다.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3년 계약을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오카다 감독은 이대호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보냈던 지도자다. 오카다 감독이 그나마 가장 잘한 일은 이대호를 데려와 4번 타자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오릭스는 최근 10년간 7명의 감독을 교체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대호도 물러난 오카다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현지 언론에 “오카다 감독 해임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내가 입단할 때 일부러 한국까지 왔는데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이 불안감을 가지고 플레이한다. 특히 젊은 선수들은 이런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선수인 이대호가 팀의 정신적인 기둥 역할도 하는 것이다.
이대호는 일본으로 건너갈 당시 “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차 목표는 달성했다. 내년엔 더욱 분발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내년엔 무조건 홈런 30개 이상을 때려 팀을 우승으로 이끌겠다. 24개, 25개로 홈런왕을 차지하는 것은 부끄럽다”고 말했다. ‘빅 보이’ 이대호의 화끈한 2013년을 기대해 본다.
글·성진혁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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