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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감성여행 <전주 한옥과 맛집골목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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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양사재에 짐을 풀었다. 이 도시에 오면 꼭 오래된 한옥 민박집에서 묵곤 한다. 버선코마냥 오뚝하고 날렵한 곡선을 가진 검은 기와지붕 아래 옛날식 따끈한 구들장이 있는 한옥집서 보내는 시간은 꽤나 운치 있다. 한옥마을에는 한옥생활체험관을 비롯해 승광재와 양사재, 학인당, 동락원, 소담원 등 10여 곳의 한옥 숙소가 있다. 한옥 숙소마다 다례 체험이나 판소리, 한지 만들기나 전통예절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니 아이들과 함께라면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이 좋겠다.

여러 한옥 체험 시설 중 양사재는 전주의 옛 향교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던 아담하고 정갈한 한옥 민박집으로 한때 시인 이병기 선생이 머무르며 다작한 곳이기도 하다. 어른 둘 누울 만한 손바닥만한 방에는 실상 별다른 시설이나 꾸밈이 없다. 청결함이 느껴지는 풀 먹인 이부자리 두 채와 벽에 걸린 옷걸이용 대나무 하나가 세간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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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향한 앞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나른한 볕 내리쬐는 소담한 뜰과 나지막한 돌담이 눈에 들어오고 뒷문을 열면 바람에 댕강이는 풍경 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와 마음을 간지럽힌다. 따뜻한 온돌에서의 숙면 후 맞는 산뜻한 아침은 부엌에서 내오는 아침상을 받으며 시작된다. 그리 대단할 것은 없으나 주인장의 소박한 손맛이 느껴지는 밥상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주말에는 하루 세 번, 평일에는 매일 오후 2시에 해설사와 함께 골목길을 걷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날 모인 여행자는 서울에서 왔다는 친구사이의 젊은 여자 둘과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운, 대전에서 여행 온 엄마 둘과 중년의 커플 등 모두 여섯 명이었다. 안내소에서 나눠준 뚜벅이지도 한 장을 손에 들고 그들 틈에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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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만나면 한 명은 비켜서야 지날 수 있는 좁고 긴 골목길을 걷는 일은 꽤나 흥미롭다. 올망졸망 늘어선 크고 작은 공방들을 들여다보고 전통한지원에 들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랑하는 전주한지의 생산과정을 엿보거나 몇몇 이름난 한옥의 내부를 슬쩍 들여다보고 알지 못했던 역사의 뒷이야기를 듣노라면 마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쌀쌀한 바람 속 골목을 걷다 반가운 마음에 들른 베테랑 칼국수집. 개다리소반을 흉내낸 조그만 2인용 탁자 앞에 자리를 잡고는 이 집의 전 메뉴, 칼국수와 쫄면 그리고 만두 한 접시를 몽땅 시켰다. 이 집 칼국수 맛은 여전했다. 1976년 개업 당시 칼국수 한 그릇에 1백원으로 출발한 값이 36년 새 50배인 5천원으로 올랐지만 인기는 여전한 듯 보인다.

국숫집에서 나와 다시 타박타박 골목길을 걷는데 확실히 카페가 많긴 하다. 커피 열풍과 맞물려 한옥마을의 카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때문에 한옥마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버텨 온 ‘교동다원’의 존재가 반갑다. 최근 폭풍 같은 인기를 얻고 있는 찻집은 남천교 방향 은행로 끝자락의 ‘외할머니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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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수한 이름의 찻집은 달달한 단팥죽과 옛날식 팥빙수 그리고 쌍화차 등의 몇 가지 몸에 좋은 차를 판다. 말쑥한 외관의 한옥을 개조해 정갈하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달콤한 옛날식 팥죽을 쑤어 준다는 설명만으로도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부드럽고 달콤하며 씹을 것도 없이 쏙 넘어가는 따끈따끈한 단팥죽과, 눈꽃처럼 폭신한 얼음을 갈아 넣고 잘 삶은 팥을 듬뿍 얹고는 숭덩숭덩 잘라낸 말랑말랑한 찰떡에 고소한 흑임자가루까지 뿌려낸 팥빙수를 번갈아 가며 먹느라 이가 뜨끔뜨끔했으나, 너무나 매력적인 그 맛에 홀딱 빠져 한동안 멈출 수가 없었다. 창밖으로 소복소복 눈이라도 내리면 더 좋겠다.

