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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별나고 질기게 이어온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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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별난 민족이다. 일 년에 두 차례, 설날과 추석. 최소한 한반도 남쪽 사람 대부분은 가슴 설레고 따스한 홍역을 치른다. 이른바 귀향과 귀경, 혹은 양쪽 모두 회가(回家)라 할 수 있는 민족의 대이동을 불과 며칠 사이에 치른다.

얼마나 오래된 전통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이미 기원전 시대의 고구려, 부여 등에 각각 동맹(東盟), 영고(迎鼓)의 추수감사절 제천의식이 있었으니 일단 2천년은 넘은 셈이다. 물론 그때는 대부분의 가족이 이웃해 살았으니 따로 귀경할 필요는 없었을 테고, 오히려 가족을 넘은 공동체의 축제로 즐겼을 것이다. 추석이 그런 공동체의 축제와 더불어 가족 단위의 조상을 숭모하는 ‘차례’라는 특별한 예식으로 승화된 것은 조선조에 들어와 유학이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인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거나 유학은 중국의 대사상가 공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중국의 추석은 어떤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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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추석은 일반적으로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로 칭해진다. 춘하추동의 사계 중에 가을의 가운데 달(月)이라는 뜻이니 어떤 ‘중’자를 쓰든지 크게 문제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중국의 중추절에 우리의 ‘차례’와 같은 의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제천의 기록은 있다. <주례(周禮)>에 ‘중추’라는 말이 나오고, 제왕들은 달에 제사를 지냈다.

재미있는 것은 달에 지낸 제사가 항아(嫦娥)에게 올리는 제사였다는 것이다. 항아는 하늘에 한꺼번에 10개의 태양이 떠오르자 활을 쏴 9개를 떨어트린 신궁 후예(後裔)의 아내로 빼어난 미녀였다.

후예는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에게서 승천하여 신선이 되는 약을 얻어다 놓았는데, 어느 날 도둑이 들자 항아가 엉겁결에 그걸 먹고 하늘로 오르다가 사랑하는 남편을 생각해 가장 가까운 달로 가 머물게 되었다. 사실을 알게 된 후예는 매년 중추가 되면 그 아내를 기려 달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것이 기원이라는 이야기다.

8월의 만월에 달의 여인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니 굳이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인류를 구한 후예도 아닌 항아를 위한 제사는 좀 생뚱맞은 구석이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도 있다. 중국 중추절의 상징인 월병(月餠)에 관한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월병은 몽골족이 중국을 지배했던 원(元)나라 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민족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대규모 봉기를 도모했던 주원장(朱元璋)의 부하 유백온(劉伯溫)은 몽골군의 감시를 피하고자 그 날짜와 장소를 적은 쪽지를 음력 8월 15일 월병 속에 넣어 돌렸다. 마침내 봉기가 성공하고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매년 중추절,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월병을 돌려 공을 치하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설(說)은 월병은 당나라 때 나온 음식으로 달과 항아와 관련되었다는 이야기다. 즉, 연중 가장 아름다운 달이 뜨는 중추절에 그 달과 같은 모양의 병(餠)을 빚고, 속에는 항아의 얼굴처럼 동그란 계란을 넣어 그녀처럼 아름다워지기를 기원한다는. 삐딱하게 봐서가 아니라 작위적인 앞의 이야기보다는 후자가 훨씬 중국답다는 생각이 든다.

음과 양 중에서 음은 여성이고, 달도 음의 대표적인 상징이니. 또한 유학의 등장 이후 주로 역사의 이면에서만 등장하게 되는 여성사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미모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늘날 중국에서도 대이동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 유명한 춘절(春節) 대이동이다. 또 중추절을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다’는 의미의 ‘단원절(團圓節)’로 칭하기도 하니 가족적 의미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행해지는 ‘의례’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특히 남방지역에 가면 집집이 작은 제단(祭壇)을 설치해 두고 명절은 물론 상시 향을 피우며 ‘복을 빌지만’, 때에 맞춰 모든 가족이 모여 차례를 드리며 숭모하는 사례는 들어 본 바 없다. 결코 문화대혁명으로 전통문화가 파괴되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닌 듯싶다.

가족지향 사고의 본질은 동서가 다르지 않은 핏줄과 고향에 대한 회귀본능이다. 그래서 누구나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면 푸근한 마음으로 먹고 놀고 쉰다. 중국의 춘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넓은 대륙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우리처럼 며칠 만에 뚝딱 해치우기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저 먹고 놀고 쉬기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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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또는 ‘의무’라고 말하면 몰매 맞을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차례’라는 특별한 의례가 전제된다. 누구처럼 ‘복을 빌기 위한’ 것도 아닌데 그 만만찮은 대이동의 고역을 기꺼이 감내하는 ‘숭모’의 마음은 참으로 특별하고 고귀하다. 어쩌면 동아시아 모퉁이에서 그처럼 질기도록 정체성을 지키며 당당하게 살아온 밑바탕은 다름 아닌 ‘숭모’의 ‘의례’로 뭉쳐진 ‘참 별나고’ ‘질긴’ 근성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새삼 조상님들께 감사드릴 일이니 사소하게 불거지는 불만으로 서로 낯 붉히는 일은 삼갈지어다.

아, 이참에 우리만의 특별한 명절 ‘차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글·김정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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