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 광진구 구의동 251-127번지. 다가구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에 깜빡하면 지나치기 쉬운 손바닥만한 간판이 하나 붙어 있다. ‘사랑의 보일러 교실’.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공장 같은 분위기가 펼쳐진다. 각종 보일러 부품, 용접기, 배관 등이 가득 쌓인 실습실과 15명 남짓 들어갈 법한 작은 교실이 나타난다.
기름때 냄새와 땀냄새가 뒤섞인 사랑의 보일러 교실에서 30년 넘게 사람 냄새를 풍기고 있는 ‘보일러 명장(1998년 노동부 선정)’ 이영수(58)씨를 만났다.
이영수 명장이 보일러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23세 때인 1977년.
그 이전의 그는 엉뚱하게도 음악다방 DJ였다. “신촌이나 건국대, 한양대 등 대학가에서 활동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기가 정말 대단했어요. 제 밑으로 보조 DJ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음악에 빠져 지내던 그의 인생이 ‘보일러’로 급반전하게 된 계기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였다. 어느날 버스정류장에서 한 아가씨를 보고 한눈에 반한 그는 무작정 뒤를 따라가 그녀가 다니던 회사를 파악했다. 그러고는 회사로 쳐들어가 ‘작업’을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당시 내걸었던 조건이 직업을 바꾸라는 것. 음악을 하면 여자가 많이 따를 수 있으니 다른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거참,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그래서 뭘 할까 고민하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하루는 청계천 골목 안에서 뭐가 번쩍번쩍하는 거예요. ‘저게 뭐지’ 싶어 다가갔죠. 가서 봤더니 그게 보일러였어요. 그렇게 보일러하고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이씨는 그렇게 ‘명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보일러는 부잣집에만 있는 비싼 물건이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그게 신기하게만 느껴졌고 자주 구경을 가다 보니 “잘 배워 두면 앞으로 좋다”며 기술자들이 배우기를 권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이게 대한민국 집집마다 빠짐없이 들어갈 거라고, 그러니까 배워 두면 돈벌이가 잘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 그래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허허.” 그렇게 일을 익힌 이 명장은 당시 갖고 있던 음반 1천여 장을 팔아 사업 밑천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어린 사장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명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봉사였다. “공짜로 보일러를 봐 주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에겐 그냥 고쳐주기도 하고 그랬죠. 그러니까 점점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되고, 저는 보일러를 고쳐 주면서 보일러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렇게 된 거예요.”


이 명장의 무료봉사가 알려지면서 사업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이 명장은 보일러만을 연구하고 보일러 기술을 주변에 나눠 주며 살아왔다. 그리고 1998년, ‘보일러’를 시작한 지 21년 만에 그는 당시 노동부로부터 국내 유일의 ‘보일러 취급 명장(수리 설치 부문)’ 칭호를 받게 된다.
상금으로 1천만원을 받은 그는 같은 해 서울시에서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시민상’을 함께 받으며 도합 1천1백만원의 목돈을 포상으로 손에 쥐었다. 이 명장은 가족과 의논해 이 돈을 더 의미 있게 쓰기로 결정했다.
“제가 어렸을 때 공부를 별로 안 했어요. 그때마다 어머니가 ‘배워서 남 주냐, 공부 좀 해라’ 그러시는 거예요. 하도 그런 얘기를 들어서 ‘좋다, 난 배워서 남 주자’ 이렇게 결심을 했죠. 제가 배운 거는 보일러잖습니까. 그러니 이제 그 기술을 남에게 나눠 주자, 이렇게 마음을 먹은 거죠.”
그해 1기생을 모집해 문을 연 ‘사랑의 보일러 교실’은 어느덧 27기에 이르렀다. 전체 졸업생 수만 5백명을 넘어섰고, 그중 취업을 했거나 개인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2백50여명이다. 개인 차는 있지만 취업을 한 경우엔 연평균 2천만~2천4백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경제난으로 바닥에 떨어졌던 사람들이 기술을 배워 스스로 일어서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공짜로 해 주지는 않았어요. 학생들은 입학금으로 쌀 10킬로그램, 그리고 수업료로 하루 9백원을 내고, 사회봉사 50시간을 채워야 합니다. 공짜로 해 줄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교육 효과’가 떨어져요. 그래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수업을 듣게 했습니다.”
이후 13년이 지났지만 수업료는 아직도 하루 9백원 그대로다. 사회봉사 50시간은 이 명장과 함께 어려운 집을 찾아가 보일러를 수리해 주는 일로 채운다. 말 그대로 현장실습이자 인턴교육이다. “보세요. 쌀이 많잖아요. 저게 다 수업료예요.” 껄껄 웃는 이 명장의 등 뒤로 10킬로그램들이 쌀 포대 5~6개가 쌓여 있었다.
이 ‘학교’는 6개월에 한 번씩 입학식과 졸업식을 진행한다. 그런데 이 두 행사가 같은 날 치러진다. 입학생들이 졸업생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얘기를 직접 듣고 동기를 부여받게 하기 위해서다.

매 학기 입학생은 12~16명 남짓.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곳에 찾아와 지원서를 쓰고 면담을 하면 된다. 가족이 많거나 집안이 어려운 사람에겐 우선적으로 기회를 준다. 요즘은 경기가 어려워져서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한다. 이씨는 수업을 듣기 위해 서울뿐 아니라 천안, 부천, 심지어 제주도에서 오겠다는 사람까지 생겼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하나 있었어요. 소위 문제아였죠. 그런데 여기서 보일러를 배우면서 아이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어엿한 보일러 기술자가 돼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2년 전에 결혼을 했는데, 아 글쎄 저한테 주례를 봐 달라고 왔어요. 허허.” 이씨는 “그때 정말 보람을 느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부부가 함께 보일러를 배운 경우도 있었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2기와 16기로 입학해 기술을 배워 지금은 금호동에서 함께 보일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명장은 “이들 부부는 매 학기 졸업식에 음식을 직접 만들어 와서 후배들을 축하해 준다”며 활짝 웃었다.
글·이범진 기자 / 사진·장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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