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감성여행 <그리움을 나누는 남해의 낭만>

1

 

그리움을 나누는 남해의 낭만
남해에 발을 들여놓는 여행자들은 순간 시인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남해대교 또는 사천대교를 지나며 만나는 쪽빛의 바다는 남해의 문학가들을 길러낸 자양분이다. 시시때때로, 바람 따라 구름 흘러가는 대로 그 빛을 달리하며, 보는 이의 가슴을 온통 뒤흔들어놓는 그 바다 앞에서 누구인들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느 11월의 오후에 온통 금칠을 해놓은 듯 빛나는 바다를 따라 물미해안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 길은 시인 고두현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는, 물건리에서 남쪽 미조항에 이르기까지의 15킬로미터의 해안도로이다.

5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남해 상주가 고향인 고두현의 시에는 그리움이 잔뜩 묻어난다.

시인은 언어의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어부라 했는데 그의 시 속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한 어부의 손놀림이 느껴졌다. 홍시 속살같이 붉은 노을 내려앉는 남해의 바다를 향해 구애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희게 빛나는 물미해안을 달린다.

낮은 파도에 멀미하는 노을을 볼 수 있을까. 물건리를 지나 은점마을과 대지포, 노구마을을 지나면 항도마을에 이른다. 해가 서쪽 바다로 잠기려는 순간 항도마을의 몽돌해변에 서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해는 그리 많은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 아쉬움은 오후부터 성급하게 떠올랐던 낮달과 마을 앞 작은 섬에서 켜놓은 노란색 카바이트 불빛이 검은 바다에 일렁이는 그림자로 위로받을 수 있다.

6

2
해변을 굴러다니는 파도의 와글와글한 울림에,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퍼지는 솔잎 냄새에 여행자의 마음은 요동친다. 풀어져 버린 마음을 추슬러 다시 길을 달린다. 뱀처럼 요동치는 물미해안도로의 끝은 미조항이다. 그 이름이 참 예쁘다. 겨울밤의 항구는 차갑지만 포근하고 적막하지만 활기차다. 골목골목 들어선 어촌 사람들의 비릿한 삶의 냄새를 맡으며 밤의 항구를 산책한다.

삼동면 지족마을을 찾아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태곳적부터 전해내려 왔다는 원시어업의 형태인 죽방렴이다. 창선면과 삼동면 사이의 바다를 일컫는 지족해협은 두 섬의 거리가 워낙 가까워 물살이 거센 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 이곳에 V자형의 참나무 말뚝을 박고 대나무로 그물을 엮어 물고기를 잡는 죽방렴이 발달했다. 죽방렴에서는 온갖 바닷것이 다 잡힌다고 했지만 그중 최고는 은빛 멸치다. 죽방렴에서 잡아 올린 멸치는 그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몸에 생채기가 없고 크기가 크며 맛도 좋다고 했다. 이곳에서 잡은 멸치는 1킬로그램에 20만~30만원을 호가하는 몸값을 자랑한다. 지족해협을 가로지르는 창선교 위에 섰다. 과연, 시퍼런 바닷물이 기세 좋게 흘렀고 열 개 남짓의 죽방렴이 우뚝우뚝 서 있다. V자 그물 끝에는 들어온 고기를 가두는 둥근 모양의 임통(불통)이 있는데 그 모양세가 마치 두 팔을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로봇 태권V’를 떠오르게 한다.

마을 사람들은 고기 잡는 철이 되면 하루에 두어 번 목선을 타고 들어가 뜰채로 건져 고기를 잡는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직접 작업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멸치잡이 구경을 놓쳤으니 맛이라도 봐야지 싶어 찾아간 곳이 읍내 ‘우리식당’이다.

