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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잊혀진 ‘길안만세운동’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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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태어나 자랐는데도 안동에서 독립운동이 크게 일어났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 역사를 공부하던 사람이 안동에 와서 비로소 안동 지역이 한국 독립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인 김희곤 안동대 교수의 말이다.

김희곤 교수처럼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수십 년 동안 힘을 모아 독립운동기념관을 만들고, 증언과 증거를 모아 조상의 서훈을 추천하고, 후손들의 명예를 회복하려 애쓴 덕분에 잊혀진 안동 지역의 독립운동이 다시 빛을 보고 있다. 사업가 김시명(61)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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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명씨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몇 번이나 진학을 포기하려 했다. 다행히 장학금을 받아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왜 우리 집이 가난해졌는지 알아보는 일”이었다. 김시명씨의 증조부가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셔서 할머니, 어머니가 집안살림을 꾸리느라 어려웠다는 얘기를 떠올린 덕분이었다. 김시명씨는 “처음에는 그저 증조부가 어떤 분이었는지 자손으로서 궁금해 증거와 증언을 찾아나갔다”고 말했다.

김시명씨의 증조부 김필락은 안동시 길안면에서 사람들을 모아 1919년 3월 20일, ‘길안만세운동’을 일으킨 사람이었다. 고모의 조카 손두원과 함께 사촌 김재락, 먼 친척 김정연 등 10여 명의 행동대원과 4백명의 군중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주모했다.

그러나 주동자를 찾던 일본 순사에 의해 3월 24일 손두원이 숨진 후, 김필락 역시 3월 26일 총살됐다. 수십 명이 구속돼 마을이 쑥대밭이 돼버린 사건이지만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채 70년 넘게 묻혀있던 사건이었다.

김시명씨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갖가지 고문서를 읽고 주민들의 증언을 녹취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1965년에 발간된 <한국독립사>라는 책에서 “김필락이 길안에서 만세시위를 하다 왜병에게 체포되어 주동자로 총살되었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증조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처음엔 보훈처에서도 점차 김시명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국 1991년 김필락에게 독립훈장 애국장이 수여되면서 김시명씨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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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의 독립훈장을 받는 자리에서 김시명씨는 “비로소 우리나라가 ‘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할아버지의 공적이 인정되자 역사와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잊big2그때부터 김시명씨는 증조부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사람들과 후손들의 명예를 찾아주려 애썼다. 주모자였지만 환난 중에 만세운동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던 손두원의 활동 증거를 찾아 헤맸다. 증조부의 제문에서 “양촌 손형이 먼저 화를 당했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증언을 수집한 덕분에 손두원 역시 2010년 독립훈장 애국장을 받을 수 있었다. 중국 만주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손두원의 자손들이 그 덕분에 국적을 회복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최근 김시명씨는 길안만세운동뿐 아니라 증조부와 함께 독립을 꿈꿨던 지역 독립운동 계보를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침 안동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해 개관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있어 역사적 공백이 점차 메워지는 중이다. 김시명씨는 “안동 내앞(川前)마을 협동학교 출신 대부분이 독립운동에 힘썼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찾아보니 증조부와도 깊은 관계가 있었다”며 “협동학교 출신으로 만주에 갔다가 광복 후 일본 밀정 출신에 살해당한 김병윤 등의 서훈도 추진 중이다”고 밝혔다.

김희곤 교수는 이런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는 잊혀진 사람과 기록이 너무 많다”며 “이제는 우리도 역사적,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겨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시명씨가 주목했던 내앞마을의 경우, 재산을 팔고 만주로 이주해 독립군으로 투신해버리거나 의병을 일으켰다가 목숨을 잃는 바람에 남아 있는 자손들이 조상의 공적을 미처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안동 지역 독립운동이 활발했다는 증거로 일제강점기 자진 순국자 70명 중 10명이 안동 사람이었다는 것, 독립훈장을 받은 인물이 단일 지역으로 가장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들어 지역 독립운동사를 발굴하고 재평가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글·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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