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때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전자산업이 몰락의 길로 치닫는 이유는 ‘혁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인재가 많아도 대기업에서 혁신을 이뤄 내기란 어렵다. 아래로부터 오는 아이디어는 관료적인 조직문화에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픈 이노베이션’, 기업 외부에서 혁신적 기술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제조건이 있다. 기업 외부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그만한 여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키우고 현실화할 창업 기회가 적다. 놀라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해도 성공 확률은 손에 꼽을 정도고, 그마저도 창업자의 의지가 굳건하지 않은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가장 많은 실패 원인은 돈 문제다. 지금은 온라인 네트워크 비즈니스로 성공한 한 청년 창업가는 한때 신용불량자가 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수익을 전혀 내지 못했다. 웹사이트 가입자가 최소 1백만은 돼야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 상당히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이 수십만 명에 그쳤던 것이다.
직원들 월급조차 주지 못할 상황에 이르자 회사는 문을 닫았다. 그 창업가는 빚더미에 앉게 됐고 탈출구마저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스스로 가능성을 믿고 여러 방도를 모색했다.
벤처포럼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실패했지만 소중했던 경험에서 얻어 낸 노하우를 얘기하며 다음 사업 계획을 풀어 놓았다. 다만 돈이 없을 뿐 가능성을 믿고 고벤처포럼에서는 이 창업가에게 보증 없이 투자하기로 했다. 지금 이 회사를 따라 비슷한 회사들이 많이 생겨날 정도로 성공했다.
경제적인 곤란 때문에 겪는 실패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실패 경험에서 좌절하지 않는 창업가의 태도다. 위에서 말한 창업가의 경우도 늘 하는 얘기가 “오히려 실패했기 때문에 지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사업에서는 무료로 웹사이트 규모를 늘리는 데만 신경 썼는데, 두번째 사업에서는 처음부터 유료 전략을 고수했다.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할 때는 언제 수익이 날지 모르는 규모 키우기에 신경쓰지 말고, 아이디어를 믿고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을 짜내야 한다.
또 경제적 실패가 재기의 가능성을 막아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사업 실패로 인해 빚을 지게 된 사람이 회생할 방법이 적다. 대개는 신용불량자가 돼 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하고 제2, 3금융권을 떠돌다 빚 규모만 키운다. 그러니 창업을 하려 해도 지레 겁을 먹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엔젤투자자가 3만명을 돼야 한다. 엔젤투자자란 개인이 창업하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여럿의 돈이 모여 기업을 이끌어 갈 투자금을 마련하는 일이다.
미국의 엔젤투자자는 30만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사업과 인구 규모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3만명의 투자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국내 실정은 겨우 몇백 명쯤 될 것으로 추산된다. 엔젤투자는 보증과 상환능력을 엄격하게 따지는 금융권과 달리 가능성을 먼저 보는 개인 투자이기 때문에 자금 융통이 어려운 유망한 창업가에게 유리한데, 이런 경제적 뒷받침이 없어 고생하는 창업가가 많다.
리더십이 부족해 실패하는 창업가들도 있다. 기업은 사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원을 모으고 더불어 잘 조직하고 거둔 수익을 나눠줄 줄 알아야 하는데, 이런 일에 능숙할 순 없어도 생각조차 않는 창업가들이 있다. 때로는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생산 방법이나 마케팅 방법, 인사관리 등을 전혀 생각해 두지 않은 창업가도 있다.
이런 경우는 순전히 우리나라의 창업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 이유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어릴 때부터 창업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디즈니사와 카우프만재단에서는 ‘Hot Shot Business’라는 온라인 게임사이트를 운영하는데, 학생들이 직접 가상공간에서 창업하고 기업가 정신을 교육받을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대학생들이 전공에 관계없이 창업 노하우와 기업가 정신을 배우는 ‘카우프만 캠퍼스’도 있다. 이런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단순히 창업이 돈을 버는 과정만이 아니라 리더십을 가지고 조직을 이끈다는 것, 사회에 공헌하는 가치를 창출해 낸다는 것 등을 배우게 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대개 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르는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커리큘럼으로 짜여 있다. 가장 영리한 학생은 의사나 판검사가 되고, 대기업에 취직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이 많고, 설사 패기 좋게 창업해도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앞서 일본의 예를 들었지만, 계속 혁신적인 기술과 지식이 창출되는 사회만이 발전할 수 있다. 훌륭한 개인들이 기술을 만들어 내고 대기업이 이를 높은 가치로 받아들여 판매처를 마련하고, 여기에 자극받은 젊은이들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나라가 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일본일까 미국일까를 생각해 보면 무엇이 필요한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창업가들의 아이디어가 맘껏 펼쳐지는 사회를 만들려면 필요한 것은 ‘실패가 용인되는 사회’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사회, 실패를 거울 삼아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창업 노하우와 기업가 정신을 길러 주는 창업교육이 있어야 하고, 실패를 보완해 줄 수 있는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글·고영하 (고벤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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