7

3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뒤라 바닷바람이 꽤 차가웠다. 파란색 돌고래 무늬가 그려진 두꺼운 담요를 돌돌 만 채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올랐다. 크림색 커튼을 젖히자 말간 햇빛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국의 모양을 한 장식품들,

독일어 책들, 낡은 가죽 가방,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비단 쿠션과 방석들. 손때 묻은 가구들까지. 독특한 소품으로 가득한 이 방의 원래 주인은 독일인 스트라우스씨와 그의 한국인 아내 김우주씨 부부이다. 독일마을에 스며들어 하룻밤쯤 보내려 찾은 민박집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그 부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유리창을 열었더니 정갈한 정원 너머로 물건리의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때 창문으로 김우주씨의 얼굴이 불쑥 나타난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위층으로 올라오란다. 그러면서 남편인 스트라우스씨는 한국어를 잘 못한다며 양해를 구한다. 테이블에 둘러앉자 김우주씨가 녹색 초에 불을 붙인다. 식탁은 조금 전 정원에서 꺾어 온 붉은색 열매가 달린 백량금으로 장식돼 있었고 몇 가지 곡물 빵과 버터, 잼, 치즈와 햄 그리고 과일 등으로 차려져 있었다.

스트라우스씨는 손님의 찻잔에 향기로운 차를 따라주었다.

남해 물건리에 자리한 독일마을은, 1970년대 ‘조국 근대화의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건너갔던 한국의 간호사들 중에 독일인과 결혼해 20~30년 이상을 살다 한국에 돌아와 정착해 생겨난 마을이다. 독일마을은 마을 전체가 독일의 어느 시골마을을 뚝 떼 온듯 저마다 뾰족한 세모지붕과 다락을 가졌으며 유난히 정원을 가꾸는 데 애착을 가진 듯했다. 현재 독일마을에는 모두 35개의 주택이 지어졌는데 실제 거주하는 독일인 가정은 4가구 정도라고 한다.

독일마을 위쪽으로 가면 원예전문가 20여 명이 모여 각자의 집과 정원을 조성해 이룬 마을인 원예예술촌이 있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정원과 흙을 밟고 살 수 있는 주택에서의 삶을 꿈꾼다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독일마을에서 물건리의 바다를 내려다보면 마치 보송보송한 양털구름떼가 흘러가는 듯한 숲이 보인다. 물건 방조어부림(防潮漁付林)은 지금으로부터 3백70여 년 전 바닷바람과 해일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인공 숲이다. 멀리서 보면 해안을 따라 활처럼 휜 모양으로 조성돼 있는데 그 길이만도 1.5킬로미터, 폭은 30미터에 이르는 규모다. 이 숲에는 1만여 그루의 잘 자란 나무들이 서식하는데 위층에는 팽나무, 푸조나무, 상수리나무, 참느릅나무 등의 키큰 나무가, 아래층에는 보리수, 동백, 광대싸리 등의 키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8

4
19세기 말 이 숲의 나무를 일부 베어낸 다음 폭풍이 닥쳐 마을에 큰 피해가 난 뒤에는 숲을 잘 보존하려는 노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숲 속을 걷다 보면 대단한 기운을 가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커다란 이팝나무가 보이는데 바로 이 나무가 마을사람들이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제사를 올리는 당산목이다.

남해 사람들이 아끼는 숲이 또 하나 있다. 삼동면 봉화리 내산마을에 위치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치유의 숲’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남해의 푸른 바다가 키워낸 울창한 편백나무숲은 1년 내내 상쾌한 초록빛을 띤 채 숲을 찾는 이들에게 포근한 곁을 내어준다.

울창한 숲과 어우러진 나무로 지은 숲 속의 집은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하룻밤 묵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떼도, 목도, 콩섬, 소치도 등 남해가 품은 작은 섬의 이름을 단 통나무집을 지나면 전망대까지 가는 1킬로미터 남짓의 등산로와 산책로가 있고 북쪽으로는 임도를 따라 난 산림체험코스와 원시림처럼 빽빽이 들어찬 편백나무숲이 조성돼 있다.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9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