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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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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상류에서는 강물을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강변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섬진강은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이다. 강물이 물비늘을 일으키며 반짝이는 곳에서는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리산을 품은 기운이 사람을 은근히 압도하는 곳. 계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묵화처럼, 뿌리 깊은 나무처럼 깊은 흡입력을 갖고 마음을 끌어들이는 곳이 바로 섬진강 상류다.

진안 데미셈에서 시작한 강물은 진안 마령에서 물길을 바꿔 임실군 관촌면으로 흘러든다. 관촌면에는 섬진강이 만들어준 사선대 유원지가 유명하다. 사선대를 지나 운암면으로 들어서 순창군 강진면에서 물이 모이면서 호수를 만든다. 섬진강댐으로 인해 물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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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산을 에돌아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를 지나온 섬진강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향인 장산(진메)마을로 이어진다. 이 마을에서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을 거쳐 순창 장군목에 이르는 물길은 5백리 섬진강 중에서도 가장 서정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강물이 맑아 바닥이 훤히 비출 정도로 깨끗하다. 강물 따라 이어지는 강변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들판은 악양들판이고, 가장 포근한 마을은 장산마을이다. 마을 한켠 툇마루에 앉아 강물에 귀를 씻을 수 있는 장산마을 초입에는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어머니와 아들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김용택 시인은 <꿈꾸는 섬진강>에서 임실 한자락을 흘러 천담과 구담을 거쳐 장군목으로 모이는 물길을 가장 아름다운 물굽이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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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증명하듯 영화 <아름다운 시절>과 <춘향전>이 이 일대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이광모 감독이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이인, 안성기, 배유정 등 배우들이 출연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친구와 몰래 만나 작전을 꾸미던 곳. 커다란 미루나무 아래 계곡이 내려다보이던 곳. 미군의 빨래를 맡아와 강에 담그는 엄마 옆으로 물장구치는 아이가 있던 곳은 개울이 걸린 돌담마을, 구담마을에서 촬영되었다.

원래 구담마을은 오지 중 오지였다. 지금도 구담마을에는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인근 천담마을까지만 지나간다. 천담마을로 가려면 임실 덕치면에서 진입하는 게 가장 쉽다. 덕치면에서 회문산 자연휴양림 입구 맞은편 빨간 지붕 사이 시멘트 길로 들어서면 된다. 섬진강과 붙어사는 천담마을에서도 느티나무 앞 정자를 옆에 끼고 강 자락 따라 산길을 꼬불꼬불 돌아가면 구담마을을 만날 수 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섬진강이 점차 멀어지는데 길이 산중턱에 걸릴 무렵 내룡마을과 용골산의 그림 같은 자태가 펼쳐진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내려가면 다시 섬진강이 나온다. 10여 세대, 20명 남짓 주민이 사는 구담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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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마을회관이 있다. 뒤쪽 커다란 느티나무 쪽으로 오솔길을 따라가면 언덕 위에 공터가 나오고 영화촬영지라는 기념비도 서 있다. 아래로는 섬진강 물줄기가 영화에서 처럼 굽이치며 흐른다. 마을회관 앞으로 되나와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을 걸어보자. 갈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제법 널찍한 강변이 등장한다. 강 이쪽과 저쪽을 건너 정취가 한껏 묻어나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정겨움이 살아 있다.

숱한 시절 마을을 이어온 내력만큼 징검다리는 튼튼하다. 섬진강이 다 쓸려가도 버틸 만큼 넓은 너럭바위로 만들어졌다. 지게 가득 나무를 진 농부 둘이 바위 위에서 만나 환담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징검다리 아래에는 맑은 물이 얕게 흐르는데 여름이면 물장구치기에도 좋다. 봄이면 강을 따라 매화도 흐드러지게 피기 때문에 정취를 더한다.

강변에서 올라와 구담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족히 수백 년은 산 듯한 느티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이 있다. 느티나무 숲 앞에는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언덕에 서서 섬진강이 휘돌아가는 회룡마을을 바라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장군목의 자연경관이 알려진 뒤부터는 여름철만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는 유명한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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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담마을 앞 천담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 작은 다리를 지나면 석전마을 표지석이 나타난다. 다시 우회전하여 언덕길을 오르면 시멘트 길이 이어지는데 계속 길을 따라가면 강을 만난다. 싸릿재 석전마을이다. 구담마을 바로 건너편이지만, 두 마을 사이 강물이 얕아 걸어 건너다닐 수도 있다. 한적한 산촌마을에 제법 너른 밭이 펼쳐진다. 마을을 뒤로 하고 좁은 길로 1킬로미터 정도 더 내려가면 장군목이 나온다. 요강바위로 유명한 곳이다. 강폭이 상당히 넓고 물은 얕아 번잡하지 않게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다. 강 앞에는 식당을 겸한 큰 민박집이 두 채 있고 위쪽으로 마을이 펼쳐진다.

장군목은 순창군 동계면 내룡마을 앞 강줄기를 일컫는 것이다.

강 자락과 강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곳이다. 장군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묘하게 움푹 팬 바위들이다. 진짜 요강처럼 생긴 요강바위를 비롯해 천태만상,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강줄기를 따라 3킬로미터 정도 늘어서 있다. 하나같이 일부러 조각해놓은 것처럼 섬세하고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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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2미터, 폭 3미터에 무게가 무려 15톤이나 된다는 요강바위는 어른 2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깊이 팬 모양이다. 이 바위는 한때 진귀한 모양새로 도난당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제자리로 돌아온 뒤로는 마을에 안녕을 가져다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장군목 주변의 강변과 마을 풍경은 마치 시간을 30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강바람에 하늘거리는 미루나무가 있고, 물길도 되고 사람 길도 되는 섬진강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장군목을 지나는 섬진강은 강폭이 넓고 수심도 비교적 얕은 편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텐트를 치고 천렵이나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다. 처음 찾은 사람도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처럼 아늑하고 정겨운 풍경, 섬진강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글과 사진·유철상(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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