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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감성여행 <청도 와인과 고택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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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와인터널로 간다. 청도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며 대부분의 청도 여행자들이 거쳐 가는 곳이다. 화양읍 송금리의 와인터널은 원래 1905년 개통된 경부선 열차가 지나던 터널이었다. 1937년 선로가 이설되고 최근까지 방치되다가 2006년부터 와인 숙성고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고 숙성되는 와인은 청도반시라 불리는 감으로 만들어진 감와인이다. 생김새가 둥글납작해 ‘반시’라 이름 붙은 청도 감은 씨가 없고 육질이 연하며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아 홍시로는 전국 제일의 맛으로 알려진 청도의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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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미터가 조금 넘는 와인터널은 연중 섭씨 15도의 온도와 60~70퍼센트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돼 와인 숙성을 위해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터널 입구의 선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는데 몰큰몰큰 풍겨오는 달콤한 와인 향기에 벌써 취할 지경이다. 찜통 속 더위는 터널 입구 커다란 철문을 지나는 순간 자취를 감춘다. 터널 안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공기 덕분이다. 선선하고 눅눅한 공기를 품은 와인 향기가 더 매력적이다.

폭 4.2미터, 높이 5.3미터 크기의 터널은 생각보다 넓고 크다. 둥근 아치형의 천장은 오래된 벽돌로 마감됐는데 증기기관차가 숨 가쁘게 내뿜었을 당시의 그을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 청도반시와 감와인에 관련된 자료가 벽에 붙어 있고 다양한 종류의 감와인을 판매하는 상점과 와인 바가 차례로 나타난다. 이곳에서 감와인을 맛보거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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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미터
길게 늘어선 와인 바의 테이블 뒤로 보이는 판매대에는 미래의 특별한 시간을 위해 저장해둔 개인 소유 와인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이곳에서 와인을 산 뒤 병에 메시지를 남기고 약간의 비용(2천원)을 내면 최장 2년 동안 보관해준다. 원할 때 찾아갈 수도 있고 필요하면 택배로 보내준다.

보관된 와인에 적힌 내용은 가지각색이다. 만난 지 1천일째 되는 날 찾아와 함께 와인을 마시기로 약속했다는 연인의 메시지가 눈에 띈다. 초등학교 동창생들 수십 명이 곧 다가올 환갑 파티를 위해 저장해둔 것도 있고, 한 지자체에서 축제 때 쓸 건배주를 함께 담아둔 커다란 와인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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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터널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고대하던 감와인 테이스팅 시간을 가졌다. 몇 가지 치즈와 청도반시로 만든 양갱, 초콜릿 등을 안주 삼아 와인을 종류별로 한 잔씩 맛보았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크게 레귤러 와인과 스페셜 와인, 그리고 아이스 와인으로 나뉜다.

초겨울 서리 맞은 감으로 만든 아이스 와인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스페셜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지만 타닌 맛이 풍부하고, 레귤러와인에서는 농밀한 달콤함이 느껴진다. 포도로 만든 일반 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맛과 향인데, 가볍게 즐기기에 좋은 듯하다.

사실 청도의 감와인은 감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와인이다. 감와인은 별도의 주정을 첨가하지 않고 특수 효모로 발효시켜 보통 2년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치게 한다. 이 과정에서 감 특유의 떫은맛과 단맛 그리고 신맛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와인 제조 과정이 궁금하다면 하루에 3회 열리는 감와인 제조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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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만들어볼 수 있는 재미난 기회다.

2년 뒤를 기약하며 스페셜 와인 한 병을 맡겨두고는 청도에서의 고택 체험을 위해 길을 나섰다. 금천면 신지리에는 조선시대 이름난 학자인 소요당 박하담(1479~1560) 선생과 후손들이 거주했던 고택이 모여 있다. 대표적인 곳이 운강고택과 만화당이다.

박하담이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해 후학을 양성하는 서당을 지었던 터에 후손 박정주가 1809년 건립한 운강고택은 1824년 운강 박시묵이 크게 다시 지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별도로 ‘ㅁ’자 형을 그려 당시 상류층의 살림집 형태와 규모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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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
인근 천변에 자리한 아름다운 정자, 만화정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신지리에는 명중고택과 운남고택 등이 있는데 개인 주택인지라 마음껏 둘러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운강고택과 만화정 역시 당분간 보수공사 때문에 일반인들의 관람이 불가능하다.

