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국만화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만화가가 있다. 대체로 많은 이가 윤태호와 강풀을 꼽을 터다.
나도 그렇다. 이 두 작가를 보노라면, 만화가 주변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시대의 총아가 될 거라는 믿음을 준다. 물론, 외국에서는 이미 만화가 주류문화로 뿌리내렸지만, 유독 우리나라 독자들이 만화를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어 하는 말이다. 윤태호나 강풀은 선배세대와 달리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성공리에 적응한 만화가다. 컴퓨터로 만화를 그리고 인터넷에 연재하는 방식은 작가에게 끼친 영향이 만만치 않을 터다.
아무튼 윤태호나 강풀은 연재한 웹툰이 책으로 발간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찍는 선순환구조가 자리 잡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연재 당시부터 화제였던 윤태호의 <미생(未生)>이 책으로 나왔다. 영화가 되어 크게 성공한 <이끼> 다음 작품이라 독자들의 관심이 높았다. 윤태호의 만화를 볼라치면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기실 선배작가들이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은지라 인물그림을 보면 현실감이 떨어졌다. 혹자는 만화가 사실화가 아닌 마당에, 그러니까 만화 특유의 과장이나 생략을 인정한다면 굳이 엄격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국만화를 보면 미국사람인 듯이 느끼듯 한국만화가가 그린 사람이라면 한국사람 같아야 한다. 일본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얼굴을 그려놓고 한국만화라 할 수는 없는 터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자가 만화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그린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윤태호는, 내가 보건대, 가장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다. 아마도 훌륭한 선배작가들 밑에서 배운 이력 덕으로 보이는데, 표정이나 움직임이 또래 어느 작가보다 자연스럽다.
한 컷에 들어가 있을 그의 공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화가 그림만 좋아서는 안 된다. 어떤 면에서 그림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미있으면 독자들은 환호한다. 만화가가 그림쟁이이면서 이야기꾼이어야 하는 이유다.
이미 <이끼>에서 확인되었듯 윤태호는 이야기꾼으로서도 출중하다. 이번에 나온 미생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제목이 일단 어렵다. 책 표지에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라는 풀이가 달려 있으나, 모호하다. 본디 바둑용어란다. 바둑에서는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完生)’이라 한단다. 이 두 집을 만들기 전을 일러 ‘미생’이라 한다. 그러니까 죽음이나 삶이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은 돌을 가리킨다. 죽거나 살거나!

바둑용어가 제목으로 쓰인 데서 눈치챌 수 있듯 미생은 바둑 이야기가 중요한 모티브다. 그렇다고 바둑만화라 여기면 안 된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승리를 낚아채는 바둑의 과정이 인생사와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더욱이 주인공 장그래는 한국기원 연구생이지만 입단에는 실패한다. 그뒤 원인터내셔널이라는 무역상사에 낙하산(?)으로 취직한 장그래가 부닥치는 중요한 순간마다 바둑과 관련된 용어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둑을 아는 사람이 보면 이야기 전개과정을 예상하며 읽는 즐거움이 있을 터이고,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인생사가 ‘두뼘 반’ 반상 위에 펼쳐지는 일대 드라마라는 느낌이 들 듯싶다.
이 만화는 두 갈래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인턴 장그래가 어려운 관문을 뚫고 정규직이 되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장그래가 본 샐러리맨들의 세상이다. 만화에 나오는 장그래는 눈이 게슴츠레하다. 그야말로 미생이다. 예감하건대, 어느 순간, 장그래의 눈빛이 살아날 듯하다. 그때는 아마도 장그래가 정규직이 되어 온갖 애환을 겪어내며 일을 성사시켜 나갈 때일 성싶다.
<이끼>가 영화가 되었다면 <미생>은 드라마가 될 듯하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다 등장인물들의 내면도 잘 그려냈다. 만화 곳곳에 작가가 현장을 누빈 숨결이 느껴진다. 그냥 재미로 보아도 되지만, 이제 막 세상에 도전해야 할 이들이 미리 읽어두면 두루 도움이 될 듯싶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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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