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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감성여행 <전북 임실 장마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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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 길을 나섰다면 뒤척이는 강물을 나직하게 바라보라. 강물이 뒤집힐 때 무채색의 풍경이 뒤섞인다. 인생도 강물처럼 뒤척이며 몸을 섞는 일을 반복한다. 문득 책장을 넘기다 발견하는 흑백사진처럼 오래된 감흥을 일으키는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장마철 여행이 제격이다. 다시 몇십 년 되새길 추억을 만들러 휘적휘적 비오는 날의 풍경 속으로 떠난다.

푸른 산이 강물에 발을 적신다. 그림자 드리운 산처럼, 고요한 수묵화처럼 깊은 흡인력으로 마음을 끌어들이는 곳이 바로 임실 옥정호다. 더러 비오는 날 여행을 꺼리기도 하지만, 비오는 날 옥정호 언저리를 돌며 풍경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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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우비가 첨벙첨벙 물을 튀기며 지나가는 모습, 스멀스멀 비안개가 섞여 빚어 내는 자연의 풍경을 마주하다 보면 아련한 향수마저 떠오른다. 호수가 거대한 바다처럼 살아 꿈틀대는 옥정호를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홀연 비오는 날의 망부석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시작한 강물은 진안 마령에서 물길을 바꿔 임실군 관촌면으로 흘러든다. 관촌면에는 섬진강이 만들어 준 사선대 유원지가 유명하다. 물줄기는 사선대를 지나 운암면을 거쳐 순창군 강진면에 모인다. 섬진강댐이 물길을 막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인 물줄기가 옥정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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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 깊숙이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옥정호는 다양한 풍경을 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반을 따라 수많은 산자락이 그림자를 드리운 길도 여러 곳이다. 그중 최고로 치는 길은 운암대교에서 운암면 방면 6km 정도의 호반길. 이 길은 최근에 도로 포장이 되고 잘 알려지지 않아 더 운치 있다.

호반길은 운암대교에서 시작해 호수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산과 옥정호가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경치에 취했는지 앞서 가는 자동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곳곳에서 “근사하다”는 감탄이 흘러 나온다. 잠시 차를 세운 여행객도 “이런 곳이 다 있냐”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자연이 보여주는 풍광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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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길을 따라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운암대교. 가파른 벼랑을 깎아 만든 국사봉 전망대에 서면 옥정호가 품은 풍경의 백미를 눈에 넣을 수 있다. 멈춰선 사람들 손마다에 카메라가 들려 있다.

눈으로만 담고 가기엔 아까운 풍경이다. 국사봉으로 오르는 산자락에는 떡갈나무, 갈참나무, 단풍나무 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호수 가운데에는 댐이 만들어지며 형성된 두 개의 섬이 그림처럼 떠 있다. 하나는 작고, 다른 하나는 제법 큰 섬이다. 아직도 이 섬에는 사람이 산다. 수몰된 고향을 버리지 않고 고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비오는 날에 더 운치 있고,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는 옥정호에는 전망 좋은 포인트가 많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곳은 국사봉 정상에 오르는 길 중간쯤에 있는 나무의자와 호반길 옆에 자리한 2층 정자다. 운암대교에서 바라보는 옥정호의 풍경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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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암분교 앞, 섬진강댐 주변의 산내면 황토리도 우중 산책을 즐기기에 적격이다. 산 위에 만들어진 호수가 대부분 그렇듯 옥정호 또한 아침마다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 안개 낀 옥정호반의 풍경은 환상적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옥정호 풍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발이 묶여 있은 탓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국사봉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옥정호반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운암대교 주변 모텔에서 숙박을 한 뒤 새벽에 일어나 국사봉 전망대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해가 뜨기 전 오묘한 풍경의 변화를 놓친다면 옥정호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을 먹은 것처럼 허무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오전 내내 묵직하게 풍경을 즐기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옥정호를 나서서 어디로 갈까. 참살이(웰빙) 열풍을 타고 주가가 올라가는 임실치즈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임실 느티마을에서는 치즈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생각보다 좁은 창고처럼 생긴 커다란 건물이 체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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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단위로 온 사람이 많다. 부모와 함께 참여한 아이들이 말똥말똥한 눈망울로 강사의 이야기를 신기한 듯 듣고 있다. 치즈와 우유, 발효유 제조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치즈 만들기가 시작됐다. 모짜렐라 치즈 만들기다.

“처음 만들어 보죠?” 강사의 질문에 아이들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치즈가 담긴 양철통에 우유에서 나온 덩어리를 넣은 다음 섭씨 70도의 물을 붓고 15초간 기다렸다. “덩어리를 쭉쭉 늘려 보세요.” 강사 말에 따라 치즈를 만져 보니 껌처럼 쭉쭉 늘어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먹만한 치즈를 나눠 포장 용기에 넣는다. 꾹꾹 눌러 뒤집어 보니 꼭 두부처럼 생겼다. 직접 만든 치즈를 들고 체험장에 마련된 과일과 치즈를 시식하니 맛이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치즈 만들기가 끝나고 젖소가 있는 목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이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다. 배가 고팠는지 연신 우유를 들이켜는 송아지 덕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흥겹다. 너도나도 우유를 먹여 보겠노라며 손을 드는 통에 체험장이 일순 소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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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수묵화 같은 옥정호의 매력을 탐하고 임실치즈마을까지 돌아보자면 속이 꽉 찬 것처럼 뿌듯해진다.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흑백사진처럼 아련한 추억을 만드는 호반의 여명. 느린 발걸음을 옮기면 푸르고 짙은 옥정호반에 마음을 빼앗기기 충분하다.

치즈마을에서 전주 쪽으로 향한다면 사선대에도 들려보자. 사선대 입구에 양화다리가 있다. 긴 다리 아래로 넓게 흐르는 큰 강 주변에 식당과 민박집이 많다. 주차장 가까이에는 사선대의 백미라는 운서정이 작은 산벼랑 위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 닿으면 강을 등 뒤에 임실읍을 조망할 수 있다. 단청과 정자 건축기법이 특이한 건물이기 때문에 꼼꼼하게 둘러봐도 좋다.

글과 사진·유철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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