대신 선암서원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 운강고택 인근에 있는 선암서원은 박하담과 삼족당 김대유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1577년 건립됐다. 교육기관과 살림집이 붙어 있는 독특한 형태로 한동안 비어 있던 것을 후손인 박향숙씨가 살뜰하게 가꾸고 손질해 여행자들을 위한 고택체험 숙박 시설로 개방했다.

살림집은 다른 고택과 비슷한 ‘ㅁ’자 형태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와 대문채로 구성돼 있다. 특이하게 마당에 헛담을 세워 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했다. 행랑채의 중간 문을 지나면 곧바로 서원으로 연결된다. 서원 마당에는 2백년 된 백일홍 나무가 붉은 꽃을 피웠다. 학문을 하는 공간인데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한 천장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 옛날 서당 학생들이 드나들었을 문을 활짝 열면 교교히 흐르는 동창천변의 산수가 고스란히 마당 안으로 스며든다.

수백 년 전에도 같은 모습이었을 그 풍경 속에서 눈과 마음이 절로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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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밤이 이슥해지자 처마 아래 울리던 낙숫물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기분 좋은 자장가 같아 고택에서의 여름밤이 포근하다. 여름밤답지 않게 숙면을 취하고 나서 이른 아침 조반을 받아들었는데 그 차림새가 정갈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여 마음이 흡족하다. 나뭇잎을 수저의 받침대로 두어 멋을 냈다. 윤기 흐르는 놋그릇에는 인근 들판에서 자란 나물과 직접 놓아 기른 닭이 오늘 아침에 낳은 유정란이며 한껏 살진 여름 채소로 만든 반찬들이 놓였다. 인공조미료 없이 자연 그대로 손맛으로만 만든 밥상이다. 갓 지은 잡곡밥과 된장국을 곁들여 맛나게 식사를 마치고는 산책 삼아 그녀가 이끄는 대로 서원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고택의 멋스러움을 새삼 느껴봤다.

성곡리의 코미디철가방극장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대해 수다떠는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것처럼 참으로 뜬금없는 장소에 생뚱맞은 외관을 자랑하고 서 있었다. 철가방 모양의 극장 건물 외벽에는 자장면이며 탕수육, 단무지에 고춧가루, 소주병이 튀어나올 듯 그려져 있었다.

개그맨 전유성은 한 방송에서 “TV를 통해서만 개그를 볼 수 있는 농촌 사람들을 찾아가 눈앞에서 직접 웃겨주고 싶어서” 이 코미디 전용극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극장 이름은 웃음을 시킨 사람에게 신속한 배달을 약속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졌고, 관람료 역시 자장면 가격에 맞춰 7천7백원으로 정했다.

극장은 청도의 여느 이름난 관광지와는 꽤 떨어져 평범하고 한가로운 농촌의 풍경 속에 들어앉아 있다. 이런 곳으로 과연 개그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기우라는 건 곧 밝혀졌다.

찾아간 날이 평일인데도 오후 2시 시작하는 공연은 매진되기 직전이었다. 경주의 한 보험회사 직원들 20명이 단체관람을 왔고 여수와 울산, 부산 등지에서 온 여행자들 하며 밀양에서 온 주부들도 있었다.

겨우 보조석을 구해 들어갔다. 50여 석의 객석이 꽉 차 있었다.

관객들의 코앞에서 쉴새 없이 웃음 폭탄을 터뜨리는 능청맞은 개그맨들은 전유성이 후배 양성을 위해 청도에 설립한 ‘코미디시장’ 출신들이다. 15명 남짓한 개그맨들이 돌아가며 출연해 기발하고 재치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몇몇은 지금 바로 ‘개그콘서트’에 출연해도 될 만큼 뛰어난 재능과 감각을 선보였다.

무대에 오른 개그맨들은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가끔은 짓궂은 농을 던지거나 장난을 걸기도 한다. 웃음은 전염성이 강해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관객들도 시간이 지나자 적극적으로 동참해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는다. 대부분의 관객이 성인인지라 은근히 야한 농담도 오고가는데 아줌마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관객석에서 소복 입은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온다. 공연 도중 무대 뒤편으로 청도의 산과 들이 활짝 배경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마치 철가방 문이 열리는 모양새다.

80분의 공연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도 웃어서 얼얼해진 볼을 감싸 쥐고 다시 뜨거운 청도 여름 길로 나선다. 속이 시원하니 여름더위도 저만치 물러가는 듯싶다.

글·고선영(여행작가) / 사진·김형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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