전주의 밤은 막걸리와 함께해야 한다. 전주에는 막걸리 골목이 여럿 있다. 가장 유명한 삼천동에는 서른 개가 넘는 막걸리집이 골목을 이룬다. 삼천2동 우체국 골목 양 옆으로 늘어선 막걸리집이 불야성이다. 삼천동과 이웃한 평화동에도 10여 개의 막걸리집이 있다. 모악산 아래쪽에 있어 산꾼들의 아지트다.

주막의 인심은 넉넉하다. 스무 집쯤 모여 있는 서신동 막걸리 골목은 기본 안주로 삼계탕이 나오는 집이 많다. 전주의 젊은 층이 선호하는 집들이 많은데 ‘옛촌’이 유명하다. 한옥마을 인근의 경원동 막걸리 골목은 옛날식 주막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근처에 24시간 운영하는 콩나물국밥집 거리와 연결돼 있어 진짜 주당들이 많이 찾는다.

효자동은 막걸리집 수가 많지는 않지만 홍탁으로 유명한 홍도 주막이 있어 단골이 많은 동네다. 여기에 신흥 막걸리 타운인 인후동까지 합세해 전주에는 2백여 곳의 막걸리집이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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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동의 한 막걸리집 자리에 앉아 “막걸리 한 주전자요”라고 외쳤다. 주인장은 맑은 술인지 탁주인지를 되묻는다. 기본은 맑은 술이다. 전주 술꾼들은 막걸리를 가라앉혀 윗부분의 맑은 술만 마신다. 배가 부르지 않고 다음날 머리가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 한 주전자에 7백50밀리리터짜리 막걸리 세 통이 들어간다. 한 주전자에 1만5천원 안팎. 게다가 안주는 공짜다.

술 든 주전자가 등장하니 줄줄이 안주도 딸려 온다. 살 오른 청어 소금구이에 홍어무침, 족발, 닭똥집, 삶은 고둥과 뜨끈한 모두부도 등장한다. 여기에 두툼한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낸 찌개도 올라온다. 세어 봤더니 모두 16가지다. 얼른 앞사람을 재촉해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켠다.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새로 막걸리를 주문하면 안주가 하나씩 더 등장한다. (물론 공짜다!) 낙지볶음이다. 낙지는 부드럽고 졸깃하며 소면은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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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주전자를 청하니 신선한 멍게가 오른다. 신선하고도 쌉싸래한 맛이 혀에 착 감긴다. 달고도 향기롭다. 그 다음엔 꿈틀꿈틀 살아있는 낙지, 그리고 드디어 홍어삼합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깻잎 위에 잘 삶긴 돼지고기 올리고 살진 새우젓 올리고는 쏴한 냄새의 홍어 한 점 올리고 매운 고추에 저민 마늘, 쌈장을 살짝 얹는다. 부지런히 막걸리 한 모금을 주욱 들이켠 다음에는 얼른 입안으로 쏙 넣는다. 아, 이 맛이다. 코끝이 찡하다.

해장은 콩나물국밥과 순댓국 사이에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맛이라 늘 고민이다. 콩나물국밥을 선택했다면 다시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내는 토렴식의 국밥인지 아예 따로국밥 식인지를 다시 한 번 더 골라야 한다.

전주 콩나물국밥의 원조격 식당은 남부시장 내의 ‘현대옥’이다.

토렴식 국밥을 낸다. 1979년부터 국밥을 말아온 양옥련 할머니가 몇 해 전 다른 이에게 가게를 넘긴 뒤 최근 프랜차이즈화됐다. 예전 비법을 전수받아 맛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옛 정취가 그립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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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에 숙소가 있다면 ‘웽이집’도 괜찮다. 바글바글 끓는 국밥에 계란 하나 얼른 깨 넣고 김가루 듬뿍 넣으면 먹기도 전에 속이 풀리는 느낌이다. 여기에 곁들인 계피와 다양한 한약재를 넣고 끓여내는 달짝지근한 모주 한 잔을 마시면 막걸리 숙취에는 최고다.

순댓국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남부시장으로 간다. 현대옥 맞은편의 ‘조점례남문피순대’는 둘이 먹다 하나가 사라져도 모를 맛을 자랑한다. 잡냄새 하나 없는 칼칼하고 속 시원한 이 집 순댓국은 기존 ‘시장표 순댓국’에 대한 편견을 확실히 깨버린다. 게다가 이 집은 아마도, 삼삼오오 짝을 이룬 여대생끼리 또는 명품백 두른 세련된 도시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먹으러 오는 (거의) 유일한 집일 게다. 선지로 꽉 채운 검붉은 피순대의 강렬한 맛은 두고두고 생각난다.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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