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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냉면, 거부할 수 없는 차가운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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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냉면의 계절이다. 점심때가 되면 시내의 유명 냉면집 앞에 손님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금은 냉면이 더위를 식혀주는 음식이지만 옛날에는 겨울음식이었다. 1849년에 나온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얹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면서 동짓달의 절기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냉면을 먹는 것이 제격이긴 하지만 냉장고가 없고 얼음이 귀하던 옛날에는 일반가정에서 차가운 음식을 해먹을 여건이 안 되었기 때문에 겨울음식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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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이 요즈음에는 사철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현실도 그런 추론에 힘을 보태준다. 냉면의 요리법은 19세기에 들어서서야 문헌에 나타나지만 그 흔적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발견된다.

고려충절 삼은(三隱)의 한사람으로 유명한 이색의 ‘어느 여름날에(夏日卽事)’라는 시에 냉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명칭은 중국식 냉면인 냉도(冷淘)이다.

지금 쓰는 냉면이라는 명칭은 조선 중기의 문신, 장유(張維)의 ‘자줏빛 육수의 냉면(紫漿冷麵)’이라는 오언율시에 얼굴을 내민다. 그는 “자줏빛 육수는 노을빛처럼 영롱하게 비치고, 옥색가루는 눈꽃처럼 흩어지누나. 한 젓가락 먹어보니 향이 입속에 살아나고, 차가운 기운이 몸으로 파고들어 옷을 겹쳐 입는다”라고 냉면 먹은 감상을 멋들어지게 노래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줏빛 육수는 오미자 국물을 지칭하는 듯하다. <음식디미방>이나 <주방문>, <규합총서> 같은 옛 요리책에는 오미잣국을 국수 마는 국물로 쓰는 경우가 흔히 나온다. 자줏빛 오미잣국에 만 냉면은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조선후기의 문헌들은 김칫국을 냉면 마는 국물로 빈번히 소개하고 있다. 1896년에 나온 <규곤요람>은 냉면요리법을 “싱거운 무김칫국에다 꿀을 타서 국수를 만다”고 전하고 있고 비슷한 시기의 <시의전서> 역시 “청신한 나박김치나 동치미 국물을 꿀에 타서 말아먹는다”고 했다. 옛 사람들은 냉면을 달게 해서 먹었던 모양인데 이는 오늘날 흔히 먹는 고기육수와는 사뭇 다르다.

<시의전서>는 고기장국을 차게 식혀서 육수로 쓰는 ‘장국냉면’을 따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이 지금 서울에서 먹는 냉면에 더 가깝다. 고명도 예전에는 김치와 돼지고기나 양지머리, 얇게 저민 배, 복숭아, 유자에 잣과 밤까지 다양하게 얹었던 모양인데 이것도 지금의 단출한 냉면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냉면은 궁의 잔칫상에도 올랐던 모양이다. 1848년과 1873년의 <진찬의궤>에 냉면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재료를 “목면(木麵) 30사리, 김치 5기(器), 돼지다리 3분(分) 1부(部), 배 3개(個), 잣 5작(勺), 고춧가루 1홉(合)”이라 했다. 미식가로 알려진 고종황제도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 편육과 배, 잣을 얹어서 즐겼다고 한다.

여러 해 전 본고장 평양에 가서 그곳의 유명하다는 냉면을 두루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면은 메밀 함량이 적어서 실망스러웠지만, 육수는 동치미 국물을 많이 쓰는 데다 웃기도 다양해서 서울의 냉면보다 옛날식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냉면도 세월과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한다. 서울의 냉면 전통명가로는 우래옥과 평양면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등을 꼽을 수 있고, 신흥명가로 봉피양이 이름을 얻고 있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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